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야!ONE] "탈북 1호 변호사 이영현, 북한은 헌법위에 더 강한 법이?"

김우성 2023. 9. 8. 2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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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이음 프로젝트 이거야!원(ONE)]

■ 방송 : YTN 라디오 FM 94.5 (09:20, 23:20)

■ 방송일 : 2023년 9월 9일 (토요일)

■ 진행 : 김우성 앵커

■ 대담 : 이영현 변호사

[이거야!ONE] "탈북 1호 변호사 이영현, 북한은 헌법위에 더 강한 법이?"

- 함흥에서 죽을 고비 넘기고 뒤늦게 공부 시작, 4전5기

- 북한의 법은 당, 체제유지를 위해 작동 지도이념이 더 우선

- 개인간 범죄는 약하게 처벌, 국가-사상 범죄는 강하게 처벌

- 한국의 법은 일상, 삶에 닿아있는 법들... 북에도 적용했으면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 김우성 앵커(이하 김우성)> 이 목소리 아주 익숙하시죠. 그러면 잘 기억하지는 못하는 분들을 위해서 제가 흉내도 한번 내보겠습니다. 우영우 변호사 이야기, 물론 법률 드라마 많습니다만 굉장히 관심을 많이 가졌습니다. 사회의 다양한 모습들 또 따뜻한 시선들이 등장했던 드라마였는데요.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한 장면 중에서 북한 이탈주민, 북한에서 오신 주민의 여러 가지 법률적 상황을 다루는 부분 저희가 잠시 일부만 들려드렸습니다. 법은 사실 우리 사회가 살아가는 가장 핵심입니다. 모든 상식과 문화와 사람들의 생각들이 모여서 모두가 봐도 이해할 만한 공통된 것으로 만들어낸 일종의 아주 강한 핵심 합의인데요. 이 법을 우리 사회에서 지키고 또 생각하고 바꾸고 하는 일들을 하는 분들이 바로 법률가들인데요. 북한에서 오신 분 중에 대한민국에 그런 법률가가 있을까요? 있습니다. 이분이 1호입니다. 이영현 변호사 저희가 스튜디오에 모셨습니다. 변호사님, 어서 오십시오.

◆ 이영현 변호사(이하 이영현)> 네, 안녕하세요.

◇ 김우성> 변호사님이신데 사실은 앞에 수식어 괄호가 붙으면 뭔가 마음이 좀, '그것 떼고 나 그냥 이쪽 분야 전문 변호사예요.' 이렇게 불러주는 게 좋을 것 같은데요. 자신소개 좀 부탁드릴게요.

◆ 이영현> 저는 1997년도에 소위 고난의 행군 시기에 탈북을 했고요. 중국에서 한 5년간 떠돌이 생활을 하다가 2002년도에 대한민국에 입국을 했습니다. 그리고 고등학교, 대학교, 대학원 과정을 마치고 현재 서초동에서 변호사로 일을 하고 있습니다.

◇ 김우성> 이렇게 함축적으로 소개하니까 '음' 이렇게 들으실 텐데 그렇지 않습니다. 이분이 중국을 좀 떠돌았다라는 말은 사실 목숨 걸고 보낸 시간인데요. 생텍쥐페리 소설 <어린왕자> 속에서 밤에 사막의 별을 보면서 이동하는 주인공이 떠오를 정도였습니다. 이렇게 편안하게 설명을 하셨지만 사실 정말 여러 번 고비가 많으셨잖아요. 넘어오는 과정에서도 삼촌을 잃어버리시고요. 그 이야기들 보면 뭔가 마음이 좀 쿵쾅거리시는 분들도 많을 것 같아요. 지금 되돌아보면 어떠신가요? 그 정말 죽을 고비를 넘긴 시간들.

◆ 이영현> 다시는 그런 경험을 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굉장히 좀 이겨내기 힘든 시간들이었습니다. 사실 제가 탈북을 하던 나이는 14살이었고요. 그때 사실 제가 두만강을 건너다가 외삼촌을 두만강에서 잃고 혼자 중국에서 정착을 시작을 했는데요. 사실 앞이 캄캄하고 참 미래가 불확실한, 참 아무것도 안 보이는 그런 막막한 상황에서 정착을 시작을 했고요. 5년이라는 시간들을 어떻게 보냈는지는 참 지금 생각해도 참 스스로 대견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 김우성> 그러니까요. 이 얘기를 아시는 분들도 있을 겁니다. 이영현 변호사 검색해보면 많은 이야기 소개가 있는데 말씀드린 이유가 저라면 그냥 절망하고 힘들어하다가 어떻게든 생존해야지만 생각할 것 같은데 그때부터 공부라든지 여러 가지 계획을 세워서 정말 짧은 시간에 연세대학교 법대를 졸업하시고 경북대 로스쿨을 졸업하고 변호사 시험에 합격하셨습니다. 여기서 어머니, 아버지가 엄청 사교육을 시켜주는 아이들도 이뤄내기 힘든 성과인데 자꾸 이런 표현하면 좀 그렇습니다만 오시는 분들마다 너무 대단하셔서 놀라요. 힘드셨을 것 같아요.

