야당 대표가 “국민항쟁” 외치며 곡기 끊는데 국민은 시큰둥
희화화된 ‘K-단식’
왜 전처럼 효과 없나
“도대체 왜 하는 건가?” “진짜 하는 것 맞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무기한 단식을 두고 정치권 안팎 여론이 엉뚱한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제1 야당 지도자가 “무능 폭력 정권을 향한 국민 항쟁을 시작한다”며 목숨 걸고 곡기를 끊었다는데, 많은 국민은 놀라기는커녕 무관심하다. 같은 당 내에서조차 “명분도 실리도 없다”(이상민 의원)며 단식을 중단하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 대표는 오전 10시부터 밤 10시까지만 공개된 장소에서 단식을 하고, 낮에도 당무로 자리를 비우는 ‘출퇴근 단식’을 하고 있다. 소셜미디어에선 “간헐적 단식이라면 30년도 할 수 있겠다” “낮엔 굶고 밤에 먹는 라마단(이슬람 종교 의식)인가”란 조롱이 넘쳐난다. 온수가 들었다는 그의 보온병 내용물을 두곤 ‘보약’ ‘사골 국물’ ‘미숫가루’란 억측까지 나온다. 21세기 민주주의가 정착된 선진국 중 한국처럼 정치인들이 툭하면 장외로 나가 자해 투쟁을 하는 나라는 없다. 단식하는 사람을 대놓고 놀려대는 곳도 드물다. 한국의 단식은 어쩌다 이렇게 희화화됐을까.
◇성직자·왕족의 의식에서 ‘약자의 무기’로
원래 단식은 성스럽고 희귀한 종교·정치적 행위였다. 예수는 40일간 사막에서 사탄의 유혹을 뿌리치며 단식 기도했고, 석가모니는 보리수 아래에서 6년간 극단적 고행을 했다. 수도사와 승려들도 영성을 고양하고 빈자의 고통에 동참하려 주기적으로 단식했다. 조선왕조실록엔 왕과 왕비들이 신하들과 갈등이나 궁중 암투 끝에 수라나 탕약을 거부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절대 빈곤과 전쟁, 굶주림이 만연한 시대에 자기 의지로 음식을 먹지 않는다는 건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었고, 그만큼 파급력이 컸다.
미국 뉴욕 해밀턴 칼리지 역사학과 케빈 그랜트 교수의 책 ‘최후의 무기: 단식’에 따르면, 성직자나 왕족이 아닌 이들의 투쟁 방식으로 단식이 퍼지며 ‘약자의 무기’가 된 건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중반이다. 서구를 중심으로 민주주의와 언론이 발달한 시기다. 선거로 심판받는 정부들로선 아사자가 발생하거나 반대파의 단식 투쟁이 확산될 경우 치명타를 입을 수 있었다. 대영제국의 쇠락도 이 시기 아일랜드와 인도 등 식민지에서 자연재해와 수탈에 따른 기아로 수천만 명이 굶어 죽고, 독립운동가들이 단식 투쟁을 벌이다 숨진 상황과 관련 있다. 마하트마 간디는 75세에 23일간 옥중 단식을 단행, 서구 제국주의에 타격을 입히고 비폭력 투쟁의 상징으로 올라섰다.
◇72시간부터 고통 극대화, 72일 못 넘겨
의학계에선 단식을 ‘72-72 법칙’으로 설명한다. 진짜 굶으면 72시간째 에너지가 고갈되기 시작, 72일 이상 생존하기 힘들다는 뜻이다. 단식을 하면 72시간, 만 사흘이 지나며 고통이 극대화된다고 한다. 체내에 저장된 당이 모두 소진되고, 간이 지방과 단백질을 태워 만드는 케톤체라는 새로운 연료가 만들어지는 시점이다. 이런 상태로 72일쯤 되면 체중의 40~50%가 감소하며 죽음에 이르게 된다고 한다. 이는 1981년 북아일랜드 분쟁 당시 아일랜드 정치범들이 마거릿 대처 영국 총리를 상대로 옥중 단식 투쟁을 벌여 10명이 60~72일 내 사망한 사례에 근거한다.
한국인의 뇌리에 박힌 극적인 장면은 군사정권 시절 카리스마 넘치는 야당 지도자였던 김영삼(YS)·김대중(DJ) 전 대통령의 단식이다. YS는 1983년 대통령 직선제 등 ‘민주화 5개 항’을 내걸고 23일간 단식을 벌였다. 국제사회에서 정통성을 의심받던 전두환 정부는 YS가 정말 변을 당할까봐 노심초사했다. 며칠 새 체중이 14㎏이나 줄어든 YS를 강제 입원시켜 링거를 꽂고, 병실 안으로 불고기와 전 굽는 냄새를 피워 흔들어보려고도 했다. 미국 망명 중이던 DJ는 YS의 단식을 외신에 알려 한국 민주화 투쟁을 국제 이슈로 키웠고, 수많은 민주 인사들이 동조 단식에 돌입했다. 노태우 정부인 1990년엔 DJ가 지방자치제 등을 요구하며 13일간 단식을 벌여 지방자치제 실시 약속을 받아냈다.
