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美 위상… “권력 지휘 제대로 못 한 탓”

김용출 2023. 9. 8. 2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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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 붕괴 이후 아버지 부시∼트럼프까지
대통령 5명 맞닥뜨린 15개 지역 도전 분석
이란·북한·아프간 등 결과는 실망스러워
50년간 8명 대통령 밑에서 국가안보 봉직
저자 게이츠 “대통령의 권력 행사에 문제”
“中 가장 복잡하고 버거운 상대될 것” 진단
“美 위상 회복 비군사적 힘 재구축에 달려”

미국 대통령의 권력 행사/로버트 게이츠/박동철 옮김/한울아카데미/4만9800원

1991년 12월25일 성탄절, 망치와 낫이 그려진 소련 국기가 크렘린궁에서 내려지고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지구적 냉전 체제가 와해된 그날, 미국은 현대사에서 유례가 없는 세계 권력의 정점에 홀로 우뚝 섰다. 1년여 뒤 빌 클린턴이 제42대 미국 대통령으로 오른손을 들어 취임 선서를 했을 때, 미국은 군사와 경제, 정치 등 권력의 모든 차원에서 단독으로 세계를 지배했다.

하지만 30년이 지난 현재, 미국은 여전히 지구상 군사 및 경제적으로 가장 강력한 국가이지만, 모든 면에서 도전받고 있다. 세계는 1940년대 말 냉전체제가 형성된 이래 가장 복잡하고 예측할 수 없는 국면으로 진입하고 있다.
미국 민주당과 공화당 양당 모두로부터 인정을 받으며 50년 동안 여덟 명의 대통령 밑에서 국가안보 분야에서 봉직해온 로버트 게이츠가 미 대통령의 권력 행사를 분석한 책이 나왔다. 사진은 조지 H W 부시(아버지 부시), 빌 클린턴, 조지 W 부시(아들 부시), 버락 오바마,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세계일보 자료사진
중국과 러시아는 계속해 군사력을 강화하고 있고, 새로운 지역과 국가에 진출해 영향력을 키우고 있다. 특히 중국은 군사력뿐만 아니라 압도적인 인구와 거대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거의 모든 분야에서 미국에 도전하는 다면적 강대국으로 부상했다. 여기에 동아시아에선 북한이 점차 정교해지는 핵 위협을 가하고 있고, 중동에선 이란이 여전히 미국과 그 동맹들의 확고한 적대국으로 자리하고 있다.

아들 부시 및 버락 오바마 정부에서 국방장관을 역임하는 등 미국 민주당과 공화당 양당 모두로부터 인정을 받으며 50년 동안 여덟 명의 대통령 밑에서 국가안보 분야에서 봉직해온 저자는, 1990년대 절정에 달했던 미국의 국제적 위상이 예전만 못하고 중국의 추격을 허용한 것은 냉전 종식 뒤 미 대통령들이 권력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하고, 미래에는 어떻게 해야 할지를 전망했다.

저자는 이를 위해 소련이 붕괴하던 당시의 조지 H W 부시(아버지 부시)부터 시작해 빌 클린턴, 조지 W 부시(아들 부시), 버락 오바마, 도널드 트럼프까지 5명을 대상으로 이란을 시작으로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시리아, 리비아, 이란, 북한, 우크라이나, 러시아, 중국 등 15개 국가 또는 지역의 도전을 분석한다.

분석 결과, 지난 30년간 미국 대통령들은 15개 국가 또는 지역에서 제기된 도전을 놓고 임기 내내 골머리를 썩였지만, 대부분 성공과 거리가 멀었다. 미국이 개입해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는 사례는 콜롬비아와 아프리카 두 곳뿐이었다. 나머지 소말리아, 아이티, 유고에선 실패했고, 아프가니스탄에선 끝없는 전쟁에 신음해왔으며, 이라크전쟁은 저주가 됐다. 이란과 우크라이나, 시리아, 북한 문제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고, 러시아와 중국은 그 미래를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다.

