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세대 암 치료제 ‘면역항암제’, 16개 암으로 치료 영역 넓혀
암은 1940년대에 치료제가 첫 개발됐지만 아직도 정복되지 않은 질병이다. 일부 초기 암은 완치에 가까운 치료가 가능하지만, 종양의 전이 정도나 재발 여부 등에 따라 여전히 국내에서는 가장 큰 사망 원인이다(2021년 사망 원인 통계).
지금까지 암 치료제는 크게 3세대로 나뉘어진다. 초기 1세대 항암제(항암화학요법)는 암세포와 일반 세포를 구분없이 공격해 환자의 치료 중단이나 치료 포기로 이어지는 전신적 이상 반응을 수반했다.
이후 암세포의 특정 유전자 돌연변이를 공격하는 2세대 ‘표적항암제’가 개발됐지만 내성(耐性) 발현과 치료 대상의 제한 등이 있다.
2010년대 들어 인체 면역시스템을 활성화해 암을 치료하는 3세대 ‘면역항암제’가 개발돼 새로운 치료 옵션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 이상 반응, 내성, 치료군 확대 등 기존 항암 치료의 미충족 수요를 해결하고 다수 암종에서 효과를 보이며 암 정복의 새 희망을 갖게 하고 있다.
◇면역항암제, 국내에서도 120여 임상 진행 중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 90세의 나이에 면역항암제 ‘키트루다(성분명 펨브롤리주맙)’를 투여받고 뇌로 전이된 악성 흑색종에서 완치됐다는 소식은 암 환자 뿐 아니라 일반인 사이에게도 폭발적인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비록 얼마 전 암세포가 간과 뇌로 다시 전이돼 연명 치료를 중단한다고 밝혔지만 첫 진단 후 8년 넘게 생존하며 일상을 누릴 수 있었던 데는 면역항암제의 공로가 크다.
면역항암제는 인체의 면역세포를 활성화해 암세포를 공격하도록 유도하는 메커니즘의 치료제다. 치료에 반응을 보이는 환자에서 지속적인 효과가 나타나 장기 생존 가능성을 높이면서도 부작용은 크지 않아 환자가 치료를 받으면서 일상생활이 가능해졌다.
메커니즘 특성 상 특정한 암종이나 암세포를 직접 공격하지 않기에 투여 가능한 환자 대상이 넓고, 하나의 암종이 아닌 대다수의 고형 암을 상대로 사용 가능해 항암 치료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다는 평가다.
실제로 대표적인 면역항암제인 ‘펨브롤리주맙(제품명: 키트루다)’은 2015년 흑색종 국내 허가를 시작으로 8년 만에 폐암·식도암·유방암을 포함한 16개 암종 24개 적응증을 승인받으며 치료 대상을 넓히면서 활발히 쓰이고 있다.
지난 3월에는 미국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특정 바이오마커를 가진 모든 종류의 고형 암을 대상으로 사용 가능한 적응증을 승인받았다. 또한 다양한 암종을 대상으로 치료 효과를 확인하기 위해 전 세계적으로 30개 이상의 암종을 대상으로 2,200여 건에 달하는 연구를 진행 중이다. 우리나라에서도 현재까지 500여 곳의 의료기관과 4,100여 환자가 참여한 120여 건의 임상시험이 진행 중이다.
이를 통해 면역항암제는 다수 암종에서 효과를 지속적으로 입증하고 있다. 특히 괄목할만한 치료 성적을 보이고 있는 암종으로는 폐암·식도암·삼중 음성 유방암 등이다.
전 세계 암 전문의들이 참고하는 글로벌 치료 가이드라인(미국 NCCN 가이드라인)에서도 면역항암제 치료의 임상적 유용성을 인정해 해당 암종을 포함한 7개 암종의 표준 치료법으로 펨브롤리주맙을 선호 요법으로 우선 권고하고 있다.
비소세포폐암의 경우 40% 이상의 환자가 진행성 또는 전이성으로 진단돼 수술이 어려울 때가 많고, 고령인 환자 비율도 높아 기저 질환을 동반하거나 장기 기능이 저하된 사례가 많아 질병 부담이 매우 큰 암종이었다.
