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열선시트도 월정액 내야 이용…‘구독플레이션’ 심화 우려

2023. 9. 9. 0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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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산되는 구독경제의 그늘
LG전자 류재철 사장이 최근 세탁기 등을 구독 방식으로만 사용할 수 있는 ‘LG UP가전 2.0’ 서비스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뉴스1]
날씨가 더워 자동차 에어컨을 틀었는데 찬바람이 나오지 않는다. 창문이라도 열기 위해 버튼을 눌러봐도 요지부동이다. 약속 장소를 찾아 가려는데, 내비게이션마저 안 된다. 산 지 일주일도 안 된 새 차인데 말이다. 소셜미디어네트워크(SNS)를 하기 위해 큰 맘 먹고 구입한 새 스마트폰을 꺼냈는데, 어찌된 일인지 아무리 눌러도 사진이 찍히지 않는다.

집에 와서 TV, 세탁기, 공기청정기를 틀었는데 다 작동하지 않는다. 도대체 왜 그런 걸까. 오늘 사용한 자동차·전자제품이 모두 한꺼번에 고장이라도 난 걸까. 고장이 아니다. 자동차·전자제품은 모두 정상이다. 정답은 바로 ‘구독(購讀)료’를 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납부 마감일이 지났는데도 구독료를 내지 못했기 때문에 자동차, 스마트폰, 전자제품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던 것이다.

뜬금없는 이야기 같지만, 현재 일어나고 있거나 조만간 벌어질 일이다. 미국의 신용평가사인 스탠더드앤푸어스(S&P)에 따르면 최근 주목 받고 있는 생성형 인공지능(AI) 시장 규모는 5년 후인 2028년 363억5810만 달러(약 48조6000억원)에 이를 전망이다. 그런데 글로벌 투자은행 UBS는 ‘구독경제(subscription economy)’ 시장은 연 평균 18%씩 성장해 2025년 1조5000억 달러(약 2004조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한다. 단순 비교는 힘들지만, 생성형 AI시장 규모의 40배 이상이다.

테슬라 자율주행도 구독 서비스

구독은 과거 책이나 신문을 사서 읽는다는 의미로 쓰였다. 하지만 최근에는 월정액을 내고 정기적으로 특정 상품·서비스를 사용하는 행위·거래 전체를 뜻하는 단어로 외연이 확대됐다. 산업 현장에서는 이를 구독경제라고 부른다. 사실 구독이라는 산업 자체는 오래전부터 있던 전통 산업이다. 여기에 새로운 산업인 정보통신기술(ICT)이 접목되면서 세계 경제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구독과는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자동차·가전·의료 등의 분야에서도 구독 서비스가 등장하고 있다.

UBS는 머지않아 구독경제가 산업계 전반의 새로운 유통 트렌드로 자리를 잡을 것으로 전망한다. 실제 최근 세계 경제를 이끌고 있는 마이크로소프트(MS)·애플·구글·아마존·테슬라는 모두 구독경제 서비스 회사다. ‘구독과 좋아요’로 대표되는 유튜브는 말할 것도 없고, MS의 윈도우와 오피스365, 아마존프라임, 테슬라의 자율주행(FSD) 제품·서비스가 모두 구독 상품이다. 심지어 요즘에는 우주도 구독하고 있다. 몇 년 전 MS는 인공위성을 이용할 수 있는 클라우드 구독 서비스를 선보였다.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 우리 생활 전반에 자리 잡은 구독경제는 그러나 최근 새로운 변곡점을 맞고 있다. 지난해 7월 독일의 완성차 브랜드인 BMW의 ‘엉따’(열선시트) 사건이 대표적이다. 당시 BMW가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한 ‘커넥티드 서비스’가 수요자 사이에서 화제였는데, 이 서비스는 매달 2만4000원의 요금을 내야 열선시트와 스티어링휠 온열 기능을 사용할 수 있는 서비스다. 원래 자동차에 있던 기능을 돈을 내고 구독하라고 하니 소비자들로부터 비난을 받았고, 결국 BMW 측이 손을 들면서 일단락됐다.

그래픽=양유정 기자 yang.yujeong@joongang.co.kr
하지만 이런 사례는 꽤 있다. 또 다른 독일의 완성차 브랜드 메르세데스-벤츠는 연간 1200달러(약 150만원)를 내면 전기차 가속력이 향상되는 구독 서비스를 내놓았다. 이 서비스를 구독하면 제로백(0100㎞/h)이 기존 대비 0.8초에서 1초가량 빨라지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이 뿐만 아니라 벤츠는 유럽에서 전기차 EQS의 옵션인 후륜 조향 기능을 구독 형태로 제공하고 있다. 연간 575달러(약 70만원)가량의 구독료를 내면 뒷바퀴가 10도까지 꺾여 주차가 편리한 후륜 조향 기능을 사용할 수 있다.

