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따위 고통’ 따위는 없어도 된다[책과 삶]
고통에 관하여
정보라 지음 | 다산책방
340쪽 | 1만8000원
몸 곳곳에 흉터가 있는 여성이 침대에 수갑으로 속박된 남성과 성관계하는 장면으로 <고통에 관하여>는 시작한다. 남자는 내키지 않는 듯하지만 여자가 하는 대로 둔다. 성폭행인지 아닌지 모호하다. 형사들과 그들이 이송하는 남자가 탑승한 비행기, 살인사건을 다루는 법정에 대한 스케치가 짤막하게 이어진다.
<저주토끼>로 부커상 최종 후보에 올랐던 정보라가 4년 만에 장편을 내놨다. ‘회사’가 중독성이 없는 진통제를 개발한 세상을 배경으로 한다. 강력하고 안정적인 진통제가 등장한 덕분에 통증은 쉽게 조절되거나 퇴치될 수 있다. 이에 “고통은 곧 영혼이자 인간의 정수이고, 고통의 근절은 영혼의 멸절이자 신에 대한 거부이며 구원에 대한 모독”이라고 믿는 ‘교단’이 나타난다. 교단의 입장에서 회사는 세상을 타락시키는 존재였다. 급기야 회사에 테러를 가해 사람을 죽인 교단 신도가 나타난다. 서두에서 수갑에 묶인 남자가 테러범, 흉터 있는 여자가 테러로 목숨을 잃은 회사 경영진의 딸이다.
정보라는 2018년 미국 새너제이에서 열린 SF 행사에서 통증과 진통제에 대한 대담을 본 뒤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한다. 1990년대 걸프전 참전 군인, 2002년 이라크전 참전 군인이 귀국하자 미국 정부는 이들이 진통제를 처방받고 구매하기 쉽게 해줬다. 마약성 진통제 중독자가 늘어났고, 정부는 급하게 진통제 처방을 규제하기 시작했다. 이는 범죄를 유발하는 등 또 다른 문제가 됐다.
‘고통을 통한 깨달음’ 같은 철학적 주제를 언급하고 있지만, 결국 작가는 “의미 없는 고통은 거부해야 한다”고 직접 말한다. 가정폭력, 아동학대, 성소수자 문제 등을 언급하면서 “삶의 선택지가 늘어나야 한다”는 결론으로 나아간다.
백승찬 기자 myungworr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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