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에서 이런 일이…” 참혹한 해상 디스토피아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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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는 숨이 멎도록 아름답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암담한 비인도적 행위가 난무하는 디스토피아적 공간이기도 하다. 바다에서 법은 유동적이며 사실 존재감조차 미미하다."
인신매매업자와 밀수업자, 해적과 용병, 쇠고랑을 찬 노예와 파도에 내던져진 밀항자, 임신 중지가 불법인 나라의 여성들을 공해로 데려가는 의사, 배를 훔치는 도둑과 폐유 투기범, 미꾸라지 같은 밀렵꾼과 그들을 쫓는 환경 보호 활동가, 바다가 가장 폭압적인 일터라는 걸 알면서도 그곳에 몸을 팔 수밖에 없는 노동자들의 삶과 활동이 기록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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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법의 바다/이언 어비나/박희원 옮김/아고라/3만2000원
“바다는 숨이 멎도록 아름답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암담한 비인도적 행위가 난무하는 디스토피아적 공간이기도 하다. … 바다에서 법은 유동적이며 사실 존재감조차 미미하다.”
저자는 인류학과 역사학 박사 과정을 밟던 중 해양 조사선의 인류학자로 일할 기회를 갖게 되고 그때 만난 뱃사람들을 통해 바다 위 세계에 사로잡혔다. 이후 뉴욕타임스 기자가 된 그는 2015년 7월부터 ‘무법의 바다’ 시리즈를 통해 바다에 벌어지는 기상천외하고 참혹한 이야기를 펼쳐낸다.
책에는 뉴욕타임스 커버스토리로 수록됐던 글들과 이 책만을 위해 새로 쓴 글들이 담겨 있다. 저자는 15편의 각기 다른 이야기들을 여행기처럼 풀어냈다. 인신매매업자와 밀수업자, 해적과 용병, 쇠고랑을 찬 노예와 파도에 내던져진 밀항자, 임신 중지가 불법인 나라의 여성들을 공해로 데려가는 의사, 배를 훔치는 도둑과 폐유 투기범, 미꾸라지 같은 밀렵꾼과 그들을 쫓는 환경 보호 활동가, 바다가 가장 폭압적인 일터라는 걸 알면서도 그곳에 몸을 팔 수밖에 없는 노동자들의 삶과 활동이 기록돼 있다.
이들은 선인과 악인으로 선명하게 나뉘지 않는다. 저자 또한 단선적인 메시지를 전달하지 않는다. 예컨대 4장 ‘상습 범죄 선단’에서는 2010년 8월에 침몰한 사조오양 소속 오양 70호의 침몰과 선원들의 죽음으로 이어지는 비극을 이야기한다. 그러면서도 무능하지만 배의 키를 놓지 못하고 배와 함께 침몰한 선장, 강간당하고 갈취당하고 익사했으면서도 고발의 목소리를 내길 거부한 선원들, 그리고 값싼 노동으로 생산된 참치 통조림을 먹는 우리 중 누가 가해자이고 누가 피해자인지 묻는다. 단지 기업의 잘못을 폭로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부조리한 상황이 계속될 수밖에 없는 다층적인 이유와 그런 현실을 둘러싼 다양한 인물들의 곡절을 보여준다.
이처럼 저자는 우리가 보지 못했고 보려 하지도 않았던 해상 디스토피아의 모습을 입체적으로 그려냈다. “결국 이 작업의 목표는 좀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를 증언하는 것이다.… 내가 전 세계의 배에서 목격해 이 책에 담아내려 애쓴 것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서글프리만치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는 바다와 그 위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빈번하게 맞닥뜨리는 혼란과 고통이었다.”
이복진 기자 bo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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