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란의얇은소설] 이웃의 도움으로
뜻밖의 도움을 받아본 적이 있다면
얀 네루다, ‘그걸 어떻게 하지?’(‘프라하’에 수록, 이정인 옮김, 행복한책읽기)
화자는 산책길에서 “보통 때라면 거기서 볼 수 없는 사람들과 물건들을 발견하고 그것을 눈여겨”보곤 했다. 이를테면 어느 집 앞에 놓인 낡은 주전자나 우유통, 대로 한복판에 있는 빵 굽는 쟁반 등. 저 물건들을 누가 왜 저 자리에 놓고 갔을까? 화자는 궁금하고 생각이 많아진다. 프라하에 콜레라가 퍼지면서 시 당국은 집을 깨끗하게 유지해 공기가 오염되지 않도록 예방하라는 포고문을 곳곳에 붙인다. 하녀 안차가 집을 늘 깨끗하게 관리하고 있지만 화자는 문득 매트리스 속을 채운 지푸라기를 갈아 넣은 지 무척 오래됐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새 지푸라기를 사 온 안차가 매트리스 속을 갈아 넣다가 화자에게 묻는다. “헌 지푸라기는 어떡하죠?”
화자는 안차에게 쓰레기 구덩이가 있는 큰 집을 찾아가 돈을 주고 지푸라기를 묻어달라고 시킨다. 안차는 나갔다 와선 구덩이는 이미 꽉 차 있고 그걸 치우는 농부는 겨울까지 바쁘다고 전한다. 이제 두 번째 시도. 쓰레기 치우는 사람에게 부탁하기로 한다. 쓰레기 치우는 사람은 “그건 엄하게 금지되어” 있다고 거절한다. 세 번째 방법, 네 번째 방법도 실패했다. 별것 아닌 것 같은 지푸라기가 큰 고민거리가 돼 버렸다. 화자와 안차는 방법을 궁리하다 종이로 작은 고깔을 만든다. 거기다 지푸라기를 담고 주머니에 쑤셔 넣고는 산책하는 척하면서 지푸라기를 뿌리려고. 몇 번 해보니 그렇게 하다간 지푸라기를 없애는 데 반년도 더 걸릴 듯했다. 창피하기도 하고 부도덕한 사람이 되었다는 자책도 일었다. 다른 방법은 없을까?
이 단편소설에서는 하녀 안차의 역할이 빛난다. 어느 날 안차가 뛰어들어와 화자에게 말한다. 헌 지푸라기들을 처리할 방법을 찾았다고. 안차와 화자는 매트리스를 끌고 이웃의 우유 아주머니네로 끌고 갔다. 우유 아주머니 집에는 무엇이 있을까? 아무려나 이웃의 도움으로 화자는 이제 두 발 뻗고 새로 속을 채워 넣은 매트리스에서 푹 잘 수 있게 되었다. 시기적절한 이야기에 대해 고민했던 얀 네루다의 실제 이야기. 얀 네루다를 존경해서 그의 이름을 빌려 자신의 필명으로 사용한 작가는 칠레의 유명한 저항 시인 파블로 네루다이다.
며칠 전에 공기청정기 필터를 갈고 나니 크기도 꽤 되는 원통형의 헌 필터가 남았다. 이걸 어떻게 버려야 하지? 고민하다 산책하러 나갔다. 언제부터인가 가로수 밑이나 골목 담벼락 아래에 버려진 의자들, 여행용 트렁크, 전기밥통 같은 물건들을 보게 되었다. 울면서 혼자 걸어가는 사람들도 자주 본다. 보통 때라면 거기서 볼 수 없는 물건들과 사람들. 그런 것들이 머릿속을 계속 따라다닌다. 시기적절한 이야기에 대해서도. 어떤 방식으로 이웃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지 자주 생각하려고 한다. 곤란하고 난처한 일들을 해결하거나 넘길 수 있었던 건 뜻밖에 옆 사람들 덕분이기도 할 테니까.
조경란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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