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학기 열흘간 5명 극단 선택…‘집단 트라우마’ 빠진 교사들
40대 초등교사 악성 민원에 고통
유가족들, ‘신체조직’ 기증 결정
2학기 들어 열흘 남짓한 기간 동안 전국에서 교사 5명이 숨졌다. 교사들의 정신건강 이상징후가 극단적으로 표출되는 일이 이어지면서 교육당국이 정신건강 고위험군 교사들을 위한 대책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8일 교육계에 따르면 지난달 말부터 이날까지 교사 사망 사건은 알려진 것만 5건에 이른다. 대전의 한 초등학교에서 근무하던 40대 초등교사 A씨가 극단적 선택을 한 뒤 치료를 받다 지난 7일 사망했다. 교사노동조합과 유족 측은 숨진 교사가 악성 민원 등으로 정신적으로 힘들어했다고 밝혔다.
대전 유성경찰서에 따르면 A씨는 지난 5일 자택에서 다친 상태로 발견돼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다가 숨졌다. 유가족은 A씨 사망선고를 받은 뒤 신체조직(피부) 기증을 결정했다. 기증된 신체조직은 화상 환자 등 100여명에게 전달될 예정이다.
20년째 교사로 일해온 A씨는 4년 전 한 학부모의 악성 민원에 시달린 이후 줄곧 힘들어했다고 대전교사노조는 밝혔다. 교사노조에 따르면 A씨는 2019년 유성구의 한 초등학교에서 담임을 맡았다. 교사노조 관계자는 “A씨가 담임을 맡은 학급의 학생 중에 교사 지시를 무시하거나 다른 학생을 괴롭히는 등의 행동을 하는 학생이 몇명 있었다”면서 “이런 학생들을 훈육하고 지도했는데 한 학부모 측이 ‘왜 아이를 망신 주느냐’면서 학교와 교육청 등에 민원을 제기한 것으로 파악됐다”고 설명했다.
교사노조는 이어 “2019년 11월 친구의 뺨을 때린 해당 학생을 교장실로 보냈는데 (교육청에 민원을 제기했던) 학부모가 찾아와 교사에게 사과를 요구했으며 이틀 뒤 A씨가 병가를 신청한 것으로도 조사됐다”고 덧붙였다. 이 학부모는 같은 해 12월 A씨를 아동학대 혐의로 경찰에 고소까지 했다.
전문가 “고위험 교사 찾아내 업무 중단…의학적 지원 해야”
정신과 치료를 받던 A씨는 학교 측에 교권보호위원회를 개최할 것을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아동학대는 2020년 무혐의 처분됐다. 이후에도 해당 학부모와 학생 등은 “교사와 마주치기 싫다”며 4년여 동안 지속해서 민원을 제기해왔다고 교사노조는 밝혔다. A씨는 이 과정에서 극도의 정신적 고통에 시달렸다. 올해 근무지를 다른 초등학교로 옮겼으나 여전히 심리적 고통을 호소해왔다고 교사노조는 전했다.
김영진 대전교사노조 수석부위원장은 “A씨가 악성 민원과 아동학대 고소 등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면서 최근까지 정신과 치료를 받았다는 이야기를 유족에게 들었다”고 말했다. 이어 “A씨가 최근 발생한 서울 서초구 초등학교 사건을 접한 뒤 고통의 기억이 되살아나면서 힘들어한 것으로 파악됐다”고 덧붙였다.
충북의 한 초등학교에서 근무했던 30대 교사도 지난 7일 세상을 떠났다. 앞서 지난달 31일에는 서울과 전북의 초등교사가, 지난 3일에는 경기의 한 고등학교 교사가 사망했다.
서울 서초구 초등교사 사망 사건 후 방학을 보내고 업무 현장으로 돌아온 교사들이 ‘집단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는 셈이다. 교사들의 정신건강이 위험수위를 넘었다는 지적도 끊이지 않는다. 지난달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과 녹색병원 실태조사에서는 교사 38.3%가 심한 우울증상을 겪고 있고, 16%가 죽음을 생각해본 적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초구 초등교사 사망 후 교육부는 교권 회복 및 보호 강화 종합대책 등 교원 보호 방안을 내놨고 국회도 관련 입법을 논의 중이다. 하지만 심각한 수준으로 악화한 교사들의 정신건강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대책은 나오지 않았다. 최연숙 국민의힘 의원에 따르면 지난해 1학기 기준 17개 시·도 교원치유지원센터 상담사는 26명에 불과하다. 상담사 1명이 교사 1만9531명을 담당하는 셈이다.
전문가들은 일반 노동자에게 적용되는 직무스트레스 보호조치 등을 교사들에게 적용하는 것이 시작이라고 본다. 윤간우 녹색병원 직업환경의학과장은 “사업주인 교육감이 산안법상 의무인 교사 보호조치를 해야 한다”며 “일단 의학적 조치가 필요한 고위험군 교사를 찾아내 현장 업무에서 배제하고 당분간 상담 업무를 정지하는 등 심리적·치료적 지원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전교조는 이날 “각 시·도교육청에 특별기구를 설치해 지금까지 교육활동 과정에서 발생한 분쟁과 갈등으로 교사가 고통받은 사례에 대한 전수조사를 하고 구체적인 치유 대책을 시급히 마련해달라”고 요구했다. 교육부와 보건복지부는 ‘교원 마음건강 회복을 위한 공동전담팀’을 구성해 올해 2학기부터 희망하는 모든 교원이 마음건강을 진단받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고 밝혔다.
윤희일 선임기자·남지원 기자 yhi@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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