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탄 잡무, 악성 민원에 극단 선택… "그래도 난 선생님 될거예요"

김홍준.원동욱 2023. 9. 9. 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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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권 추락, 교대·사범대생 만나보니
숨진 서이초등학교 교사의 49재 추모일인 지난 4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교육대학교에서 열린 촛불문화제 참가자들이 진상 규명과 아동학대 관련법 개정을 요구하고 있다. [뉴스1]
“그래도 전 선생님이 되고 싶어요.”

구경원(23)씨도, 성예림(22)씨도 이렇게 끝을 맺었다. 유재성(25·가명)·심유진(24)·이상연(22)씨도 같은 말을 했다. 이들은 모두 교사가 되려는 교육대학과 종합대학의 사범대 학생들. ‘선생님이 되고 싶다’는 결의와 포부 앞에 ‘그래도’는 왜 붙었을까. 이 ‘그래도’가 나올만한 대한민국 학교 상황은 어떻고, 교사의 꿈을 간직하고 있는 이들의 생각은 어떨까. 중앙SUNDAY는 수만 명의 교사가 참여한 지난 2일 서이초등학교 교사 추모 집회, 4일의 ‘공교육 멈춤의 날’ 집회 직후 이들을 만났다.

교사 70% “교권 잘 보호되고 있지 않다”

“평생 꿈이 선생님인 걸 의심한 적이 없었어요. 그런데….”

인터뷰에 앞서 벌어진 집회 직전, 지난달 31일에는 전북 군산에서 초등학교 교사가 극단적 선택을 했다. 같은 날 서울 양천구의 초등학교 교사는 추락사했다. 이달 1일에는 경기도 용인시의 고등학교 교사가 스스로 생을 마감했고 8일에는 대전 유성구의 한 초등학교 교사가 위중한 상태로 발견된 지 사흘 만에 사망했다. 건국대 영어교육과 4학년에 재학 중인 구경원씨는 “이런 현실이 암담하다”고 말했다. 구씨는 학비를 벌기 위해 1주에 2회 서울 중랑구의 한 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 “학원 아르바이트지만, 아이들을 가르치는 게 쉽지 않다는 걸 느낀다”는 구씨는 “행정 업무와 상담을 계속하는 정규 강사를 옆에서 보니, 앞으로 교사가 되면 만만치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성예림(서울교대 3학년)씨는 “최근 서이초 등 일련의 사건들은 충격”이라면서 “ 내가 정말 꿈꾸던 교육을 현실에서는 할 수 없는 상황이 아닌가 고민을 안겨준다”고 했다.

이화여대 초등교육과 3학년에 재학 중인 이미연(23세·가명)씨는 교사의 꿈을 접었다. 그는 “현장(학교)보다는 다른 교육기관에 들어가기로 했다”며 “100%는 아니지만, 최근 이슈가 꽤 큰 영향을 준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는 “교권과 임용률 등 현실적인 문제에 많은 친구가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서울 중랑구의 한 초등학교 교사로 임용된 김모(29)씨는 “함께 임용시험을 준비한 친구 중 절반이 포기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지난해 초등 교원 임용 합격률은 48.6%. 2018년 63.9%를 찍고는 5년 연속 내리막길이다. 저출산으로 학생 수가 줄면서 신임 교원 정원 수도 줄였기 때문이다.

그래픽=김이랑 기자 kim.yirang@joins.com
학생들의 고민과 망설임은 통계로도 드러난다. 수도권 교대(서울교대·경인교대·이화여대 초등교육과)의 중도 탈락자는 2019년(해당 연도 모집 정원 1102명) 26명에서 2023년(모집 정원 1191명) 155명으로 5년 동안 6배 증가했다. 특히 서울교대의 경우 중도에 포기한 인원은 2019년 11명이었지만, 2022년 53명, 2023년 83명까지 급증했다. 8배에 육박한다. 지역의 10개 교대 및 한국교원대, 제주대 초등교육과의 중도 탈락자는 2022년 307명에서 2023년 341명으로 늘었다. 임성호 종로학원 대표는 “교대 중도 탈락자는 수도권이 비수도권보다 심각한 상황”이라며 “수도권의 교대 기피 현상은 2024학년도 대학입시에서도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심유진씨(동국대학교 지리교육과 4학년)는 어려서부터 공감을 잘했다고 한다. 심씨는 친구들의 상담사였고, 선생님이었다. “도움을 준 중학교 친구의 성적이 좋아지자 나의 도움으로 누군가 성장하는구나 싶어 교사를 꿈꾸게 됐다”고 심씨는 말했다. 그런데 심씨는 “교권과 관련된 수업을 들었는데, 한 아이가 수업 중에 칠판 앞에 누워서 선생님(여성)을 스마트폰으로 촬영하는 영상을 보고는 충격을 받았다”고 밝혔다. 해당 사건은 지난해 8월 충남 홍성의 한 중학교에서 벌어졌다. 심씨는 그 영상을 다시 떠올리며 “선생님을 어떻게 생각하면…그런 상황이라면 내가 무얼 할 수 있지, 눈앞이 캄캄해졌다”고 했다.

