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산업혁명의 뿌리는 아프리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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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 영국 식민지였던 카리브해 섬나라 바베이도스의 설탕 농장에서 쉴 새 없이 일해야 했던 흑인 노예들은 무덤조차 갖지 못했다.
미국 컬럼비아대 저널리즘대학원 교수인 저자는 아프리카인의 흔적이 남아 있지 않은 이 섬을 거닐며 이 책을 써야겠다고 결심했다고 한다.
유럽이 수 세기 동안 상업적 유대를 구축하고자 갈망했던 대상은 아시아라기보다 서아프리카 중심부에 있다고 알려진 부유한 흑인 사회였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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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컬럼비아대 저널리즘대학원 교수인 저자는 아프리카인의 흔적이 남아 있지 않은 이 섬을 거닐며 이 책을 써야겠다고 결심했다고 한다. 책은 15∼20세기 유럽 중심의 역사 서술에서 지워지거나 주변으로 밀려났던 ‘아프리카의, 아프리카에 의한, 아프리카를 위한’ 역사를 복원했다.
저자는 유럽 각국이 아프리카에서 이권을 장악하려 각축전을 벌이는 과정에서 근대가 수립됐다고 본다. 15세기 유럽이 아시아에 진출하기 위해 대항해 시대를 연 것이 근대의 시작이라고 보는 관점과는 다른 해석이다.
유럽이 수 세기 동안 상업적 유대를 구축하고자 갈망했던 대상은 아시아라기보다 서아프리카 중심부에 있다고 알려진 부유한 흑인 사회였다는 것.
일례로 16세기 초 포르투갈 국왕의 자문관 주앙 드 바후스는 아시아와 향신료 무역을 시작한 뒤에도 “기니와의 교역만큼 안정된 수익을 보장해 주는 것은 보지 못했다”고 했다. 이후 3세기 동안 유럽 각국은 오늘날 가나 해안에 기지를 60개 넘게 세웠다. 이때 노예무역으로 아프리카에서 아메리카 대륙으로 강제 이송된 아프리카인 수는 약 1200만 명에 이른다. 아프리카와의 무역에서 나온 부와 인력이 근대 산업혁명의 근간이었다는 분석이다.
아프리카인의 주체적 역사도 조명했다. 1791년부터 1801년까지 생도맹그(현재 아이티)에선 노예 출신 자유인들과 흑인 노예 등이 힘을 합쳐 프랑스로부터 독립을 쟁취하고 노예제를 폐지했다. ‘블루스’와 ‘재즈’는 19세기 말 미국 루이지애나로 강제 이주된 흑인들이 만들어낸 문화다.
저자는 “가장 악질적인 역사적 망각이 대서양 연안 전역에 흩어져 있는 노예시장들이나 플랜테이션 사회들과 관련된 것만은 아니다”라며 “망각이 일어나고 있는 가장 중요한 자리는, 단연코 부유한 나라 국민의 마음속”이라고 했다.
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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