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 위 퓨마, 쇼핑몰 점령한 수달…사람 숨죽이자 자연 드러났다 [Books]
벤 윌슨 지음, 박선령 옮김, 매경출판 펴냄
동물들의 깜짝 등장은 이뿐만이 아니다. 태국 롭부리 지역에선 원숭이들이 도로까지 나와 먹이를 두고 ‘패싸움’을 벌였다. 태국 도로는 원숭이 탓에 극심한 교통체증에 시달렸다. 싱가포르 쇼핑몰엔 수달이 돌아다녔다. 귀여운 수달 가족이 양식 중인 물고기를 먹어 치워 사회 문제가 되기도 했다.
동물들이 갑자기 사람들의 무대로 나온 건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바로 코로나19 때문이었다. 사람들이 자택에 격리되어 나오지 못하니 교통량과 소음이 줄어들었고 이 때문에 도심 속에 근근이 숨어 살던 동물들이 인도와 차도로 천천히 존재를 드러낸 것이다.
인간은 대개 자신과 자연이 분리되어 살아간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책은 이를 뒤집는다. ‘역사적으로 자연의 힘이 대항하지 못할 인간 문명이란 없었다.’
히로시마 상공에서 원자폭탄이 떨어졌을 때 사람들은 향후 최소 75년간은 폐허의 땅에서 식물이 발견될 일은 없으리라고 예측했다. 하지만 몇 해 지나지 않아 식물학자들은 죽음의 땅을 덮어버린 ‘녹색 담요’를 바라봤다. 나팔꽃, 쇠비름, 우엉, 삼백초, 참깨, 결명자, 협죽도, 녹나무로 구성된 자연발 초록의 담요였다. 식물은 이처럼 인간의 땅에 ‘공백’을 허락하지 않는다. 식물은 인간의 빈틈을 활용해 꽃과 싹을 틔워 자기를 지켜나가는 망각한 세력이다.
이탈리아 고대 경기장 콜로세움도 로마의 패망 뒤 수백 년간 다양한 생물의 안식처로 기능했다. 관광 명소로 복원되기 전까지 인간의 가장 융성했던 시대의 증거인 콜로세움은 자연으로 뒤덮인 상태였다. 19세기 연구에 따르면 콜로세움은 420종의 식물의 거주지였다. 캄보디아 앙코르와트 유적도 잎과 줄기를 걷어내기 전까지는 정글의 외피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사람이 다시 그 장소를 발견했을 때 수백 수천 년을 거주하던 생물의 안식처는 빠르게 사라져 갔다.
훗날 뉴욕이라고 불리게 될 땅에 네덜란드인이 도착한 건 1609년이었다. 새로운 정착지 곳곳은 습지대였다. 인간은 도시의 주인을 자처하며 300년간 습지를 제거하려 노력했다. 그러나 21세기 들어 상황이 바뀌었는데, 습지가 인간에게 그저 쓸모없는 도시의 얼룩이 아니란 걸 인간이 인지했기 때문이었다. 습지는 평소 공원이 되기도 하지만 폭풍과 해일에 대비하는 완충지 역할도 해낸다.
조용한 저항 끝에 자연이 생태계를 이루는 사이, 공업화와 도시화는 최고 가속도로 진행됐다. 그러나 자연은 조용히 주장한다. 자연은 인간에 절대로 굴복하지 않는다는 것을. 초고층 빌딩이 지어져도 새들은 사라지지 않는다. 뉴욕의 송골매는 고층 건물 사이의 바람 통로를 이용해 비둘기 떼를 바다 쪽으로 밀어내고, 허공에서 최고 속도로 질주해 비둘기의 뒷덜미를 낚아챈다.
도시에는 이미 생태학적 보물 창고가 있다. 그러나 조각조각 흩어진 섬 같은 형태로 존재한다. 저자는 공공 줄다리, 터널 난간 통로, 교외 정원 울타리 구멍 등의 값싼 ‘생태계 보존 장치’에 머무르지 말고 광범위한 지역을 연결하는 재설계가 향후 지속될 도시화 과제의 핵심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인간의 운명은 도시로 들어오는 동물들과 연결돼 있다. 도시 환경을 동물에게 더 우호적으로 만드는 일은 동물들을 위한 선택이 아니라 인간의 행복을 위한 당위적이고 이기적인 선택이다.
공생을 향한 책의 여정은 버려진 부지와 텅 빈 옥상, 굵은 철사로 엮인 울타리 뒤쪽, 불모지의 콘크리트 틈새, 철로 옆의 가느다란 땅, 거대한 두엄과 쓰레기 더미 등 ‘외면당한 땅’을 향한다. 그곳에는 동물들이 빼꼼히 고개를 들고 살아가고 있다. 도시에서 자연을 몰아내는 대신 뒤엉킨 자연과의 공존 방안을 더 첨예하게 고민해야 한다고 저자 벤 윌슨은 촉구한다.
Copyright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 장거리 여행 간다면 ‘가장 안 좋은 좌석’ 고르라는 여행 작가…왜 - 매일경제
- 1000만원대 차 몰고 달동네간 회장님…‘애마’라며 3번이나 샀다는데 - 매일경제
- 1200만원 할인, ‘쏘나타값’ 수입차 됐다…3000만원대 진입한 전기차 [왜몰랐을카] - 매일경제
- “아들, 돈 모을 땐 그래도 이게 최고야”…알짜예금 쏟아진다는데 - 매일경제
- [단독] “지하철·버스 무제한 될까?”…한달 5~7만원 수준될 듯 - 매일경제
- 젠슨 황 CEO, 엔비디아 주식 팔았다...122배 수익 - 매일경제
- 삼성이 돈 맡기는 블로거…부자되려면 ‘이것’부터 하라는데 [Books] - 매일경제
- 화장실 급하다더니…택시비 안내고 줄행랑 친 여성들, 기사 ‘황당’ - 매일경제
- 중국 스파이 진짜 있나?…최신 하이닉스 칩, 대체 어떻게 빼갔나 - 매일경제
- 우리아스, 메시 경기 보러갔다 손찌검했다 - MK스포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