◆ 이영현> 당연히 힘들었죠. 사실 짧은 시간은 아니었고요. 제가 한국에 도착했을 때 나이가 20살 나이였고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교를 갈 나이에 저는 사실 고등학교 입학을 했고요. 고등학교 과정을 마치고 그리고 대학교, 대학원 그리고 대학원 졸업하고 난 이후에도 한 5년간 변호사 시험 공부를 했습니다. 그래서 시험 합격하기가 굉장히 어려워서 하여튼 재수에 재수를 거듭하면서, 5년간 공부를 해서 제가 변호사의 꿈을 꾼 때로부터 16년간 변호사 시험 합격하는 데까지 기간이 걸렸습니다.

◇ 김우성> 그래도 16년이면 앞서 5년 중국 생활도 얘기하셨지만 저도 '이 길이 아닌가 보다' 이럴 수도 있는데 어쨌든 해놓으셨어요. 4전 5기, 합격 기쁨이 너무 커서 정말 두 손을 하늘로 번쩍 올리셨다. 이렇게 기사가 나와 있었는데.

◆ 이영현> 예, 맞습니다.

◇ 김우성> 정말 만능 전화가 있어서 누구에게든 걸 수 있다. 누구에게 전화를 걸어서 얘기하셨을 것 같아요?

◆ 이영현> 그때 가장 먼저 떠올랐던 그 사람이 제 어머니였죠. 하지만 어머니의 생사도 알 수 없고 연락도 할 수 없기 때문에 사실 합격한 날 기쁘기도 했지만 굉장히 슬프고 눈물을 많이 흘렸던 날이기도 했습니다.

◇ 김우성> 변호사 이영현 말고 청년 이영현의 얘기를 좀 했고요. 이제 본격적으로 넘어가 보겠습니다. 돈 벌 일도 많고, 보니까 여러 가지 좀 준수하신데. 다른 일도 많은데 왜 굳이 법이었을까요? 이영현이 법을 선택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 이영현> 제가 한국에 와서 고등학교 때 법조인이 되겠다는 꿈을 꾸기 시작을 했습니다. 초창기에는 사실 한국에서 치열한 경쟁 사회에서 내가 과연 어떤 직업을 가지고 살아야 하나라는 고민을 많이 하다가 저의 지난 과거들, 그리고 제가 과거에 겪었던 인권 침해 현장에 있는 북한 주민들. 그리고 해외 탈북민들을 생각을 하면서 조금이나마 북한 주민들을 위해서, 해외에서 떠돌고 있는 탈북민들을 위해서, 그리고 국내외에 들어와 있는 탈북민들을 위해서 작은 역할이라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요. 그래서 그게 뭘까라는 고민을 하다가 법조인이 어느 날 제 마음 가운데 들어왔고 그때부터 저는 법조인의 꿈을 꾸고 꼭 반드시 변호사가 돼서 탈북민들을 돕는 변호사가 되어야 되겠다라고 생각을 하고 쭉 법조인의 길을 걸어오게 되었습니다.

◇ 김우성> '인권'이라는 두 글자와 법, 정말 사실 가깝죠. 중요하기도 합니다. 우영우 변호사, 그 드라마 혹시 보셨습니까?

◆ 이영현> 참 유명한 드라마인데요. 저도 시간이 없어서 보지는 못했습니다.

◇ 김우성> 너무 열심히 공부하고 일만 하시는 이영현 변호사였습니다. 그런데 잠시 앞에 들은 거에도 나왔지만 실제로 북한에서 오신 주민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대한민국 국민이 되신 분들이 3만 명이 훌쩍 넘었는데, 이분들이 살아가면서 법률적인 문제가 없을 수가 없거든요. 주로 이영현 변호사께 많이 도움을 요청하나요? 꼭 그렇지는 않습니까?

