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키도 울고 갈 일
[아무튼, 레터]
무라카미 하루키의 새 소설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이 지난 6일 서점에 깔렸다. 장편소설은 6년 만이다. 하루키는 과연 힘이 세다. 한국어판은 예약 판매 기간 베스트셀러 종합 1위에 올랐다. 출판사 문학동네는 책이 시장에 나오기도 전에 중쇄를 결정했다. 지난 4일 급히 3쇄를 찍었다. 누적 13만부다.
하루키는 그리스에서 쌍발 프로펠러 비행기를 탔다가 엔진이 멈추는 바람에 죽음에 가까이 갔던 적이 있다. 공중에서 바라본 지상은 비현실적으로 아름답고 조용하며 아득했다고 한다. 죽음의 감촉이 몸 안에 선명하게 남았다. 산문집 ‘저녁 무렵 면도하기’에서 그는 “실제로 그때 나의 일부는 죽어버렸다고 생각한다”고 썼다.
하루키는 영국 록 그룹 비틀스를 데뷔부터 해산까지 동시대에 체험했다. ‘후렴이 없는 음악’을 들으면 지친다는 그는 사람도 ‘후렴이 있는 사람’을 좋아한다. 후렴이 없는 사람이 하는 말은 얼핏 옳아 보이는데 전체적으로 전개에 깊이가 없고 뫼비우스의 띠처럼 출구가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소설을 쓸 때도 하루키는 어디에 어떻게 후렴을 넣을지 고민한다.
그의 문학성은 논란거리다. “문학의 탈을 쓴 패스트푸드”라는 공격도 받는다. 그럼에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읽히는 생존 작가 중 한 명이다. 선인세(先印稅)가 하루키의 대중성을 증명한다. 저자는 보통 책값의 10%를 인세로 받는데, 선인세는 총 판매량을 예상하고 미리 주는 인세다. 하루키 책의 선인세는 2000년대 들어 ‘1장(1억원)’을 돌파했고 2009년 ‘1Q84’부터 10억원 이상으로 치솟았다.
신작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은 1980년 발표한 중편소설을 43년 만에 다듬어 장편으로 완성한 것이다. 하루키는 작가 후기에서 “이 작품은 줄곧 목에 걸린 생선 가시처럼 신경 쓰이는 존재였다. (나라는 작가이자 나라는 인간에게)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가시였다”고 밝혔다.
신학림 전 언론노조 위원장이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씨에게 책 3권을 주고 1억6500만원을 받았다. 판권이 아니라 책값이다. “판권은 수십억 가치가 있다”고 그는 지껄였다. 저렇게 살면 속편하겠다 싶다가도 그 말이 생선 가시처럼 목에 콱 걸렸다. 값은 저자가 아니라 독자가 매긴다. 신작 한 권을 1만9500원에 판매하는 하루키도 울고 갈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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