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중국 반도체 굴기와 한국의 딜레마

2023. 9. 9.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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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제재를 받아 온 화웨이가 중국 반도체 제조업체 SMIC로부터 공급받은 7㎚ 공정 프로세서를 탑재한 신형 프리미엄 스마 트폰 ‘메이트60 프로’를 출시했다. 지난달 30일 베이징 시내 한 쇼핑몰에서 중국 소비자들이 메이트60 프로 광고판을 지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중국, 미국 제재에도 반도체 자립 총력전


7나노 첨단폰 개발하고 아이폰 사용 제한


초격차 기술 유지하며 미·중 격돌 넘어야
중국의 반도체 자립에 가속도가 붙고 있다. 중국 IT기업 화웨이가 최근 7나노미터(㎚·10억분의 1m) 공정 프로세서가 내장된 새 스마트폰 ‘메이트 60 프로’를 출시했다. 이번 스마트폰에 들어간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는 중국 최대 파운드리 기업 SMIC의 ‘기린 9000s’로 확인됐다. 2020년 미국의 제재 이후 최신 스마트폰을 생산하지 못한 화웨이가 3년 만에 자체 개발에 성공했다.

통상 7나노급 이하는 네덜란드 기업 ASML의 극자외선(EUV) 노광장비로 만들 수 있다. 그간 중국은 미국의 제재로 EUV 장비를 쓸 수 없었다. 대신 SMIC는 구형 심자외선(DUV) 장비를 반복 진행하는 방식으로, 7나노급 미세 회로를 만든 것으로 보인다. 대만 TSMC가 수년 전 EUV 없이 7나노 공정을 구현한 것과 유사한 방법이다.

화웨이의 7나노 스마트폰 개발은 미국의 대중 반도체 제재 실효성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미국의 기술 통제가 당초 의도와 반대로 중국의 반도체 자립을 가속할 것”이라는 우려다. 화웨이 스마트폰을 분석한 테크인사이트는 “중국 정부의 반도체 생태계 구축 노력이 어느 정도 진전됐다는 것을 시사한다”며 “(이번 일은 미국의) 뺨을 때리는 일”이라고 표현했다.

당장 미국에선 강경 목소리가 잇따르고 있다. 마이크 갤러거 하원의원은 “중국기업에 모든 기술 수출을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워싱턴포스트는 “미국의 제재가 중국의 핵심기술 발전을 막는 데 실패했다는 우려를 촉발했다”고 보도했다. 게다가 중국이 “공무원은 아이폰을 쓰지 말라”며 미국에 역공하면서 첨단 테크를 둘러싼 양국의 대립이 격화하고 있다.

문제는 딜레마에 빠진 우리나라다. 미국의 기술통제와 수출 규제로 거대 중국 반도체 시장을 잃어가고 있다. 중국의 반도체 자립에 속도가 붙는다면, 반도체로 먹고사는 한국 경제에 먹구름이 드리울 수밖에 없다. 현재 중국은 반도체 굴기를 위해 정부와 민간이 대대적인 투자에 나서고 있다. 반도체 산업 활성화를 위해 3000억 위안(약 54조7000억원) 규모의 ‘중국집적회로산업투자기금’을 새로 조성할 계획이다.

우리나라 메모리 기술은 지금껏 중국보다 2~5년 이상 앞서 온 것으로 평가됐다. 하지만 중국의 반도체 자립이 빨라지면 우리가 설 땅이 좁아질 수밖에 없다. 한때 중국 시장에서 1등이었던 스마트폰 점유율이 최근 1%대로 추락하지 않았는가. 반도체는 우리나라 총수출의 약 20%를 차지하는 최대 효자 품목이다. 또 중국(홍콩 포함)은 우리 반도체 수출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국가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중국 시안과 쑤저우·다롄·충칭에 반도체 공장을 두고 있다. 미 정부는 지난해 10월 중국의 생산 기업에 미국산 첨단 반도체 부품과 제조 장비를 판매하는 것을 사실상 금지하는 통제 조치를 내렸다. 당시 미국은 한국과 대만 기업에 한해 1년간 한시적으로 예외를 허용했지만, 시한이 끝나는 다음 달부터 상황이 어떻게 변할지 불투명하다.

한국 반도체의 살길은 초격차 기술 유지와 파격적 지원뿐이다. 반면 전망은 밝지 않다. 내년 R&D 예산 대폭 삭감 정책에 따라 반도체 분야도 큰 영향을 받았다. 총액 기준으론 소폭 상승했으나 ‘인공지능반도체 혁신기업 집중육성 사업’ ‘차세대 지능형반도체 기술개발’ 등 주요 반도체 분야 예산이 크게 줄었다. 지금은 반도체 진흥을 위한 총체적 밑그림과 실천 방안을 새롭게 짤 때다. 대미 반도체 협상 전략도 세심하게 가다듬어야 한다. 반도체 없는 우리의 미래는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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