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작은 틈으로 다른 숨을 틔우다[그림책]
나는 흐른다
송미경 글·장선환 그림
창비 | 72쪽 | 1만8000원
수영을 배우면서 물속에서 느끼는 자유로움을 조금은 알게 됐다. 깊이를 가늠하기 어려운 물은 여전히 두렵지만, 때때로 물을 가르며 앞으로 나아갈 때 홀가분하다. 시작과 끝이 정해진 수영장 레인을 따라갈 뿐이지만 물의 흐름을 타면 어디로든 흘러갈 수 있을 것만 같다.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는 일부터 평소와 다른 방식으로 진행되는 세계, 그 안에서 나는 여전히 나이지만 내가 아니기도 하다.
그림책 <나는 흐른다>의 영아는 등굣길에서 보는 반짝이는 윤슬에 사로잡혀 강가를 서성이다 그만 강물 속에 풍덩 뛰어든다. 사실 물속으로 뛰어드는 것은 영아가 아니라 어딘가로 자유롭게 흘러가고 싶은 영아의 마음이다. 영아는 물속에서 행복해하는 자신에게 차마 밖으로 나오라고 말하지 못하고, 자신을 물속에 둔 채 학교로 향한다. 몸은 학교에 있지만 수업시간 내내 마음은 유유히 헤엄친다. 물 밖에서 평소처럼 숙제를 하고 개와 산책을 나서지만, 영아의 일상엔 작은 틈이 생겼다. 그 틈새로 영아는 다른 숨을 틔운다.
약해진 중력의 마법은 평소 발 디딘 일상에서 만나지 못했던 나를 마주하게 한다. 물결 속에서 ‘나’와 내가 몰랐던 또 다른 나는 마음껏 물장구치며 웃는다. 학교나 배구 시합, 집을 지운 채 홀가분한 ‘나’들은 생생하게 튀어 오른다. 마음만 먹으면 너른 강물로 뛰어들어 여러 명의 나와 헤엄칠 수 있다는 상상은 청쾌한 그림과 함께 펼쳐진다. 물을 담뿍 머금은 붓질로 완성된 장면들은 물결처럼 흐른다. 찰랑거리는 물소리도 들리는 듯하다.
“나는 다시 반짝이는 물결을 보며 강가에 서 있어요.” 환상 여행을 마친 영아 앞엔 유유히 강물이 흐른다. 슥슥 겹치고 번진 물감의 흔적을 따라 푸른 기운이 흐른다. 촉촉한 여름날의 기운이 산뜻하게 전해진다. 삐뚤빼뚤한 궤적 속에서 우리는 반짝이며 흐른다.
유수빈 기자 soop@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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