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적으로, 자유롭게, 진실하게…지식은 ‘소통’되었다[이은수의 아이겐밸류 - 인간의 고유함을 되묻다]

기자 2023. 9. 8. 2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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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소통과 경쟁 그리고 진리
인공지능 핵심기술의 수학적 근간을 이루는 선형대수학에서 아이겐밸류는 행렬변환 후에도 변화가 없이 그 자신으로 남는 고유벡터의 고윳값을 가리키는 이름이다. 인공지능의 파고가 모든 이들에게 다양하게 다가오겠지만 인공지능이라는 엄청난 변화를 겪고도 여전히 그 자리에 남을 인간의 고유한 것이 무엇이겠는가?
지식 확산의 주요한 통로 ‘공유’
고대 그리스, 공통의 언어·문화로
서로 소통하며 지식 연결망 형성
궁극의 진리를 찾고 추구하는
모든 과정에서 ‘말하기’는 필수적
그 치열한 소통이 지식을 꽃피웠다

예고한 대로 이제 연재는 인간의 고유한 지적 능력으로서의 아이겐밸류를 찾기 위한 마지막 동사 ‘소통하다’로 넘어가 생각의 혁신을 이룰 소통의 방법에 대해 살펴보려고 한다. 통신 수단의 발달로 지식이 본격적으로 확산되기 이전에 지식을 소통할 수 있는 중요한 통로 중 하나는 특정지역을 중심으로 지식의 탐구를 공유하는 일이었다. 그래서 고대 그리스에서는 여러 철학 학파들이 생겨났고 이에 따라 자연스럽게 몇몇 지적 중심지가 형성됐다. 예를 들어 고전기 그리스에서는 아테네가 지식을 발신하는 역할을 감당했고 이후에는 알렉산드리아가 그 역할을 이어받았다.

그러나 고대 그리스에서 이런 지식의 연결망이 저절로 생겨난 것은 아니었다. 이 연결망의 형성을 위해 전제돼야 할 조건이 여럿 있었는데, 공통의 문화적 코드 속에서 서로 소통이 가능해야 했고, 적당한 경쟁이 최고의 지적 성취를 향한 열망을 부추겨야 했으며, 그에 따라 발견한 진리를 숨기지 않고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대상과 환경이 갖춰져 있어야 했다.

먼저 호메로스와 헤시오도스의 서사시들, 사포와 핀다로스의 서정시들, 그리고 여러 그리스 비극들을 생각해보자. 그리스의 신화적 세계와, 그 속에 등장하는 영웅들과, 비극적 인물들의 삶과 운명이 얽힌 다양한 이야기들은 고대 그리스 지중해 세계에서 공통의 언어와 문화적 경험을 끊임없이 제공했다. 오랜 시간 동안 세대를 거쳐 이 작품들을 통해 그리스어를 익히고 덕, 용기, 지혜 등 삶에 필요한 가치들을 배운 그리스인들은 그리스인으로서의 정체성을 형성해주는 일종의 문화 코드를 공유해나갔다. 지금도 우리에게 유산으로 남겨진 문학과 철학을 중심으로, 고대 그리스인들이 문화적 코드를 공유한 범위가 그들이 소통하던 지중해 세계 지적 연결망의 경계를 이뤘다.

이 공통의 문화 코드를 매개로 고대 그리스의 시민들은 최고의 경지를 향한 경쟁을 즐겼다. 그래서 그들은 문학, 철학, 음악, 드라마, 건축, 조각, 운동 등 많은 영역에서 경기와 경연을 벌였다. 예를 들어 기원전 6세기 후반 그리스 참주였던 페이시스트라토스에 의해 시작돼 매해 봄철마다 열렸던 디오니소스 대축제의 중심에는 비극 경연대회가 있었다. 아이스킬로스와 소포클레스, 에우리피데스와 같은 고대 그리스의 3대 비극작가들을 포함해 많은 작가들이 최고의 연극을 무대에 올리기 위해 분투했다. 어떤 의미에서 인류 최초의 문예비평이라고 할 수 있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창작술)>은 최고의 드라마를 향한 이 경쟁을 이론적으로 뒷받침하는 작품이기도 했다. 최고의 비극은 그리스 시민들이 공유하고 있었던 전통적 문화 코드 안에서 자신들의 폴리스가 겪고 있던 전쟁이나 역병과 같은 현재적 경험을 건강하게 재해석할 수 있게 해줌으로써 공동체 시민 공공의 이익에 부합하는 것이어야 했다. ‘아곤(αγων)’이라는 말이 그리스 전반에 퍼져있던 이 경쟁을 표현하는 단어였다. 이 아곤의 목적은 비극에서는 가장 극적인 감정에 몰입할 수 있도록 고양시켰다가 그 비극적 감정을 배출(카타르시스)시키는 것이었고, 운동의 영역에서는 고대 그리스의 올림픽 경기가 보여주듯 신체의 극한의 한계를 극복해보는 것이었다.

