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문화]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내일은 없다
서서히 공교육의 가치 무너져
선생님들마저 단순 직장인 취급
땡볕 아래 거리로 나올 수밖에…
오래전, 초등학교가 국민학교이던 시절에는 그조차 의무교육이 아니었다. 당연히 등록금을 내야 했고, 육성회비라는 것도 있었다. 학교에 가면 칠판 왼쪽이나 오른쪽 귀퉁이에 미납자 명단이 적혀 있었다. 미납자들은 수업하는 내내 가난의 증표처럼 칠판에 새겨진 자기 이름을 맞닥뜨려야 했다. 교무부장이나 교장은 수시로 각 반의 수금(?) 상황을 점검했고, 윗사람에게 욕을 먹고도 등록금 빨리 내라고 독촉만 하는 선생은 천사와도 같았다. 어떤 선생은 미납자를 일일이 호명해 수업시간 내내 교실 뒤에 세워두기도 했다. 심지어 돈 가져오라며 집으로 쫓아낸 선생도 있었다. 집으로 간 아이 중 누구도 등록금을 가지고 돌아오지 않았다. 아니 못 했겠지. 누가 집에 돈을 쌓아놓고 자기 자식 자존심 상하게 했겠나.
그 시절, 못된 교사들만 있었던 건 아니다. 참 스승도 있었다. 박봉을 털어 제자의 등록금을 대신 내주는 선생도 있었고, 엇나가는 아이를 기어코 붙잡아 세운 선생도 있었으며, 나 같은 빨갱이의 자식에게 방 한 칸을 공짜로 내주겠다는 선생도 있었다. 내 고3 담임은 대학에 가지 못하는 한 친구의 등록금을 대신 내줬을 뿐만 아니라 공부 잘하는 애들보다 네가 훨씬 대단하다는 격려도 잊지 않았다. 그런 선생들이 있어 부모들은 선생을 하늘같이 여겼다. 선생의 말이라면 팥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믿었다. 가난해서 과외도 학원도 보낼 수 없었던 대부분의 부모에게 선생이란 못 배운 자신을 대신해 아이들을 사람 되게 만들어주는 위대한 존재였다. 그런데 요즘 부모들은 너무 잘났다. 돈도 많아서 과외며 학원이며 맘대로 보낸다. 그러다 보니 교사를 일타강사보다 실력 없는, 돈도 못 버는, 그저 그런 직장인으로밖에 취급하지 않는다.
무엇이 공교육의 붕괴를 불러왔는지 우리 모두 알고는 있다. 모든 문제의 중심에는 돈이 있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는 돈만 많으면 불의도 불법도 개의치 않는다. 이래서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고 하는 것이다. 친일을 해서 부자가 된 친일파들이 해방 뒤에도 청산되지 않았고, 군부독재에 빌붙어 제 잇속을 챙긴 사람들 또한 제대로 처벌받지 않았다. 의를 버린 대가로 그 후손들까지 잘 먹고 잘사는 게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이런 나라에서 누가 의를 지키며 살겠는가? 돈이 지상 최고의 가치일 뿐이다. 정의를 지키고 불우한 친구나 이웃을 저버리지 못해 가난한 사람을 예전에는 좋은 사람을 넘어 ‘된사람’이라고 했다. 요즘은 바보라고 한다. 나만 부자로 호의호식하면 장땡이다. 태어날 때부터 부자가 아닌 이상 부자가 되려면 좋은 대학, 잘나가는 학과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 언젠가부터 학교가 진학의 수단, 결과적으로 돈 잘 버는 직업을 갖게 하는 수단으로 전락한 이유다. 가장 보수적일 수밖에 없는 교사들이 거리로 뛰쳐나온 오늘의 현실이 참으로 쓰라리다.
정지아 소설가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한국처럼 결혼·출산 NO”…트럼프 당선 이후 미국서 주목받는 ‘4B 운동’
- “그만하십시오, 딸과 3살 차이밖에 안납니다”…공군서 또 성폭력 의혹
- “효림아, 집 줄테니까 힘들면 이혼해”…김수미 며느리 사랑 ‘먹먹’
- “내 성별은 이제 여자” 女 탈의실도 맘대로 이용… 괜찮을까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단독] “초등생들도 이용하는 女탈의실, 성인男들 버젓이”… 난리난 용산초 수영장
- ‘女스태프 성폭행’ 강지환, 항소심 판결 뒤집혔다…“前소속사에 35억 지급하라”
- “송지은이 간병인이냐”…박위 동생 “형수가 ○○해줬다” 축사에 갑론을박
- “홍기야, 제발 가만 있어”…성매매 의혹 최민환 옹호에 팬들 ‘원성’
- 사랑 나눈 후 바로 이불 빨래…여친 결벽증 때문에 고민이라는 남성의 사연
- "오피스 남편이 어때서"…男동료와 술·영화 즐긴 아내 '당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