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당 61만원 하던 철근 값 100만원 넘어, 주택 착공·인허가 급감 [인플레 암초에 막힌 주택 공급]
SPECIAL REPORT
최근 주택 착공·인허가 물량이 크게 줄어든 데는 원자잿값 상승이 큰 영향을 미쳤다는 게 건설업계의 분석이다. 대한건설협회에 따르면 아파트 건축에 많이 쓰이는 5대 주요 건축자재 가격은 꾸준히 상승했다. 특히 코로나19 이후 3년 간 가격이 확 뛰었다. 벌크 시멘트 가격은 3년 전에는 t당 7만5000원이었지만 지금은 54%가량 오른 11만6600원 선이다. 철근 역시 2020년 t당 61만5000원이었지만 지금은 63% 오른 100만5000원이다. 실내 인테리어에 주로 쓰는 중밀도섬유판(MDF)은 3년 전 장당 1만6000원이었지만 지금은 이보다 75% 오른 2만8010원이다. 건설업계의 한 관계자는 “코로나19로 글로벌 공급망이 붕괴됐을 때 공급 부족으로 자재비가 한 차례 급등했는데, 뒤이어 터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으로 공사비 부담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벌크 시멘트 가격 3년 새 54% 올라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한 중앙은행의 긴축 정책도 주택 공급을 위축시키고 있다. 아파트 등 부동산 개발은 땅값과 공사비가 수천억원에 이르는 만큼 대부분 프로젝트파이낸싱(PF)을 통해 자금을 조달한다. 금융권으로부터 수천억원의 사업비를 우선 빌려와 사업을 진행하기 때문에, 중앙은행의 기준금리 인상으로 인한 대출 금리 상승에 직격탄 맞을 수밖에 없다. 건설업계에 따르면 지역·사업별로 제각각이긴 하지만, 2년 전 연 4~5% 선이던 PF 금리는 최근 8~9%까지 급등했다. 만기가 돌아왔거나 PF를 연장한 사업장은 이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는 얘기다.
이로 인해 PF 연체율도 상승하고 있다. 3월 말 기준 부동산 PF 연체율은 2.01%로 지난해 말 1.19%에서 3개월 만에 0.82%포인트 상승했다. 그나마 PF에 성공하면 다행이지만, 금융시장 불안으로 지난해 이후 PF가 사실상 중단된 상태다. 그러다 보니 자금줄이 막힌 건설사의 도산이 이어지고 있다. 건설산업지식정보시스템(KISCON)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종합건설기업 폐업 건수는 248건으로, 2011년 상반기(310건) 이후 최대치다. 권대중 서강대 대학원 부동산학과 교수는 “(건설업계가) 고금리에 부동산 경기 위축으로 PF마저 막히며 자금 순환이 안 되는 상황”이라며 “양질의 PF를 늘려 인허가를 받고도 착공하지 못하는 사례를 막아야 숨통이 트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원자재 가격과 금융비용이 상승하면 건설사 입장에서는 이를 분양가에 포함하거나 공사비를 증액해 채산성을 높이면 된다. 하지만 주택 개발 구조상 이게 쉽지 않기 때문에 공사비 증가가 주택 착공·인허가 감소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건설사가 땅을 사 주택을 개발하는 경우 아파트를 선(先)분양하기 때문에 분양가 인상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재개발·재건축조합이나 부동산개발업체 등 시행사가 끼어 있는 사업장의 경우 공사비를 올리려면 시행사와 건설사 간에 합의가 이뤄져야 하지만 쉽지 않다. 지난해 서울 강동구 둔촌주공(올림픽파크 포레온) 공사 중단 사태가 단적인 예다. 재건축조합이 공사비 증액을 거부하면서 건설사가 공사를 중단했던 현장이다.
3.3㎖당 490만원→859만원 인상 요구도
앞서 부산시민공원 촉진2-1구역(건설사 GS건설), 성남 산성구역(대우건설·GS건설·SK에코플랜트)도 공사비 증액 문제로 조합과 시공사 간 계약이 해지됐다. 정비업계의 한 관계자는 “건설사 재선정 절차에 들어가면 사업이 수년간 지연되는 데다 원자잿값이 계속 오르고 있어 공사비가 더 뛸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도심의 재개발·재건축은 윤석열 정부의 핵심 주택 공급지다. 윤 대통령은 대선 후보시절부터 도심에서의 주택 공급을 강조해 왔다. 정부가 중점적으로 주택 공급을 추진하는 도심에서 공사비 문제로 사업이 계속 지연되고 있는 것이다.
업계에서는 당분간 주택 착공·인허가 물량 감소가 불가피할 것으로 본다. 오른 공사비가 내릴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는 데다 주택담보대출 이자 상승, 경기 침체로 주택 수요가 쪼그라들고 있기 때문이다. 국토부에 따르면 6월 기준 전국 미분양 주택은 6만6388가구로, 이 중 85%인 5만5829가구가 지방에 몰려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이번 주(4일 기준) 서울 아파트 매매수급지수는 89.0으로 지난주(89.2)보다 0.2포인트 하락했다. 매매수급지수는 기준선인 100보다 낮을수록 아파트를 사려는 사람보다 팔려는 사람이 많다는 뜻이다. 정부의 주택 공급 계획에도 상당한 차질이 생길 수 있다는 얘기다. 서진형 공정주택포럼 공동대표(경인여대 교수)는 “재개발·재건축은 15~20년이 걸리는데 속도를 내야 할 민간 정비사업이 공사비 갈등으로 계속 늦춰지는 추세”라며 “특히 서울의 경우 민간 공급 비중이 90%에 달해 향후 공급에 큰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고 말했다.
윤 정부는 출범 직후 임기 내 5년간 270만 가구를 공급하겠다고 강조했다. ‘공급 과잉’ 우려가 나오더라도 충분한 주택을 시장에 공급해 주택시장을 안정화시킨다는 취지였다. 공급에 자신감도 보였다. 하지만 인플레이션 속에 주택 공급 스텝이 꼬이면서 1년에 만에 주택 공급 활성화 대책까지 내놓게 됐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정부의 주택 공급의 핵심은 민간인데, 민간이 움직이려면 결국 사업성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최근의 주택 착공·인허가 물량 감소가 일시적일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착공·인허가 물량이 줄었지만 반드시 주택 공급 부족으로 이어지진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임재만 세종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업계가 어려움 속에서 옥석을 가리는 것으로 해석하면 과거에 비해 인허가 물량이 줄었다고 해도 준공 비율이 높아질 수도 있다”며 “신축 아파트가 감소하더라도 기존 매물을 비롯해 미분양 물량도 여전한 상태라 절대량이 부족하다고 보긴 어렵다”고 말했다.
허정연 기자 jypow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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