αληθεια알레테이아
숨김없이 드러내는 ‘진리’
자크 루이 다비드의 ‘소크라테스의 죽음’(1787) 플라톤의 대화편 <소크라테스의 변론>이 전하듯, 소크라테스는 자신이 믿는 올바른 삶에 관한 진리를 말하고 죽음을 맞았다. 위키피디아

마찬가지로 지식의 발견과 소통에 있어서도 좋은 의미의 지적 경쟁이 있었는데, 이 경쟁의 궁극적 목적은 진리를 찾는 것이었다. 고대 그리스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우리말로 ‘진리’라고 번역되는 그리스어 ‘알레테이아(αληθεια)’의 기원을 동사 ‘란타네인(λανθανειν)’에서 찾는다. 이 동사의 옛 형태는 그리스 신화에서 망자가 저승으로 넘어가기 전 과거의 기억을 잊기 위해 한 모금씩 마신다는 레테의 강물과도 관련된 ‘레테인(ληθειν)’이라는 동사이다. 이 동사의 어근 앞에 알파를 붙여 만든 단어가 알레테이아이다. 고대 그리스어에서는 단어 제일 앞에 놓인 알파가 뒤에 오는 단어의 뜻을 부정하는 기능이 있기도 하다. 그래서 알레테이아를 원뜻 그대로 풀어보면, ‘눈에 띄지 않게 하다, 보이지 않게 하다, 잊다’라는 원 동사의 뜻을 부정해 ‘어떤 것을 은폐하거나 잊어버리지 못하게 하는 것’이 진리에 담긴 의미라고 말할 수 있다. 진리(眞理)의 한자 뜻풀이 그대로 ‘참된 이치’라고 말뜻을 풀어냈을 때와 비교해보면 알레테이아라는 말에는 숨기지 않고 드러낸다는 의미가 더 강하게 담겨있는 셈이다.

그래서 알레테이아는 말과 소통의 영역과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알레테이아가 ‘어떤 사실이 은폐되거나 잊혀지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면, 사라진 것에 개입해 다시 나타날 수 있도록 목소리를 내는 것이 알레테이아의 역할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진리 탐구는 말하고 소통하는 행위와 분리될 수 없다. 같은 맥락에서 진리 추구는 사람들 사이의 대화, 특히 한 사람이 질문하고 다른 사람이 대답하는 과정에서 훈련된다. 이 질문에는 증인의 지식에 기반한 답변이 필요하다. 그래서 호메로스의 서사시 <오디세이아>에서도 모든 것들을 숨기지 않고 말하는 증인들의 행위가 기록돼 있다. 예를 들면, 네스토르는 아가멤논의 죽음과 당시 메넬라오스의 행방에 대해 모든 것을 사실대로 증언하는 증인으로 등장하며 (“모든 것을 사실대로 말하겠소” 오디세이아 3권 253~254쪽), 에우마이오스는 이방인 오디세우스가 어디에서 어떻게 떠돌다가 고향 이타카로 돌아왔는지에 대해 텔레마코스에게 대답하는 증인이다(“나는 그대에게 모든 것을 사실대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오디세이아 16권 60~61쪽). 따라서 알레테이아는 사람들의 구체적인 삶의 경험에 기반을 두며 궁극적으로 대화와 소통 속에서 자란다.

ισηγορια이세고리아
말함에 있어 누구나 ‘동등함’
παρρησια파레시아
어떤 위협에도 ‘솔직히 말함’

그런데 사도 요한이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자세히 보고 우리의 손으로 만진 바라”(요한1서 1장1절)라고 증언한 바 있듯이, 이 알레테이아를 아무 제약 없이 말하기 위해서는 보고 듣고 만진 바를 그대로 전할 발언의 자유가 전제돼야 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이 발언의 자유를 의미하는 개념을 발전시켜 ‘이세고리아(ισηγορια)’와 ‘파레시아(παρρησια)’라는 두 용어를 만들어냈다. 비록 이 두 단어가 처음 만들어진 정확한 연대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기원전 5세기 말부터 기원전 4세기까지 두 단어가 사용된 사례들이 많이 남아 있다. 단어의 뜻을 풀어보면 이세고리아는 ‘말함에 있어서 동등함’이란 뜻으로 회합에 참여한 모든 시민에게 평등하게 말할 권리가 주어져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고, 파레시아는 ‘모든 것을 말함’이란 뜻으로 어떤 위협이나 권력의 위계관계 속에서도 있는 그대로 숨기지 않고 말할 수 있는 용기를 의미했다.