그동안 소비자는 자동차를 구매할 때 추가 비용을 지불하고 ‘옵션’이란 명목의 추가 기능을 사용했다. 열선시트나 후륜 조향 기능 등이 과거에는 모두 옵션이었던 것이다. 자동차를 살 때 이 옵션을 선택하지 않으면 아예 하드웨어 자체가 설치되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는 양상이 달라졌다. 자동차를 출고할 때 추가 기능에 필요한 모든 하드웨어를 설치해 놓은 뒤, 구독료를 내는 소비자에게만 소프트웨어를 통해 해당 기능을 열어주는 것이다. 구독료를 내지 않으면 달리고 서는 기본 기능 외에 다른 추가 기능은 사용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이런 사례는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핵심 기능을 구독 서비스로 전환해 소비자가 ‘강제구독’ 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삼성전자와 애플이 스마트폰 일부 기능을 구독 서비스로 사용할 수 있게 된다면 어떨까. 알람 기능은 월 2000원, 일정 관리는 월 3000원, 카메라는 월 5000원 하는 식이다. 이렇게 되면 우리는 어쩔 수 없이 강제구독할 수밖에 없다. 모든 메이저 완성차 메이커들이 자동차를 구독 서비스로만 사용할 수 있게 한다면? 소비자로서는 어쩔 수 없이 자동차를 구독해야 하는 상황이 올 수 있다. 비단 자동차뿐 아니라 모든 제품과 서비스가 강제구독 대상이 될 수 있다. 이 같은 강제구독은 기업이 충성고객을 만들고, 수익률을 높이려는 전략이기도 하다. 구독경제 세상에 적응 못한 기업들은 생존의 위기를 맞을 수 있다.

문제는 강제구독 이후다. 미국의 월스트리트저널은 최근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의 구독료(광고 미포함 기준)가 1년 새 평균 25%가량 상승했다고 보도했다. 유튜브는 7월 미국에서 광고 없이 시청이 가능한 ‘유튜브프리미엄’ 구독료를 월 11.99달러에서 13.99달러로 약 19% 인상했다. 2015년 처음 내놓은 유튜브프리미엄의 전신인 ‘유튜브 레드’ 이용료가 월 9.99달러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최초 서비스 시작 이후 40%가량 가격이 인상된 것이다.

넷플릭스도 광고 없이 시청할 수 있는 최저 구독료를 7월 사실상 55% 인상했다. 넷플릭스는 미국에서 광고 없이 시청할 수 있는 월 9.99달러짜리 ‘베이직’ 상품을 7월부터 판매하지 않고 있다. 가입자는 6.99달러를 내고 광고를 시청하거나, 광고 없이 시청할 수 있는 최저가 상품인 스탠다드(15.99달러) 서비스를 이용해야 한다. 디즈니플러스도 11월부터 사실상 40%가량 요금을 인상한다.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 구독 서비스 이용료 즉, 구독료가 계속 오르고 있다는 것이다. 구독료가 비정상적으로 오르면 구독을 해지하면 되지만, 강제구독 시대에는 이 또한 쉽지 않을 것이다. 강제구독에 이어 구독료 인상으로 소비자들의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S&P에 따르면 미국에서는 가구당 평균 4.1개의 OTT를 구독하고 매달 구독료로 29.24달러를 지불한다. 이 금액은 2018년 대비 2배 이상 오른 것이다. 이처럼 강제구독 뒤 이어지는 구독료 인상을 필자는 구독플레이션(구독+인플레이션)이라고 부른다. 구독플레이션은 갈수록 더 거세질 가능성이 크다. 특히 구독 서비스에 AI 기술이 추가되면 그 비용 역시 구독자가 지불해야 할 수 있다.

우리는 지금도 통신비, 스마트폰, OTT, 각종 소프트웨어, 공기청정기 등의 구독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다. 한 가정에서 이미 최소 수십만원의 구독료를 내고 있다는 얘기다. 미국의 리서치회사 가트너의 전망처럼 우리가 사용하는 서비스의 75%가 구독화된다면 그 비용은 가정경제의 상당 부분을 차지할 것이다. 강제구독과 구독인플레이션은 모든 제품과 서비스의 가치 상승 없이 만만한 소비자에게 계속 비용을 떠넘기는 일들이 일상이 될 수도 있다. 특히 구독플레이션은 가정경제 위기의 가장 큰 원인이자, 궁극적으로 구독할 수 있는 자와 할 수 없는 자로 나눠지는 새로운 양극화의 주요 원인이 될 것이다.

구독플레이션, 양극화 부추길 듯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해 선제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 구독은 쉬우나 해지하기는 어려운 ‘다크패턴’(사용자를 속이기 위해 디자인·설계된 인터페이스) 문제도 해결해야 할 과제다. 무료에서 유료로 은근슬쩍 넘어가던 다크넛지 역시 한 번 고지하도록 할 게 아니라 구독료 지출 때마다 구독자에게 알리는 방식으로 바뀌어야 한다. 아울러 구독경제 시대에 발 맞춰 국내 기업들의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하는 것과 동시에 소비자의 권리를 보호할 수 있는 ‘구경특별법’(구독경제특별법) 입법도 고려할 만하다. 미국에서는 완성차 메이커에 지속적인 비용이 투입되지 않는 하드웨어의 구독 서비스를 금지하는 법안이 발의되기도 했다.

소비자의 선택권이 박탈된 미래가 오고 있다. 어쩌면 우리의 미래에는 그 무엇도 살 수 없는 시대에 살게 될지도 모른다. 구독은 해지하지 않는 한 죽는 순간까지 돈을 지불해야 한다. 그래서 평생에 걸쳐 비용이 들고, 그 비용은 서비스와 제품 숫자에 정비례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 갈 것이다. 소비자 보호와 동시에 우리 기업 및 소상공인이 구독 서비스를 통해서 경쟁력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국회와 정부의 관심이 절실한 때다. 미래를 준비하지 않는 이에게 미래는 그저 앞으로 지나갈 불행한 과거에 불과하다.

전호겸 서울벤처대학원대학교 구독경제전략연구센터장. 대기업에서 20년간 근무하면서 신사업개발, 스타트업 발굴, 지속가능경영 등의 혁신 업무를 수행했다. 저서로는 『구독경제:소유의 종말』이 있다. 혁신경제 전문가로 KBS1라디오에서 ‘성공예감’에서 ‘역발상 경제’ 코너를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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