다행히 면역항암제 병용 요법이 전이성 폐암의 표준 치료로 자리잡으며 기존 치료 대비 환자의 5년 생존율과 치료 반응률을 2배가량 연장하고, 삶의 질까지 개선할 수 있게 됐다. 또, 특정 투약 조건(PD-L1 TPS≥50%)과 무관하게 폐암을 유발하는 유전자 변이가 없는 모든 전이성 폐암(전체의 70%~80% 이상) 환자를 대상으로 사용 가능해 국내 사망률 1위 암종인 폐암의 생존율을 높이는데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식도암은 재발이 잦고 위치상 주변 장기로 전이가 빨라 예후(치료 경과)가 나쁜 암으로 꼽힌다. 연하(삼킴) 곤란 등 증상이 나타났을 때는 이미 암이 진행된 경우가 많다. 또한 대부분 다른 장기로 전이된 상태에서 발견되나 원격 전이 단계에서 식도암의 5년 생존율은 7.3%로 매우 낮다. 수십 년간 항암화학요법이 유일한 치료법이었으나 현재는 면역항암제 병용요법 허가로 장기 생존 가능성이 열리게 되었다.
임상 연구 결과, 면역항암제 병용 요법은 PD-L1 발현 양성(CPS≥10)인 전이성 식도암 환자에서 기존의 표준 치료 대비 2배 높은 객관적 반응률(51.5%)을 보였고, 더 긴 생존기간 연장 효과를 확인했으며, 환자의 질환 진행 또는 사망 위험률을 49% 감소시킨 것으로 확인됐다.
삼중 음성(-) 유방암은 3가지 수용체 발현이 모두 음성인 유방암으로 재발·전이가 잦은 공격적인 성향임에도 표적 치료 또는 호르몬 치료의 도움을 받기 어려운 소외된 암종이었다. 또한 다른 유형 유방암 대비 50세 미만의 젊은 환자가 많아 사회경제적으로 미치는 영향이 크다.
그런데 키트루다를 ‘수술 전후 보조 요법’으로 1년 정도 치료하면 고위험 조기 삼중 음성 유방암 환자의 재발 위험을 40%가량 낮출 수 있고, 키트루다로 1년 치료한 환자 10명 중 8명은 3년 시점까지 재발을 경험하지 않았다.
이에 따라 미국 NCCN 가이드라인에서는 고위험 조기 삼중 음성 유방암 환자에게 키트루다 수술 전후 보조 요법을 우선 요법(Preferred Regimen)으로 권고하고 있다.
◇13개 암 적응증에 건강보험 확대 적용 가능성
면역항암제로 인해 암종과 병기(病期) 등 치료 효과를 나타낼 수 있는 영역이 확장되고 있는 점도 긍정적이다. 일례로 서구에 비해 아시아권 발병률이 높은 위암에서도 면역항암제 병용 요법이 새로 사용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면역항암제 펨브롤리주맙 병용 요법은 HER2 음성 및 HER2 양성 위암 1차 치료에서 3상 임상 연구를 통해 무진행 생존 기간의 유의미한 개선을 입증했다.
또한 기존 면역항암제 치료가 말기에 이르러 수술이 불가능한 전이성 암 환자를 대상으로 이루어졌다면 최근에는 수술이 가능한 앞선 병기에서도 생존율을 높이는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지난 6월 ‘2023 미국임상종양학회(ASCO) 연례 학술대회’에서는 절제 가능한 2기, 3A기 또는 3B기 폐암 환자의 수술 전후 보조 요법으로 면역항암제를 사용했을 때 수술 전 항암화학요법보다 무사건 생존 위험이 42% 감소했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된 바 있다.
게다가 면역항암제가 건강보험 급여를 통한 접근성 개선에도 청신호가 켜졌다. 현재 국내 허가된 면역항암제 가운데 적응증이 가장 많은 펨브롤리주맙은 지난해 3월 폐암, 흑색종 등 4개 암종 7개 적응증으로 건강보험 적용이 확대됐다. 지난 6월에는 최신 치료법이 없어 미충족 수요가 높은 13개 암 적응증에 대한 건강보험 기준 확대 신청도 이루어져 더 많은 환자가 치료 혜택을 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권대익 의학전문기자 dkw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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