◆ 이영현> 꼭 그렇지는 않고요. 가끔 이제 상담을 요청을 하시거나 또 사건을 의뢰를 하시는 경우도 있는데요. 저 말고도 탈북민 대상으로 법률 서비스를 제공하시는 변호사님들이 많기 때문에요.

◇ 김우성> 관심들이 많으시죠. 그래도 다행히요.

◆ 이영현> 꼭 저한테 오거나 그러지는 않습니다.

◇ 김우성> 그래도 이영현 변호사를 찾아오면 좋은 점, 광고는 아닙니다. 여러분.

◆ 이영현> 그래도 제가 어쨌든 같은 고향분들의 아픔을 잘 이해하고 한국에서 적응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도 잘 공감하고 이해하기 때문에 좀 더 성심성의껏 최선을 다해서 사건을 좀 도와드리고 있다라고 자부하고 있습니다.

◇ 김우성> 이심전심, 이런 말도 떠오르네요. 고난의 행군, 먹을 게 없어서 쌀 조금만 가져와 이러고 가족을 떠났다가 이제는 법조인이 돼서 쌀 수천 가마의 가치를 지원하려고 하시는 분입니다.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드는데 어릴 때 왔기 때문에 사실 잘 경험은 없으시겠지만 북한에도 변호사가 있고 사법 체계는 있다라고 알려져는 있거든요. 그런데 주로 여기 오시는 분들이 그 사회의 어떤 폐쇄성, 자유 없음에 대해서 많이 토로를 하시기 때문에 어떤지 궁금해요. 좀 많이 다른가요?

◆ 이영현> 사실 많이 다릅니다. 북한에도 사회주의 헌법부터 시작해서 일반 민법, 형법, 민사소송법, 가사법 등등의 법률이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재판소법에 해당하는 재판소구성법이라는 법도 있고요. 그리고 검찰감시법, 변호사법 등등 그런 법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우리나라처럼 판사, 검사, 변호사가 다 있습니다.

◇ 김우성> 체계가 비슷하네요.

◆ 이영현> 근데 우리나라는 사실 법치국가지만 북한은 법치국가는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라고 봐야 되고요.

◇ 김우성> 법치국가적 성격은 아니다. 법 체계는 그렇게 돼 있는데 그 작동의 핵심 원리에는 법치국가 이념이 안 적용된다는 건가요?

◆ 이영현> 예, 맞습니다. 사실 북한의 헌법 위에 국무위원회 위원장이 김정은 위원장이 있지 않습니까? 김정은의 명령 그리고 선대인 김정일과 김일성, 죽었지만 그분들의 유훈인 교시와 말씀이 있고요. 그리고 북한의 최고 규범이라고 할 수 있는 당의 유일사상 체계 확립 10대 원칙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런 것들이 기본적으로 최고 규범으로 작동되기 때문에 북한에서의 어떤 헌법 이런 것들은 우리나라와 다르게 규범력을 갖지 못한다라고 말씀드릴 수가 있고요. 북한 헌법에도 이런 규정이 있습니다. '조선민주주민공화국은 조선노동당 영도 밑에 모든 활동을 진행한다'는 규정이 있는데요. 그러니까 이것은 조선노동당의 결정에 따라서 국가가 운영이 된다는 거거든요. 그런데 북한에서 조선노동당은 최고 기관이 중요하지 않습니까? 최고 기관이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인데 지금 현재 살아있는 사람은 김정은뿐이기 때문에 결국에는 김정은 1인 통치로 국가가 작동되고 운영이 되기 때문에 대한민국의 법칙국가와는 거리가 상당히 멀다. 이렇게 볼 수가 있겠습니다.

◇ 김우성> 여기에는 없는, 북한에 있는 그런 법도 있나요?

◆ 이영현> 여러 법들이 있습니다. 대표적인 법으로 금수산태양궁전법이라고 있습니다.

◇ 김우성> 법 이름치고는 조금.

◆ 이영현> 사실 이게 2013년도 김정은이 들어서고 난 이후에 제정이 됐는데요. 북한에 최고 성지로 만들고 그리고 수령 영생의 대기념비 사업이다라는 어떤 명목 하에 지금 보존을 하고 있고요. 그리고 이 법에 보면 여기가 민족 존엄의 상징이다. 민족 번영의 만년 유산, 영원한 성지, 성지 불가침 등등의 내용으로 규율을 하고 있고요. 그 어느 나라에도 사실 존재하지 않는 것이죠.

