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즈 서울로 본 K아티스트: 단색화 이후 세대·국내파 작가들 떠오른다
프리즈 서울로 본 K아티스트
‘화려한 구경거리는 줄었고, 한결 정돈된 분위기에 퀄리티와 실속 있는 작품은 늘었다.’ 9일 막을 내리는 제2회 프리즈 서울에 대해 이러한 평이 많이 나온다. 또 하나 눈에 띄는 변화는 해외 대형 갤러리 부스에 새로운 한국 작가들 작품이 많이 출현했다는 것이다. 과거에는 박서보·이우환 등 단색화 거장과 서도호·이불 등 유명한 해외파 작가 몇몇에 한정되어 있었다. 그런데 올해는 국내에서 활동하는 작가들이 여럿 소개되고 있다.
“구경거리 줄고 실속 있는 작품 늘어”
예컨대, 오스트리아 갤러리 타데우스 로팍의 프리즈 서울 부스에는 이불 작가의 회화와 함께, 갤러리가 새롭게 영입한 30대 젊은 작가 정희민의 작품이 걸려 있다. 디지털 이미지를 회화와 조각으로 변환하는 작가로서, 홍익대학교와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공부한 국내파이다.
또한 뉴욕 기반의 갤러리 리만 머핀 부스에는 갤러리와 오래 함께 해온 작가들인 서도호와 이불의 작품은 물론, 갤러리가 최근 신규 영입한 성능경·홍순명 작가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이들은 각각 70대와 60대의 나이로 꾸준히 활동해 오다가 최근 들어 ‘한국적 개념미술의 선구자’(성능경), ‘회화의 개념을 확장한 화가’(홍순명) 등으로 조명을 받고 있다. 한국의 주요 화랑인 삼청동 갤러리현대는 ‘성능경의 망친 예술 행각’ 전시를 프리즈 서울 기간에 맞춰 열어 작가 홍보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한편 이탈리아 갤러리 마시모 데 카를로의 프리즈 서울 부스에는 이수경 작가의 조각이 대거 나와 있다. 전통 도자기 파편을 모아 뭉게뭉게 증식하는 형태로 다시 구축한, 작가의 대표적 스타일의 조각들이다. 이미 유럽에서 많은 인기를 얻고 있는 작가지만, 세계 주요 아트 컬렉터로 손꼽히는 스위스 사업가 울리 지그가 최근에 작가의 작품을 수십 점 사들인 영향도 있어 보인다고 프리즈 관계자는 귀띔했다.
올해 2회째를 맞은 프리즈 서울의 흥행과 최근 활발한 글로벌 대형 갤러리들의 서울 진출이 과연 K아트에 얼마나 도움이 될지에 대해 결론을 내리기에는 아직 이르지만 이와 같은 모습들은 긍정적인 신호로 읽힌다.
한국의 대표 사립미술관인 리움미술관의 김성원 부관장은 이렇게 평했다. “1990년대와 200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한국 작가들은 유학을 하거나 해외에서 작업을 해야 자신을 알릴 수 있었다. 그렇게 해서 세계적인 작가가 된 케이스가 김수자·서도호·이불·양혜규 등이다. 그러나 이제는 국내에서 활동하고 있어도 외국 미술관과 갤러리 관계자들이 한국으로 작가들을 보러 온다. K팝과 K영화·드라마 등 K컬처가 뜬 상황에서 프리즈 서울이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고 본다. 그러한 경향이 3년 전부터, 즉 지난해 제1회 프리즈 서울이 준비되던 시점부터 두드러지고 있다.”
따라서 미술계의 양대 축인 시장영역의 상업 갤러리(화랑)들과 공공영역의 미술관 및 문화예술 지원 기관들은 프리즈 서울 기간 방한하는 외국 미술 관계자들을 대상으로 한국 작가들 홍보에 전력을 다하는 모양새다. 특히, 단색화 열풍 이후 미술시장에서 세계적 스타로 떠오른 작가들이 별로 없었기에 단색화 이후 세대 작가들에 집중하고 있다. 프리즈 서울 기간에 서울 3대 미술거리인 삼청동, 한남동, 청담동-도산공원의 주요 미술관과 화랑에서 어느 작가의 전시를 열고 있는지 보면 지금 민관이 세계 미술시장에서 스타성이 있다고 판단하는 주요 한국미술가가 누구인지 알 수 있다.