◇“정치 단식에 성공한 건 兩金뿐”
이는 한국에서 단식으로 국내외 여론과 정치 판도를 바꾼 거의 전무후무한 사례다. 양김(兩金)의 ‘성공의 기억’은 수십 년째 단식의 전범(典範)처럼 비슷한 장면을 반복 재생시켰다. 야권에선 단식 안 해본 정치인을 찾기 힘들다. 여당 대표인 이정현 전 새누리당 대표가 2016년 야당 출신 국회의장에 맞서 단식하는 초유의 사태도 있었다. 그러나 “단식에 성공한 건 양김뿐”(민병두 전 민주당 의원)이란 평가는 그대로다. 지난달 31일 이재명 대표가 단식을 시작하자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옛날엔 정보의 흐름이 넉넉지 않아 국민에게 알리려면 극한 투쟁이 효과 있었지만, 지금은 국민이 너무 잘 안다. 구차하고 무의미한 방식”이라고 했다. 한동훈 법무장관은 ‘이 대표가 본인의 9월 검찰 수사 일정을 역산해 방탄용 단식을 시작했다’는 지적에 대해 “수사나 재판에 영향을 주는 선례가 생긴다면 앞으론 잡범도 소환 통보를 받으면 다 단식할 것”이라고 했다.
YS와 DJ가 야윈 채 실려나오는 모습을 비극적으로 부각하던 시절의 사회·문화적 환경도 바뀌었다. 지금은 민주 선거로 정권이 매번 교체되고, 일부 극렬 지지자 외엔 여든 야든 지지가 절대적이지 않다. 특히 먹고사는 것이 여전히 절체절명의 과제였던 1970~80년대도 아니고 이제는 영양 과잉의 시대, 날씬함을 찬양하는 시대다. 국내엔 건강과 미용을 목적으로 한 단식 관련 도서만 300여 종이 나와 있다. 국민이 정치인의 단식을 어떤 의미로든 ‘비상 상황’으로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다.
정치인들의 너무 잦은 단식은 ‘목숨 건 투쟁’이 아니라 ‘챙길 거 다 챙기면서 하는 쇼’란 인식까지 낳았다. 숱한 단식을 했던 강기갑 전 민주노동당 의원은 2005년 쌀협상 비준동의안에 반대해 29일간 단식하던 중 “국회 화장실에서 카스텔라를 먹더라”는 의혹을 샀다. 정청래 민주당 의원은 2014년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광화문 앞에서 22일째 단식투쟁을 하다 담배를 피우고도 멀쩡히 걸어 다녀 “진짜 단식한 사람의 모습이 아니다”란 뒷말을 낳았다.
단식이 정파 갈등을 부추기는 행위로 본격적 변곡점을 맞은 계기는 세월호 참사 추모 시위다. ‘유민 아빠’ 김영오씨가 세월호특별법 등을 요구하며 46일간 단식을 벌이자, 문재인 전 대통령을 비롯한 야당 인사들과 진보 연예인이 대거 동조 단식에 나서 박근혜 정부를 공격했다. 유족인 김씨의 사생활과 정치 이력 논란, 유명인들의 ‘가짜 단식’ 의혹이 불붙는 한편, 일부 극우 단체는 단식농성장 앞에 치킨과 피자를 쌓아 놓고 ‘폭식 투쟁’을 벌이는 기이한 풍경이 당시 한국을 두 쪽 냈다.
◇선진국선 쇠퇴한 단식투쟁… 한국만 왜
그래도 이 대표는 스스로를 “군홧발에 짓밟혀 민주공화국을 만들고 지켜낸 선배들”에 견주고, “(독재 정권인) 87년과 지금이 겹쳐 보인다”며 단식을 이어가고 있다. 부당한 정치 탄압을 받는 약자라는 주장이다. 전문가들은 그의 단식이 국민 대다수의 공감은 못 얻더라도 핵심 지지층인 ‘개딸’을 뭉치게 할 방편은 된다고 본다. 정치학자인 김형준 배재대 석좌교수는 본지에 “한국에서 단식이 통하는 건 특유의 역사적 저항의식, 약자를 향한 온정주의에 기댄 정치 문화 때문”이라며 “그러나 거대 야당을 거느린 이 대표가 본인 수사를 앞둔 시점에 ‘출퇴근 단식’까지 하니 진정성을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 민주화 투사들의 단식에 대한 기억마저 파괴하는 행위”라고 말했다.
이제 세계 주요국에서 단식 같은 시위 방식은 쇠퇴했다. 의회 민주주의가 정착되면서 각종 사회 갈등을 타협해 풀어내는 게 직업 정치인의 소명이란 인식이 확고해졌기 때문이다. 시민이 여론을 주도하는 흐름이 강해져, 단식투쟁처럼 특정 정치인을 신격화하는 시도도 환영받지 못한다. 가끔 재야 인사나 정치범들이 단식을 벌인다는 뉴스가 나오는 나라는 이집트, 팔레스타인, 아프가니스탄, 바레인 같은 곳들이다. 최근엔 여자 월드컵을 우승으로 이끈 선수에게 강제 키스를 한 ‘키스게이트’로 국민적 분노를 산 스페인 축구협회장 루이스 루비알레스의 모친이 “마녀사냥을 멈추라”며 ‘아들 보호용 물타기 단식’을 벌였다가 여론의 냉소 속에 이틀 만에 접기도 했다. 한국 특유의 ‘K단식’은 과연 지속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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