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제 사각’ 전세사기 피해자들 “깡통특별법 보완을”
피해 유형 다양한데 기준은 높아
대다수가 지원서 제외되는 현실
“여전히 살다 쫓겨날 상황” 울분
시행 100일 앞두고 ‘개정’ 목소리
박모씨는 서울 강서구 화곡동의 오피스텔로 이사한 지 20일 만에 수도권 일대 200여채의 명의자였던 ‘바지사장’ 임대인이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박씨는 전세사기 피해자가 피해주택을 매수할 때 대출을 도와준다던 ‘특례보금자리론’을 이용해 사기당한 집을 매수하려 했다. 그는 지난 5월 말 국회를 통과한 전세사기 특별법상 피해자로도 인정받았다. 그러나 ‘오피스텔에 산다’는 이유로 대출 지원을 받을 수 없었다. 법령상 ‘주택 거주자’만 해당 지원책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대구에서 신탁사기를 당한 피해자 정태운씨는 임대인과 전세계약을 체결한 뒤 전입신고를 마치고 확정일자까지 받았지만 대항력이나 우선변제권은 갖추지 못했다. 임대인이 해당 주택의 소유권을 관리하던 신탁회사의 동의서를 받지 않고 정씨와 임대차 계약을 체결했기 때문이다. 정씨와 같은 신탁사기 피해자들은 전세사기 특별법상 피해자로 인정받더라도 경매나 공매가 중지되지 않아 ‘불법 임차인’ 신분이 되고, 대항력을 인정받지 못해 우선매수권도 행사할 수 없다.
전세사기 특별법이 시행된 지 100일을 하루 앞둔 8일.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원회(전국대책위)는 이날 오전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는 실효성 없는 깡통특별법 보완대책을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는 특별법상 지원대상에서 배제된 이들의 피해 상황 증언이 쏟아졌다.
국회는 지난 5월25일 피해자의 피해주택 우선매수권,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피해주택 매입 및 장기임대, 경·공매 유예, 최우선변제금 10년 무이자 대출 등 지원대책을 담은 특별법을 본회의에서 의결했다. 전세사기피해지원위원회는 이날까지 피해 인정 신청자 5317명을 심의해 이 중 4627명을 전세사기 피해자로 결정했다. 414명은 부결됐고, 276명은 적용 제외됐다.
전국대책위는 애초 특별법의 혜택을 보지 못하는 ‘사각지대’에 속하는 피해자 유형이 다양하고, 피해자로 인정되더라도 정부나 은행의 정책지원 요건을 갖추지 못하는 사람이 많아 피해자 대다수가 지원대책에서 제외되는 게 현실이라고 주장했다. 이철빈 전국대책위 위원장은 “피해자로 인정받기 위한 요건은 여전히 문턱이 너무 높고, 임대인의 기망 의도를 입증하는 것은 피해자 개인이 하기에 너무 어렵다”면서 “피해자 인정 기준을 완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안상미 인천 미추홀구 전세사기대책위원장은 “특별법으로 경매 중지가 시행됐으나 여전히 경매가 진행 중인 세대가 있고 신탁사의 공매도 진행 중”이라며 “아무런 통보도 되지 않아 불법점유 상태로 살다가 어느 날 나가라고 하면 쫓겨나야 하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이강훈 시민사회대책위 공동대표(변호사)는 “정부와 국회가 특별법 시행 후 6개월 되는 시점에 제도의 허점을 점검해 법을 개정하겠다는 약속을 한 만큼 피해자들이 제기하는 문제점과 사각지대를 면밀히 검토해 추가 입법을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송이 기자 songyi@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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