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뷰] 푸틴과 김정은의 ‘유용한 바보들’
핵 위기도 한·미·일 탓이라니… 獨 총리 절규가 남 일 같지 않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인내심 많은 성격이라고 알려졌다. 그런 그가 지난 6월 한 정치 집회에서 분노를 표출한 일이 있다. 몇몇 청중이 러시아와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에 독일이 무기를 지원했다며 “전쟁광”이라 야유하자 쏟아낸 즉흥 연설이었다. “푸틴(러시아 대통령)의 제국주의적 야욕 탓에 수많은 청년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전쟁광은 바로 푸틴입니다. 뇌가 조금이라도 있다면 알아야 할 텐데요!”
이코노미스트는 숄츠의 에피소드와 우크라이나 침공 후에도 러시아의 ‘친구’로 남고자 하는 민주주의 국가들을 모아 보도하면서 ‘푸틴의 유용한 바보들’이란 제목을 달았다. ‘유용한 바보들’은 냉전 시대 유행한 표현으로, 제멋에 빠져 맹목적으로 소련 같은 공산·전체주의를 옹호하는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시민을 일컫는다.
음식에 독을 타고 비행기를 떨어뜨려 정적(政敵)을 제거하는 러시아의 전체주의 독재자 블라디미르 푸틴, 그에 버금가게 잔혹한 북한의 김정은이 본격적으로 손을 잡을 조짐이다. 정상회담까지 준비 중이라고 한다. 북한이 우크라이나전 무기를 러시아에 공급하고, 북한은 핵 추진 잠수함 등 러시아의 핵 관련 기술을 원한다고 알려졌다. ‘원래 한통속’이라 넘길 일이 아니다. 양국의 무기 거래는 냉전 이후 세계대전급 분쟁을 억제해온 중요한 장치 중 하나인 유엔 안보리를 무력화하는 매우 심각한 행위다. 한 외교 소식통의 말이다. “북핵 저지를 위한 안보리의 대북 제재 결의(1718호 등)는 북한으로 들고 나는 모든 군사 분야 거래를 금지합니다. 북·러 무기 거래는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러시아가 그 결의를 스스로 무너뜨리는 중차대한 도발입니다.”
최근 영화 ‘오펜하이머’로 유명해진 원자폭탄 개발자 로버트 오펜하이머는 가난한 불량 국가의 손에 핵무기가 들어가는 악몽 같은 미래를 불안해하며 말년을 보냈다. 북·러 결탁은 그 악몽을 빠르게 현실로 바꿀 것이다. 오펜하이머보다 더 잠이 안 와야 하는 사람들이 대한민국 국민이다. 정치권이 초당적 목소리로 이를 규탄해 결연한 반대를 천명해도 부족하다. 하지만 현실은 반대로 가고 있다.
거대 야당인 민주당 원내대표는 북·러 정상회담 보도가 나온 날 “한·미·일 중심 일방주의 외교가 한반도 평화를 위협한다”고 했다. 지난달 캠프 데이비드 한·미·일 정상회의에 대한 중국의 비난 성명(“지역의 평화와 안정에 위협”)과 맥락이 같다. 우크라이나 지원을 “국익에 심각한 위해”라며 비난해왔던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북·러 무기 거래에 언급조차 없다. 검찰 수사가 부당하다며 단식 투쟁만 벌이고 있다.
6일 국회에선 탈북민 출신 태영호(국민의힘) 의원이 국회에서 북한인권재단 출범을 서두르자는 말을 했다가 “쓰레기”란 막말을 들었다. 6년 전 태 의원의 한국행이 알려지고 나온 북한의 첫 반응이 “인간 쓰레기”였다는 점을 생각하면 섬뜩하다. 이달 초 북한의 ‘일본 지부’ 격인 조총련 주최 행사에 외교부 도움까지 받아 참석한 윤미향 의원은 문제가 없다는 주장을 지금까지 반복하고 있다. 행사장에선 한국을 “남조선 괴뢰도당”이라 불렀다는데, 그래도 문제가 아닌가.
이코노미스트는 “‘유용한 바보들’은 항상 ‘평화를 지키기 위해 그들(전체주의 독재자들)을 이해하고 대화해야 한다’는 등의 복잡한 논리를 편다. 하지만 이들을 묶는 간단한 공통분모는 결국 냉전 이후 이어져 온 지루한 반미(反美) 정서일 뿐이다”라고 분석했다. 표현·사상의 자유를 보장하는 한국이니 푸틴이나 김정은으로 마음이 기울어도 어쩔 수 없다. 다만 점점 커지는 북핵 위협 앞에서 내가 낸 세금이 그런 활동에 낭비되는 일은 막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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