왜 미국과 미 대통령들은 주요 도전에서 성공하지 못했을까. 우선, 미국 내 극심한 정치사회적 양극화로 인해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현저히 약화됐고, 국민 사이에선 개입주의와 국제주의에 대한 인내심을 상실했으며, 다자간 국제기구나 협정 등의 기능과 역할도 약화했다.

무엇보다 미국 대통령들이 자신들의 손에 놓인 권력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한 게 결정적이었다고, 저자는 지적했다. 당장 미국의 임무를 둘러싸고 클린턴과 조지 W 부시는 ‘민주주의를 위해서 세계를 안전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개입주의자 우드로 윌슨의 편에 섰지만, 도널드 트럼프는 ‘미국의 일에만 신경 쓰자’는 고립주의자 존 퀸시 애덤스 쪽에 가까웠고, 오바마는 양면적인 정책을 펼치면서 어정쩡했다.

특히 소련과의 오랜 경합에서 비군사적 자산의 중요성을 간과해 역량을 키우고 사용하지 못했다고 저자는 꼬집었다. 즉 지난 30년간 미 대통령들은 비군사적 힘의 유용성을 종종 망각하고 군사적인 힘에 너무 지나치게 의존했다가 비군사적인 힘을 제대로 쓰지 못했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중국은 군사력은 물론 경제력, 사이버 역량, 전략적 소통, 과학기술, 이데올로기 등 비군사적 자산도 상당히 축적돼 있다며 향후 미국이 직면할 도전 가운데 가장 복잡하고 버거우며 가장 위험한 상대가 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그러면서도 장래에 미국과 중국 간 군사 충돌이 불가피하다는 예측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베이징과 워싱턴의 지도자들이 현명하다면 두 나라 간 경쟁은 주로 비군사적 부문에서 벌어질 것이라고 관측했다.
로버트 게이츠/박동철 옮김/한울아카데미/4만9800원
“미국의 일부 인사들은 해법으로서 중국의 체제변동을 희망한다. 그것이 공산당 독재가 붕괴되고 비공산당 체제로 대체된다는 의미라면, 필자는 그들이 아주 오래 기다려야 한다고 본다. 게다가 14억 인구와 핵무기를 가진 중국의 불안정은 우리의 이익이 아니다. 가능성이 가장 큰 미래는 주로 비군사적 국력수단을 통해 장기 경쟁을 벌이는 라이벌 관계다.”

향후 수십 년 동안 국제 사회에서 미국의 위상은 강한 군사력뿐만 아니라 비군사적 도구의 재구축에 달려 있을 것이라고 저자는 거듭 역설했다.

북한 문제는 어떻게 보고 있을까. 북한을 ‘교활한 여우’라고 평가한 저자는 북한은 늘 긴장을 고조시키다가 양보를 조건으로 협상을 시작하고 다시 약속을 어기고 핵 프로그램으로 복귀하는 과정을 되풀이해 왔다고 지적한다. 그러면서 네 명의 미 대통령이 군사적 시위, 경제제재, 식량 원조 등 다양한 방법을 사용해 핵무기 프로그램을 종식시키려고 했지만 모두 실패했다며 가까운 장래에 북한의 핵 프로그램을 제거하지 못할 것이기에 핵무기 보유를 적게 하는 방향으로 협정을 추구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외교와 제재의 거듭된 실패를 되돌아볼 때 아마 우리는 일련의 권력수단 행사가 포괄적 비핵화라는 우리의 전략 목표를 달성하는 데 실패했으며 가까운 장래에도 실패할 사례를 북한이 제공하고 있음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아마도 우리는 그 목표를 바꾸고 우리의 눈높이를 낮추어 북한의 핵무기 보유를 아주 작은 수로 제한하는 협정을 추구해야 할 것이다.”

김용출 선임기자 kimgij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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