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잇슈] 서울 한복판 40년 만에 문 열린 '비밀 지하공간' 가봤더니...
빛 한 점 들지 않는 칠흑같이 어두운 이곳, 이곳이 서울 시내 한복판이라면 믿기실까요?
땅속 13m 아래에 있는 거대한 지하 공간인데, 제 위로는 서울 광장이 위치해 있습니다.
전쟁에 대비해 만들어 둔 지하 대피소일까요, 아니면 미지의 동굴일까요?
도대체 땅속 비밀스러운 이곳. 정체가 뭘까요?
<송주선(30세·대학원생)/경기도 안양시> (지하에 40년 동안 숨겨진 공간이 있다고 하는데 그 존재 아시는지?) "아니요. 전혀 몰랐습니다. 뭔가 되게 비밀스러울 공간일 거란 느낌이 들긴 하는데..."
<유제석/수일중학교 1학년> "그냥, 동굴..?"
하루 이용객 8만여 명, 이곳은 직장인들이 바쁘게 오가는 2호선 을지로입구역 지하 2층입니다.
장난감 도서관으로 쓰이던 역사 내 한 공간인데, 지금은 텅 비어있는 상태인데요.
이 공간 끝에 다다라 출입 금지라고 적힌 노란색 문을 열고 들어가 보면, 안쪽에 비밀스러운 문 하나가 더 있는데요.
한번 열고 들어가 보겠습니다.
어느 안내도에도 나오지 않는 이곳은 서울 한복판 두 지하철역을 잇는 사이 공간입니다.
1, 2호선 시청역과 2호선 을지로입구역 사이에 있는 3천여 제곱미터에 달하는 공간인데, 63빌딩 높이가 약 250m 정도 되니까 63빌딩을 눕혀놨을 때보다 더 긴 공간인 셈입니다.
지금 가다 보니까 마치 동굴에나 있을법한 종유석을 발견했거든요.
크기가 꽤 커요. 천장에도 석순이라고 하나요? 매달려 있습니다.
위쪽으로 배수로가 지나기 때문에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것 같은데 여전히 물 흐르는 소리가 들리는데요.
혹시 지금 소리 들리시나요?
앱으로 일대 데시벨(DB)을 측정해 보니까, 75DB까지 올라갔거든요.
소음과 진동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건데, 이 층 아래에 지하 3층에 지하철 2호선이 위치해있기 때문에 4분에서 6분 정도 간격으로 소음과 진동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습니다.
총길이 335미터의 곡선 통로를 약 10분 만에 걸어왔는데요.
계단으로 올라가서 철제문을 열고 나가면, 우리가 익히 아는 지하철 1,2 호선 시청역 환승 통로가 나옵니다.
<이창훈/서울교통공사 사업개발팀> "이 공간은 (1983년) 2호선 건설 당시 만들어져서, 1984년도 서울시 지하철건설본부에서 저희 서울교통공사로 (시설물) 이관돼서 관리하고 있던 공간입니다. 왜 만들어졌는지에 대한 자료는 현재 확인이 불가능한 상태이고요."
<이재원/도시건축정류소 대표> "(서울 최초로) 새서울지하상가가 (1968년) 생기고, (1974년) 지하철 1호선 대합실이 생기고, (1983년) 지하철 2호선이 생겼을 때 그것들을 연결하려고 하다 보니까, 높이가 다른 걸 계단으로 연결했고 이 공간들이 생긴 걸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단지 부산물이 아니라, 서울이 만들어지는 과정 안에 있었던 곳이고..."
<주정미, 전태준(30대)/서울시 신당동> "휴가 내고 왔어요. (얼마나 기다리셔야 해요?) "3시간, 4시간 정도... 카페가거나 근처 구경하다가 오려고요. 온라인 예매 실패해서 온 거거든요. 많은 사람들이 못 보는 공간이니까"
<이순희(80세)/서울시 용두동> "서울 토박이죠. 몰랐죠. 깜짝 놀랐죠. 잠 안 잤어요, 이거 신경 쓰느라고. 이런 공간이 있다는 게 믿어지지 않잖아요."
<이순희(80세)/서울시 용두동> "동굴 들어온 거 같지. 와~ 뭐라고 말이 안 나오네? (신기해서요?) 응 신기하지."
<한승민(21세·대학생)/경기도 수원시> "발 밑으로 수많은 사람이, 발 위로 수많은 사람이 지나가고 있지만 이런 빈 공간이 도심 속에 존재한다는 게 정말 놀라웠고요. 처음 느끼는 감정이었고 굉장히 웅장했습니다. 이 분위기를 유지했으면 좋겠어요. 공사장스러운 분위기를...."
<임종현/서울시 공공건축2팀장> "예전에도 한 번 어떤 거로 쓰면 좋을지 고민했던 기록들이 있더라고요. 서울시가 이 공간을 몰랐던 건 아니고 어떻게 활용할 건지를 고민 계속해왔다..."
서울에 이런 '숨은 공간' 이뿐만이 아닙니다.
5호선 영등포시장역의 경우, 지하 4층 빈 승강장에 콘크리트 그대로 드러난 독특한 분위기를 살려, 한 게임 회사에서 체험존을 만들기도 했고요.
2005년, 여의도 한복판에서 정체불명 지하 벙커가 발견됩니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 대피용 방공호였던 것으로 추정될 뿐인데, 역시 누가 왜 만들었는지 모릅니다.
이후에 문화 시설로 변신했습니다.
<이경훈/국민대 건축학부 교수> "(사람들이) 걸어야 어떤 교류가 생기잖아요. 공간이 지시하는 바가 있거든요. 행태를 강제하는 게 있는데, 선형이니까 계속 흘러가게 만드는 것 같아요. 명소같이, 볼거리가 있는 걸 만들어서 주변이 사람이 많이 모이게 하는 전략으로 가는 것이 맞지 않을까. 라스베이거스에 가면 프리몬트 스트리트(Fremont Street Experience)가 있어요. 천장에 하늘을 비추기도 하고 움직이는 이미지를 만들어요. 그런 것 괜찮을 것 같아요. 지나가는데, 어떤 특별한 경험을 최첨단의 방식으로 제공할 수 있다면..."
서울시는 본연 모습 그대로 남겨진 지하 공간을, 단순 개방 목적이 아니라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머물고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 계획인데요.
시민 아이디어를 직접 받아 전문가들과 함께 이 비밀 공간의 활용 용도를 정할 계획입니다.
-기획: 김가희 -취재: 이채연 -영상 취재: 이병권 -편집·CG: 정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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