때로 고대 그리스의 민주주의를 뜻하는 단어 데모크라티아를 대신하여 이세고리아라는 말이 쓰이기도 했을 정도로 동등한 발언의 권리를 갖는다는 것은 민주정을 유지하는 핵심 조건 중 하나였다. 이 때문에 이 민주정 체제 아래 있던 시민들은 자연스럽게 이세고리아를 연습하고 발휘할 환경에 녹아들었다. 파레시아는 프랑스 철학자 푸코가 <담론과 진실>이라는 강연록에서 집중적으로 연구했을 정도로 그의 생애 말엽에 가장 매력적인 주제 중 하나였는데, 푸코는 파레시아를 목숨의 위협을 받을 만한 상황에서도 숨기지 않고 모든 진실을 있는 대로 고할 수 있는 용기로 풀어냈다. 자신의 호화로운 궁전과 막대한 부를 보여주며 자랑을 늘어놓은 뒤에 가장 행복한 사람이 누구인가 물었던 리디아의 크로이소스 왕에게 아테네의 현자 솔론은 끝까지 왕이 원했던 대답을 들려주지 않았다. 솔론이 말하는 가장 행복한 사람의 진실 속에서는 행복하게 생을 마감했던 다소 평범한 사람들이 생의 비극적 결말을 맞는 크로이소스 왕보다 더 행복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비록 그의 대답이 크로이소스 왕의 분노를 불러일으킬 줄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진실은 이 권력의 위협 속에 결코 가려질 수 없는 것이었다. 그리스인들은 이런 이야기들을 통해 진실을 모두 말하는 용기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었을 것이다.

사람들 사이의 대화 속에서 감추지 않고 모든 것을 말하는 이 이세고리아와 파레시아의 훈련은 자연과 사람의 대화 속에서도 그대로 반복된다. 모든 자유로운 시민들은 자연철학자들의 모범을 따라 자연을 탐구할 기회를 가졌고 또 자신이 발견한 사실을 자유롭게 나눌 수 있었다. 발견한 것이 자연세계의 더욱 놀라운 진리와 관계된 것일수록 지적 경쟁 속에서 더 높은 명성을 얻을 수 있었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로 사람이 자연에 대해 어떤 놀라운 진리를 발견할 수 있었는지에 관해서는 이미 2화에서 이야기한 바 있다. 그 글에서 잠깐 소개한 바 있듯이 ‘자연 속에 늘 그렇게 존재하고 성립했던’, 그러나 ‘그 이전에 어느 누구도 찾아내지 못했던’, 그래서 일종의 자연에 숨겨진 신의 흔적으로 남아 있던 진리를 자신이 처음으로 ‘발견’했던 아르키메데스는 <구와 원기둥에 관하여> 편지 형식의 서문을 이렇게 맺는다.

“수학과 친한 사람들과의 나눔은 아름다운 것이라고 판단하여 우리는 그대에게 증명들을 작성해서 보내네. 그것들을 수학에 종사하는 자들이 검토하는 것이 가능할 것이네. 잘 지내게.”

고대 지중해 세계에서 저자가 어떤 서문을 남기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었다. 그 희소성 때문에 많은 관심을 끌었던 이 서문이 당시 지중해 세계에서의 지식의 소통을 아름다운 것으로 이야기하며 편지를 맺고 있다는 점은 더욱 인상적이다. 아르키메데스가 자신이 발견한 수학적 진리를 탐구하는 일에 초대한 대상은 비단 지중해 세계에서 이 책을 읽었던 당대의 수학과 친했던 사람들뿐 아니라 오늘날 이 책을 펼쳐 서문을 읽고 있는 우리 시대의 독자들도 포함할 것이다.

그렇게 자연 속에 감춰진 진리를 발견하고 그것을 적극적으로 알리기를 원했던 아르키메데스의 열정은 자신보다 연배가 높았으나 수학적 진리를 공부함에 있어서 좋은 친구였던 코논의 죽음을 맞이하면서 좌절을 맞는다. 그는 <나선에 관하여>라는 책의 서문에서 또 편지글을 남겨 놓았는데, 거기서도 수학에 종사하고 자연이 숨겨 놓은 놀라운 진리를 연구하고자 하는 자들에게 진리를 발견하고 증명할 기회를 주고 싶었다는 이야기를 남겼다. 그러나 그의 이 초대는 별다른 호응을 얻지 못했고, 자신 말고는 여러 해가 지나도록 당시의 지중해 세계를 지적으로 자극할 만한 정리를 내놓는 사람이 거의 없어진 지적 소강 상태를 맞았다. 그가 친구 코논의 죽음을 크게 애석해한 이유이다. 그의 죽음으로 인해 ‘기하학의 대단한 진보’가 한걸음 더 늦어졌기 때문이다. 다음 글에서 살펴보겠지만, 공통의 문화적 코드 속에서 뜨거운 경쟁을 거쳐 자유롭게 진리를 추구했던 이 지식의 연결망은 이제 분산된 문화적 경험 속에서 치열한 경쟁 없이 진리를 더듬어 찾는 외로운 점들로 흩어지게 된다.

이은수 교수



서울대 철학과 교수. 서울대학교와 스탠퍼드대학교에서 수학, 서양고전, 과학사를 공부하였다.

카이스트에서 수행했던 인문학과 기술의 상호 발전에 대한 연구 및 강의를 바탕으로 서울대에서 디지털인문학이란 이름으로 인문학의 미래에 대한 연구를 이어가고 있다.

서양 고대로부터 과학혁명 시기에 이르기까지 수학 및 과학적 지식의 생성과 발전 및 혁신 과정을 주로 연구하고 있다.

이은수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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