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법이 닿지 않는 곳… 수평선 너머의 불편한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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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가까이 미국 뉴욕타임스(NYT) 탐사보도 기자로 일한 저자가 무법이 횡행한, 그러면서도 슬픈 바다에서 사는 인간의 이야기를 여행기처럼 풀어냈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임신중지가 불법인 탓에 '안전하지 않은' 임신중지 시술로 사망하는 여성들이 해마다 4만7000여 명에 이른다니 그들에게 바다는 죽지 않기 위해 가야 하는 곳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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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위의 추악한 범죄 폭로
선악의 경계가 흐려지는 바다… 누군가는 살기 위해 그곳으로
◇무법의 바다: 보이지 않는 디스토피아로 떠나는 여행/이언 어비나 지음·박희원 옮김/784쪽·3만2000원·아고라
20년 가까이 미국 뉴욕타임스(NYT) 탐사보도 기자로 일한 저자가 무법이 횡행한, 그러면서도 슬픈 바다에서 사는 인간의 이야기를 여행기처럼 풀어냈다. 오대양과 부속해 20여 곳을 포함한 1만2000해리의 여정, 전 세계 40개 도시를 누빈 촘촘한 취재가 생생한 현장감은 물론이고 글맛을 더한다. 지구의 3분의 2를 차지하는 드넓은 바다에서 벌어지는 무법의 세계를 파헤칠 생각을 한 것이 놀랍다. 아이디어의 참신성은 차치하더라도 ‘죽을 수도 있다’는 결심을 하지 않으면 쓸 수가 없었을 텐데.
저자는 해상에서 벌어지는 인신매매업자와 밀수업자, 화려한 대형 크루즈 선박 뒤에 숨은 갖가지 오염물질의 해양 투기, 해적 등에 의한 해상 위험이 커지면서 이에 비례해 성장하는 해상 민간 보안시장 등 바다에서 벌어지는 온갖 추악한 모습을 고발한다. 그리고 우리가 유조선 사고로 기름을 뒤집어쓴 갈매기 사진에는 그토록 분노하면서 독성이 강한 폐기물을 그대로 바다에 버리는 행위에 대해서는 굉장히 둔감하다고 지적한다.
저자에 따르면 미국, 영국, 소비에트연방 등 10개 이상의 국가들은 쓸모가 없어진 원자로와 핵 슬러지를 방사성 연료가 여전히 들어 있는 채로 북극해와 북대서양, 태평양에 버렸다. 이런 행위는 1993년에야 금지됐지만 그 실효성은 여전히 의문이고, 폐기물 해양 투기를 대행하던 업자들은 이제 지하세계로 숨어 지중해와 동남아시아, 아프리카 연안으로 활동 범위를 넓히고 있다는 것이다. 2차 세계대전 직후 바다에 버린 화학무기들이 약 70년이 지난 2016년 어망에 걸려 어민들이 사고를 당하는 상황이니 핵폐기물이야 말해 무엇할까. 투기하는 물질이 위험하고 처리가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업자들이 챙기는 돈이 더 클 것은 불을 보듯 뻔할 것이다.
그렇다고 바다가 검은 거래에 악용되는 악의 장소인 것만은 아니다. 저자는 임신중지가 불법인 나라의 여성들을 자국법이 미치지 못하는 공해상으로 데려가 안전하게 시술해주는 의사 이야기를 통해 사회 정의란 과연 무엇인지 물음을 던진다.
임신중지가 불법인 나라에서 강간, 데이트 폭력 등으로 원치 않는 임신을 한 여성들에게 해안에서 불과 21km 떨어진 ‘공해’는 그녀들에게는 생존의 공간이기도 하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임신중지가 불법인 탓에 ‘안전하지 않은’ 임신중지 시술로 사망하는 여성들이 해마다 4만7000여 명에 이른다니 그들에게 바다는 죽지 않기 위해 가야 하는 곳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이런 종류의 책은 읽는 내내 마음이 편치 않다. 인간의 추악한 면을 본 탓도 있지만, 넓게 생각하면 나 자신도 세상을 그렇게 만든 부분 중의 하나라는 생각이 떠나지 않기 때문이다. 모두가 우리 동네에는 쓰레기 소각장조차 안 된다고 하면, 그 많은 폐기물이 누구의 영역도 아닌 곳(바다)으로 가는 것은 시간문제일 것이다.
사회 문제를 해결하려면 저자처럼 실상을 제대로 알리는 용감한 사람들이 많아져야 하지만, 해결하는 양보다 알게 되는 사회 문제가 훨씬 많아 점점 더 괴롭다.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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