한남동 리움미술관은 40대 작가인 강서경의 개인전을 9월 7일에 시작했다. 전통 시가와 춤 등에서 영감을 받아 이를 현대의 사회적인 맥락에서 재해석해 추상적으로 구현한 작품을 창작해 온 작가다. 최근 몇 년간 베니스 비엔날레 본전시 등에 초청받으며 해외에서 주목받고 있다. 리움에서는 이와 함께 ‘한국 개념미술의 대표주자’인 60대 작가 김범의 대규모 회고전을 열고 있다. 강·김 작가 모두 개념미술의 범주에 넣을 수 있다. 개념미술은 일상 사물의 설치, 비디오, 퍼포먼스 등등 온갖 장르를 섞은 작품을 통해 어떤 개념을 창출하는 것이 목적인 예술. 이해하기 쉽지 않지만, 종종 허를 찌르는 기발함이나 유머로 고정관념을 벗어나게 해준다.
한편 삼청동 미술거리의 국립현대미술관에서는 현대자동차의 후원을 받아 주요 작가의 반회고전을 여는 ‘MMCA 현대차 시리즈’의 일환으로 ‘정연두-백년 여행기’를 9월 6일 시작했다. 50대 작가인 정연두는 평범한 사람들의 개별 서사와 역사적 거대 서사가 어떻게 역설적으로 얽혀 있는지를 퍼포먼스와 사진, 영화 등으로 풀어내왔다.
또한 인근의 국제갤러리는 세계적인 미술가 양혜규의 전시 ‘동면 한옥’을 시작했는데, 한옥 공간을 이용해 작가의 유명한 조각 작품과 잘 보인 적이 없던 평면 작업을 함께 독특하게 설치한 미니 회고전이다. 또다른 메이저 갤러리 PKM은 역시 세계적인 미술가인 구정아의 개인전 ‘공중부양’을 9월 6일 시작했다. 작가는 내년 제 60회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의 단독 작가로 선정되어 있기도 하다.
서구 미술의 한국 시장 장악 우려 줄어
이러한 작가들은 해외 주요 비엔날레와 미술관 전시 등을 통해 이미 외국의 공공영역에서는 명성이 높으나, 시장영역에서는 다소 저평가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편 이보다 좀더 젊은 세대의 작가들을 적극 홍보하는 갤러리와 미술관들도 있다. 삼청동 미술거리의 학고재 갤러리는 3040 젊은 작가 이우성과 지근욱의 개인전을 열고 있다. 이우성은 민중미술과 독일의 구상회화를 동시에 연상시키는 화풍으로 한국 동시대 청년들의 삶을 예리하게 잡아내는 화가이며, 지근욱은 색연필로 우주적 분위기의 거대 추상화를 그려내는 화가이다.
또한 한남동 미술거리의 갤러리바톤 개인전에서 건조하면서도 신비로운 초현실주의적인 작품을 선보이고 있는 30대 작가 이재석, 새로 서울에 진출해 도산공원 근처에 자리를 튼 글로벌 대형 갤러리 화이트큐브의 개관전에 유일한 한국 작가로 참여한 40대 작가 이진주 등을 눈여겨볼 만하다. 이 작가는 아라리오 갤러리 소속으로 아라리오 프리즈 서울 부스에서도 작품을 선보이고 있는데, 진화한 형태와 안료의 동양화 채색화 기법으로 인간의 미묘한 심리 상태를 표현한다.
한편 한국의 젊은 갤러리로 프리즈 서울에 2회째 참가 중인 제이슨함 갤러리는 지난해 프리즈 서울 부스에서 큰 인기를 끈 20대 젊은 작가 이목하의 개인전 ‘창백한 말’을 성북동 갤러리 본관에서 2일에 시작했다. 동시대 청년 여성의 복합적 심리가 담긴 모습을 거대 화폭에 그려낸 작품을 선보인다. 또한 이번 프리즈 서울에서도 다른 작가들과 더불어 이목하 작가의 대형 회화가 나왔는데 개막 첫날에 팔렸다.
제이슨 함 갤러리의 함윤철 대표는 “앞으로 외국 갤러리들이 한국과 한국계 젊은 작가 발굴에 열을 올릴 것”이라며 “그들도 한국에 갤러리를 열었는데 한국 작가들을 발굴하지 않으면 결국 외면당하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한국 갤러리들이 뛰어난 한국 작가들을 외국 메가갤러리들에 빼앗기지 않겠느냐는 질문에 그는 “요즘은 작가가 한 갤러리와만 배타적으로 일하는 개념이 아니다. 작가로서도 글로벌 메가갤러리가 요구하는 대형 작품만 만들기 힘들기 때문에 메가갤러리와 한국 갤러리와 함께 일하는 것을 더 선호한다”며 자신감을 표했다.
프리즈 서울과 대형 외국 갤러리의 한국 진출이 단지 서구 갤러리와 서구 미술가들의 한국 시장 장악으로 끝나리라는 일각의 우려도 있지만 이렇게 낙관적인 시각과 희망적 조짐들도 존재한다. 더 지켜볼 일이다.
문소영 기자 sym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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