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만난세상] 책임지지 않는 사회

이정한 2023. 9. 8. 2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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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이태원 압사 참사'가 발생하고 얼마 뒤 당시 현장 응급의료 책임자인 용산구 보건소장에게 연락한 적이 있다.

응급의료소장을 맡아 환자 분류·이송을 지휘해야 하는 보건소장이 현장에 너무 늦게 도착했다는 게 경찰과 소방, 중앙응급의료센터의 공통된 말이었다.

책임자는 없고, 직원만 죄송하다는 말을 반복했다.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선 '내 탓'을 피하지 않고 책임 규명이 확실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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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이태원 압사 참사’가 발생하고 얼마 뒤 당시 현장 응급의료 책임자인 용산구 보건소장에게 연락한 적이 있다. 응급의료소장을 맡아 환자 분류·이송을 지휘해야 하는 보건소장이 현장에 너무 늦게 도착했다는 게 경찰과 소방, 중앙응급의료센터의 공통된 말이었다. 자초지종을 물으려고 했지만 끝내 연락이 닿지 않았다.

참사 초기엔 보건소장도 언론에 나와 몇 번 해명을 했다. 그는 여론이 좋지 않자 트라우마로 몸이 좋지 않다며 모습을 감췄다. 대신 소속 직원이 언론 대응을 도맡았다. 그의 말을 요약하면 이렇다. ‘(기자들이) 의견을 묻기에 답했더니 기사가 부정적으로 나가서 인터뷰를 꺼린다.’ 보건소장과의 통화 요청에 그는 난감하다는 듯이 ‘어려울 것 같다’고 했다. 책임자는 없고, 직원만 죄송하다는 말을 반복했다.
이정한 사회부 기자
중요한 행사가 치러진 후에는 성과와 후과를 살피기 마련이다. 그게 꼭 ‘참사’가 아니더라도 말이다. 그래야 잘못한 건 되돌아보고 잘한 건 새겨둘 수 있다. 이어지는 행사를 성공적으로 마칠 토대가 거기서 나온다. 그런데 시시비비를 따지는 게 쉽지 않다. 파행으로 얼룩진 ‘새만금 잼버리 사태’가 대표적이다. ‘잘 되면 내 덕, 안 되면 네 탓’이 다시 한 번 통용되는 탓이기도 하나 책임 있는 사람들이 최소한의 책임도 다하지 않아서다.

잼버리 대회 공동조직위원장이자 주관 부처의 수장인 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은 “대한민국의 위기 대응 역량을 전 세계에 보여줬다”는 문제적 발언 이후 공식 석상에서 한동안 사라졌다. 여가부 출입 기자단은 장관에게 여러 차례 간담회를 요구했으나 모두 묵살됐다.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현안질의와 감사원 감사를 이유로 내세웠는데, 정작 현안질의가 예정된 지난달 25일 여가위에 나타나지도 않았다.

잼버리 사태에 책임져야 할 고위 간부들이 면피에만 골몰하니 부처 내부 분위기는 엉망이다. 내부에선 의사결정을 하는 간부들이 잼버리를 우선순위에 두지 않고 다른 사업에서 성과를 내는 데만 집중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사태 이후 국회 질의와 감사원 감사 준비는 직원들 몫이다. 윗선의 잘못된 판단으로 인한 책임은 직원들이 뒷수습하는 꼴이다. 한순간의 소나기만 피하면 되리란 안이한 생각을 하는 건지 의문이다. 사태의 책임을 전북도와 조직위에 돌리는 걸 보면 파행 책임을 지는 데 대한 억울함도 엿보인다.

책임은 권한에 비례한다. 스포츠 경기에서도 패배의 책임은 감독이 진다. 선수가 못해 경기에 졌는데 왜 감독 탓을 하느냐고 되물을 수 있다. 선수단을 짜고, 그 선수를 다음에 기용할지를 결정하는 권한이 감독한테 있어서다. 큰 권한에는 책임이 따른다. 선수는 연습과 경기마다 평가받고, 감독은 결과에 책임을 진다. 감독이 선수 탓만 하면 감독의 권한은 인정받기 어렵다.

잼버리 공동위원장인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지난 7일 “부산 엑스포를 유치하면 잼버리를 반면교사로 잘 치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선 ‘내 탓’을 피하지 않고 책임 규명이 확실해야 한다. 잼버리 사태 책임 규명 과정만은 반면교사가 되지 않길 바란다.

이정한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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