◇ 김우성> 약간 저는 이제 정교 분리라고 해야 되나요? 정치와 종교가 분리되지 않은 국가 같은 느낌의 얘기가 되는 것 같습니다. 좀 궁금한 게 앞서 드라마를 많은 대중들이 보셨으니까 이해하기 쉬울 것 같아요. 북한에서의 이렇게 하면 되는 법, 그 차이 때문에 혼동을 겪거나 그런 일이 실제로 있을까 싶어요?

◆ 이영현> 상식적으로 봤을 때 그럴 가능성이 많다고 보여지고요. 말씀드렸지만 북한에 법은 존재하지만 법치국가가 아니고 법대로 모든 게 집행이 되지는 않습니다. 예를 들어 형법 같은 경우는 국가를 대상으로 한 어떤 범죄, 이런 것들은 엄하게 처벌하는데 개인을 상대로 한 범죄는 그렇게 엄하게 처벌하지는 않습니다.

◇ 김우성> 거기서도 차이가 있군요.

◆ 이영현> 그래서 예를 들어서 누구를 폭행을 했다거나 상해를 입혔다거나, 이런 것들은 북한에서는 그냥 그냥 서로 얘기하고 잘 끝낼 수 있는 그런 사건들이고요. 굳이 법원까지 가서 유죄 판단을 받는다거나 그러지는 않습니다. 국기를 불태웠거나 그런 것들을 엄격하게 처벌하고요.

◇ 김우성> 그런 게 오히려 더 엄격하다라는 말씀이시군요.

◆ 이영현> 맞습니다. 어쨌든 법은 존재하는지도 몰랐고요. 대다수 북한 주민들은 저랑 비슷할 겁니다. 그런데 한국에 와서는 법치국가고 모든 게 법대로 집행이 되지 않습니까? 그래서 법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일상 속에 가까이 있구나. 그런 것들을 실감하면서 살게 되는 것 같습니다.

◇ 김우성> 법이란 삶에 연결되어 있다. 이런 것 같고요. 예를 들면 그렇잖아요. 길거리 가다가 시비가 붙었는데 대한민국에서는 "법대로 해!" 이렇게 말하는데 북한에 가면 "당의 지시대로 해!" 이게 약간 다르죠. 그런 차이에 대한 얘기고, 법은 삶이고 일상에 닿아 있다라는 말. 당연한 얘기인데 그걸 또 이영현 변호사님한테 들으니까 좀 새롭게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남북이 분단돼 있는데요. 어떤 방식으로든 통일이 되거나 교류가 확대되거나 인적 교류가 생길 수도 있습니다. 굉장히 어려운 문제가 될 것 같아요. 이런 부분에 대해서도 사실 많이 연구하시는 분들도 있고 준비를 하고 있는데, 좀 상징적인 인물이시잖아요. 북한 사회를 경험하고 한국에 와서 또 법조인이 되셨으니까요.

◆ 이영현> 일단은 사실 남과 북의 법의 기능이나 역할들은 굉장히 다르지 않습니까? 사실 북한의 법을 우리가 그대로 수행하기는 어렵다라고 봐야 되고요. 그리고 대한민국 법이 북한에 적용이 되도록 그런 역할들을 해야 될 것 같습니다.

◇ 김우성> 변호사 이영현의 법으로 꾸는 꿈이 있으실 것 같아요?

◆ 이영현> 탈북민으로서 최초 법조인이 됐고요. 그래서 앞으로 이 법을 가지고 어떻게 북한의 주민들의 인권을 개선하고 권익을 옹호할 것인가. 그리고 해외에 나와 있는 탈북민들을 어떻게 법의 보호 테두리 안으로 끌어들여서 어떻게 법으로 보호할 것인가. 가장 중요하게는 탈북민들이 대한민국에 와서 법과 제도를 몰라서 굉장히 적응에 굉장히 어려움이 많습니다. 그래서 법률 교육이라든지 이런 것들을 지속적으로 좀 계속 해나가야 되지 않겠느냐라는 생각들을 좀 하고 있습니다.

◇ 김우성> 전쟁터에서도요. 법을 얘기합니다. "제네바 협정에 따라", "국제법에 따라" 이렇게 얘기하는데 법은 정말 사람을 구할 수 있는 최후의 보류이기 때문에. 특히 아직도 분단되어 있고 고통받는 한민족들이 있을 때 그 자리에 내가 항상 있겠다. 이 다짐이 많은 분들에게 또 든든한 응원이 될 것 같습니다. 오늘 탈북 1호 변호사, 이영현 변호사와 함께했습니다. 변호사님, 감사합니다.

◆ 이영현> 네, 감사합니다.

YTN 김우성 (wskim@ytnradi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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