교사를 향한 압박은 교실 안팎에서 쏟아지고 있다. 체험학습 중 돈이 부족하다는 학생에게 밥을 사줬다가 학부모에게 ‘거지 취급하냐’며 항의를 받고, 학생이 교탁 밑에 숨긴 스마트폰으로 치마 속이 촬영되기도 했다. 교육부에 따르면 2022학년도 교권보호위원회에서 심의한 교육활동 침해 건수는 3035건으로 2021학년도(2269건)보다 33.8%(766건) 늘었다. 학생에 의한 모욕·명예훼손이 각각 56.9%(1611건)로 가장 많았다. 교사들은 교직 생활 중 가장 큰 어려움으로 ‘문제행동·부적응 학생 등 생활지도(30.4%)’를 꼽았다. ‘교권은 잘 보호되고 있지 않다’는 교사들의 응답은 69.7%에 달했는데, 2021년 50.6%, 2022년 55.8%에서 증가하고 있다.

심씨의 우려처럼 학교 내에서 교사가 학생들의 돌발행동을 통제할 수 있는 방법은 제한적이다. 생활기록부나 벌점에 연연하지 않는 학생이면 더더욱 그렇다. 연일 교육계에서 현행 ‘아동학대처벌법’을 개정해 교사 교육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이유다. 교사들의 정상적인 교육 활동을 위해서는 학생 지도 과정에서 불거질 수 있는 아동학대처벌법상의 면책 조항 등을 확대해야 한다고 요구한다. 송기창 숙명여대 교육학부 교수는 “현재아동학대 기준은 너무 포괄적이라 선생님이 조금만 소리쳐도 ‘정서적 학대’가 되는 경우도 있다”며 “구체적이고 명확하게 지도와 학대를 구분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교사가 행정업무에 신경 쓰다 보니 핵심 역할인 가르침에 소홀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행정업무는 카드단말기·CCTV·정수기 관리, 급여 계산 등에 이르기까지 폭넓다. 한국교육개발원은 최근 교사들의 행정업무 할애 시간이 지난 10년 새 주당 5.73시간에서 7.23시간으로 28% 늘었다고 발표했다. 또 한국교총에 따르면, 행정업무에 대해 ‘많다(매우 많다 포함)’라고 응답한 교원이 전체 응답자의 90.7%로, 부담감을 호소했다.

학부모의 민원은 엎친 데 덮치는 부담이다. 지역의 한 대학 체육교육과 3학년인 유재성(25·가명)씨는 “임용이 되더라도 학부모를 어떻게 대할지 벌써 고민”이라고 말할 정도다. 일선 교사 중 학부모의 쏟아지는 민원 때문에 핸드폰을 두 개 쓰는 이들도 많다고 알려져 있다. 민원 요구에 적절히 응대하지 못하면 학부모들이 담임 교사 교체를 요구하기도 한다. 때로는 담임 교사 교체 자체가 해당 학교에 대한 민원이 되기도 한다.

지난달 14일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정경희 국민의힘 의원실이 서울시교육청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7년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서울시 초·중·고등학교에서 학부모들의 요구로 담임 교체가 이뤄진 경우는 총 90건. 올 하반기를 제외하더라도 연평균 13건이다. 앞서 ‘서이초 사건’도 학부모의 악성 민원으로 새내기 교사가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밝혀졌다. 또 교육부 소속 사무관이 ‘(우리 아이는) 왕의 DNA’라는 표현을 일삼으며 담임 교체를 요구한 사례도 결국 학부모의 입김이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남기 광주교대 교육학과 교수는 “예산과 인력을 투입해 ‘학부모 민원처리실’을 만들어야 한다”며 “그게 안 된다면 전자 시스템을 통해, 학부모 단체를 통해 억지스러운 민원들은 걸러내고 교사들을 보호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박 교수는 또 “교사들도 학부모에게 적절한 대응을 할 수 있도록 ‘교직 실무’ 과목을 강화 해 다양한 매뉴얼로 교사들의 대응역량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학부모 요구로 담임 교체, 서울서 6년간 90건

“그래도, 아이들을 포기할 수는 없어요.”

심유진씨는 “지금의 현실만 보면 아이들을 포기할까 봐 두렵다”면서도 “어렵겠지만, 내가 교사가 돼 나를 가르친 선생님처럼 아이들을 좀 더 좋은 환경에서 배우고 자라도록 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성예림씨도 “현실은 핑크빛이 아닐지도 모르지만 도망치기보다 직접 현장에서 아이들과 소통하며 더 나은 교육을 실천하고 싶다”고 말했다. 구경원씨는 “아이들이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친구처럼 나를 찾아올 수 있었으면 좋겠다”며 “내가 알바로 있는 학원과 내가 꿈꾸는 학교에서의 역할은 분명 다를 것이고, 공부도 중요하지만, 아이들의 생활도 가르치면 나도 행복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화여대 사회교육학과 이상연(22)씨는 “내게 좋은 선생님들이 계셔서 지금의 내가 있는 것이고 선생님이 미래의 내 모습이라고 생각해 왔다”며 “모든 상황이 어렵지만, 내가 조금 바꾸고, 다른 분들도 조금씩 바꾸면 좋아질 것 아닌가”라며 웃었다. 이들뿐만 아니라 수백 명이 교사의 꿈을 안고, 고민도 품고 있다.

임용고시부터 교권, 행정업무, 민원, 임금 등 첩첩산중 혹은 망망대해가 기다리고 있다. 이범 교육 평론가는 “교대나 사범대에 가는 학생들은 결코 가벼운 마음으로 선생님이라는 직업을 선택하지 않는다”며 “아이들이 꿈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제도를 잘 다듬는 것이 사회의 역할”이라고 전했다. 만난 학생 중 ‘교단에 선다’ ‘교편을 잡는다’는 은유적 표현을 쓴 이는 없었다. 직접 이렇게 말했다. “그래도, 선생님이 되지 않으면 평생 후회할 것 같아요”

김홍준·원동욱 기자 rimr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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