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한 줄 알았던 패밀리 레스토랑, 요즘 제3의 전성기 만든 비결
제3의 전성기 맞으려나
패밀리 레스토랑 흥망성쇠
붉은 벽돌 벽, 따스한 조명, 널찍한 원목 테이블, 빙글빙글 돌아가는 천장 실링 팬…. 서울 잠실 롯데월드몰 ‘캐롤스’에 들어서자 마치 1990년대 미국 보스턴으로 시간 여행을 온 듯했다. 전성기 국내 패밀리 레스토랑의 전형적 모습이기도 했다. 지난달 27일 매장 입구 웨이팅석에서 열 살 아들과 함께 테이블 나기를 기다리던 회사원 김성일(47)씨는 “1990년대 후반 대학 시절 생일 파티나 소개팅 최고 인기 장소였던 패밀리 레스토랑에 아내와 함께 아들을 데리고 오다니, 감개무량하다”고 했다.
◇1990년대 후반 최고의 ‘핫플’
패밀리 레스토랑이 돌아왔다. 1990년대부터 20여 년간 외식산업을 주도한 패밀리 레스토랑은 2010년대 중반부터 쇠락의 길을 걸었다. 하지만 인고의 세월을 이겨내며 생존에 성공한 브랜드들은 과거 전성기 버금가는 매출을 올리고 있다. 새롭게 문 여는 브랜드도 등장했다. 지난달 문 연 캐롤스는 외식기업 썬앳푸드가 자체 개발한 브랜드로, 신규 패밀리 레스토랑은 2009년 론칭한 ‘롱고스’(2015년 영업 중지) 이후 14년 만이다.
한국 패밀리 레스토랑의 역사는 올해로 38년이다. 최초의 패밀리 레스토랑 브랜드 ‘투모로우 타이거’ 1호점이 1985년 문 열었다. 이후 코코스(1993년), LA팜스(1994년) 등 외국 브랜드가 잇달아 진출했다. 본격적인 패밀리 레스토랑 시대는 1990년대 후반부터다. 1995년 씨즐러·베니건스·토니로마스·플래닛 할리우드, 1996년 까르네스테이션·마르쉐, 1997년 아웃백스테이크하우스·빕스까지 개업이 줄을 이었다. 시장도 급격히 팽창했다. 매출 규모는 1990년대 800억원 수준에서 2000년 1700여억원으로 2배 이상 성장했고, 월드컵이 열린 2002년 3000억원, 2005년엔 6000억원을 돌파했다.
1990년대 패밀리 레스토랑은 가든형 고깃집과 중식당, 경양식집이 전부이던 국내 외식업계에 문화적 충격과 혁신으로 다가왔다. 특히 돈가스·햄버그스테이크 등 일본·한국화된 양식(경양식)이 아닌, 고급 레스토랑에서나 맛볼 수 있던 정통 서양음식을 이국적 분위기에서 즐길 수 있다는 게 매력이었다. 가족 외식, 연인 데이트 장소 1순위로 꼽혔고, 주말에는 예약하지 않으면 1시간 줄을 서서 기다려야 했다.
1990년대 후반 외환 위기가 터지고 소비가 급격히 위축되면서 외식업계 전체가 불황을 맞았다. 2000년대 들어서 경기가 회복되면서 패밀리 레스토랑의 2차 전성기가 열린다. 통신사들은 매달 특정일 주문 금액의 50%까지 할인해주는 등 파격적 제휴 할인 경쟁을 벌였다. 패밀리 레스토랑은 대학생 파티, 직장인 회식 장소로 큰 인기를 얻었다. 베니건스는 한때 연 매출 1000억원을 달성했고, 아웃백은 업계 최초로 100호점을 열었다.
◇프리미엄화로 재기 성공
패밀리 레스토랑의 쇠락은 2010년대에 찾아왔다. 한때 20여 개 브랜드가 난립했지만, 아웃백·빕스·TGIF·애슐리 단 4곳만 남고 사라졌다. 사양길로 접어든 원인은 여럿이다. 우선 변화하는 사회 구조. 패밀리 레스토랑은 이름 그대로 가족이 식사하기 적당한 외식 업태다. 한국은 가족이 사라지고 있는 사회다. 출산율은 2015년 1.24명에서 지난해 소수점 단위인 0.81로 떨어졌다. 반면 1인 가구 비중은 2000년도 15.5%에서 지난해 33.4%로 증가세다. 2000년대 중반 이후 경기 침체가 장기화하면서 1인당 3만~4만원대였던 패밀리 레스토랑의 식사비도 버거워졌다.
음식 또한 문제였다. 치즈와 크림이 듬뿍 들어가거나 기름에 튀겨낸 메뉴가 많다는 점은 건강을 추구하는 시대 흐름에서 동떨어져 있었다. 원가 절감을 위해 공장에서 대량 생산한 반(半)조리 식품을 사용하자 까다로운 소비자 입맛을 맞추지 못했다. 미국과 유럽은 물론 서아시아·남아메리카 등 쉽게 접할 수 없었던 음식을 내는 식당이 늘고 해외여행이 급증하면서, 패밀리 레스토랑의 이국적 매력도 반감했다.
업체들의 대응은 크게 ‘대중화’와 ‘고급화’로 갈렸다. 대중화를 택한 업체들은 실패했다. 마르쉐와 베니건스는 각각 2013년과 2016년 문을 닫았고, TGIF는 전국 매장 10여 곳을 유지하며 간신히 명맥을 잇고 있다. 고급화 전략은 주효했다. 아웃백은 2021년 매출이 4000억원으로 전년 대비 30% 이상 늘었고, 2022년에도 4100억원으로 증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웃백은 ‘비싸도 음식이 좋으면 손님이 온다’는 전략으로 냉동 고기를 더 비싸고 관리도 까다로운 냉장 고기로 교체하면서 ‘토마호크 스테이크’ ‘블랙라벨 시리즈’ 등 시그니처 메뉴를 선보였다. 매장과 주방에서 사용하는 칼 등 도구까지 바꿨다. 빕스는 수익성 낮은 매장을 정리하면서 프리미엄 매장으로 리뉴얼하는 선택과 집중 전략을 폈다. 2018년 말 61곳이었던 빕스 매장은 28곳으로 줄었지만, 실적 개선으로 흑자를 기록했다. 와인과 맥주, 치즈와 핑거푸드를 취향대로 즐기는 ‘와인&페어링 존’도 호응을 얻었다. 캐롤스를 운영하는 남수정 대표는 “캐롤스에서는 모든 음식을 매장에서 직접 만든다”며 “반조리 식품을 사용한 메뉴는 ‘치즈 스틱’ 딱 하나”라고 했다.
코로나 이후 회복세를 타고 있는 외식업계에서는 패밀리 레스토랑의 미래를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남 대표는 “국내에서 3세부터 90세까지 두루 아우르면서 전국적으로 매장을 운영할 수 있는 외식업태는 서양음식 중엔 패밀리 레스토랑이 유일하다”며 “패밀리 레스토랑 전성시대가 다시 올 것”이라고 장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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