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편적 가치와 국익…그 결합에 성패 달려
헨리 키신저 지음
김성훈 옮김
김앤김북스
미국 현실주의 외교 거장 키신저의 1994년 저서가 30년 만에 한국어판으로 나왔다. 옮긴이는 현직 외교관인 김성훈 주유엔한국대표부 참사관이다.
이 책은 30년 전쟁 이후의 베스트팔렌 체제부터 나폴레옹전쟁 이후 빈 체제, 독일 통일 후 비스마르크 체제, 1·2차 대전 후 베르사유 체제와 냉전 체제, 그리고 탈냉전 질서까지 강대국의 외교정책을 미국의 관점에서 분석한다.
미국은 ‘윌슨주의’를 기반으로 2차 대전 이후 패권국에 올라섰지만 도덕적 가치 이상으로 세력 균형을 추구하기도 했다. 그간 미국 지도자들은 대체로 윌슨주의자처럼 말하고 현실주의자처럼 행동한단 지적을 받았다. 키신저는 “20세기에 어떤 나라도 미국만큼 국제관계에 결정적으로 그리고 동시에 상반되는 태도를 보이면서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며 “어떤 사회도 다른 나라의 국내 문제에 개입하면 안 된다고 미국보다 더 단호하게 고집하지 않았고, 동시에 자신의 가치가 보편적으로 적용 가능하다고 열성적으로 주장하지도 않았다”고 설명한다. 옮긴이는 “미국에는 자신이 갖고 있는 가치가 보편적이어서 전 세계에 적용해야 한다는 입장과 이런 가치의 수호를 위해 개입하지 않고 스스로 모범이 돼야 한다는 입장이 있다”고 역주에 풀이했다.
국제관계사를 아우르며 저자는 ‘윌슨주의’와 국익을 우선하는 ‘현실정치’의 결합을 강조한다. “윌슨주의적 동기와 현실정치적 동기가 불일치할 때 미국 외교는 곤경에 처했고 양자가 일치할 때는 실패하는 일이 없었다”면서다. 민주주의 등 보편적 가치에 기반을 둔 국제주의와 세력 균형이 조화를 이룰 때 안정적 국제 질서가 유지될 수 있단 견해다.
미국 외교에 대한 그의 제언은 오늘날도 유효하다. 그는 “미국이 자신의 힘이 미칠 수 있는 범위를 착각함으로써 미국의 위대함을 위태롭게 해선 안 된다”며 ‘한계’를 인식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미국의 세계적인 리더십은 미국이 지닌 힘과 가치에서 비롯되지만 그것은 미국이 자신의 의지를 무제한으로 강요할 수 있는 것인 양 행동하는 특권을 포함하지는 않는다”는 말과 함께다.
박현주 기자 park.hyunj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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