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다외교’ 끝나나…美 ‘곰 세마리’ 가족 한꺼번에 중국으로

정지섭 기자 2023. 9. 8.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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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미스소니언동물원, 아쉬움 달래는 ‘역대급 이별’ 이벤트
미국인들의 대중국 적대감 완화시킨 ‘소프트 외교’로 주목

1972년 4월 16일 미국인들의 시선이 수도 워싱턴DC에 있는 스미스소니언 국립동물원으로 쏠렸다. 당시 미국의 미수교국이자 적성국이었던 중국에서 보낸 판다 링링(3·암컷)과 싱싱(2·수컷)이 이 동물원에 들어왔다. 인형 같은 판다들이 댓잎을 먹고 뒹구는 모습을 보러 구름 관객이 모여들었다. 7년 뒤 미국과 중국은 외교 관계를 수립하며 적대 관계를 청산했고, 판다 우리는 두 나라의 데탕트(긴장 완화)를 상징하는 외교적 랜드마크가 됐다.

23년의 미국 생활을 마치고 중국으로 돌아가는 메이샹(왼쪽)과 톈톈 부부. 둘은 그동안 네 마리 새끼를 낳아서 어른으로 키워냈다. /스미스소니언 국립동물원

이 판다 우리가 반 세기 만에 문을 닫는다. 미·중 간 판다 임대차 계약 종료로 현재 살고 있는 톈톈(26·수컷)과 메이샹(25·암컷), 그리고 슬하의 샤오치지(3·수컷)가 오는 12월 초 중국으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판다들이 떠나 우리가 문을 닫으면서 전담 사육사들도 다른 곳으로 배치된다. 동물원은 최근 이 같은 사실을 공식 발표하고, ‘판다 축제: 역대급 이별(Panda Palooza: Giant Farewell)’이라는 제목의 송별 행사를 연다. 기념 촬영, 콘서트, 그림 그리기, 공예품 만들기 등 각종 프로그램이 마련된다. 동물원 측은 “돌봄 노하우가 있는 만큼 새 판다를 맞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하지만 외교 전문지 포린폴리시는 “워싱턴의 판다는 이 세 마리가 마지막일 수 있다”며 “트럼프·바이든 행정부 시기에 취해진 관세부과·수출통제·투자제한 조치와 정찰풍선 파문 등으로 두 나라 사이의 불신은 깊어졌다”고 했다.

메이샹과 톈톈 사이에서 나온 네번째 새끼인 수컷 샤오치지가 2020년 태어난지 얼마 안됐을때의 모습. /스미스소니언 국립동물원

워싱턴의 판다 우리는 냉전 시기 강대국들의 치열한 외교전을 상징하는 장소다. 1969년 들어선 리처드 닉슨 미국 행정부는 냉전 라이벌 소련과의 패권 경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기 위해 중국과의 데탕트를 시도했다. 이 전략의 일환으로 1972년 2월 닉슨 부부가 중국을 전격 방문했다. 당시 베이징 동물원을 방문했던 부인 퍼트리샤 닉슨 여사가 만찬 자리에서 베이징 동물원에서 본 판다 이야기를 꺼내며 “내가 정말 좋아하는 동물”이라고 했다. 이에 저우언라이 총리는 “그렇다면 선물로 드리겠다”고 했다.

1972년 워싱턴에 온 첫 판다인 링링(왼쪽)과 싱싱. 각각 1992년과 1999년 폐사했다. /스미스소니언 국립동물원

이후 절차는 초고속으로 진행됐다. 두 달 뒤 판다 한 쌍이 미국 땅을 밟았고, 닉슨 여사가 직접 맞았다. 중국은 1949년 공산당 집권 뒤 판다의 국외 반출을 전면 금지했고, 1957년 소련에 판다를 보내는 것을 시작으로 판다를 외교 수단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판다는 소프트 외교(매력이나 신뢰를 통해 상대방 국가의 마음을 얻는 외교 전략)의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 꼽혔다.

그러나 이후 닉슨 부부와 판다들의 삶은 순탄치 않았다. 판다의 워싱턴 입성 두 달 뒤 터진 이른바 ‘워터게이트 사건’에 휘말린 닉슨은 탄핵 위기에 몰렸고, 1974년 8월 대통령직에서 물러났다. 판다들은 여러 차례 번식 시도 결과 다섯 차례 새끼가 나왔지만 모두 출생 직후 사망했다. 판다들은 노쇠해졌다. 결국 링링과 싱싱은 각각 1992년·1999년 폐사했다.

2015년 미셸 오바마 여사와 펑 리위안 여사가 새로 태어난 수컷 판다의 이름인 '베이베이'를 공개하고 있다. /스미스소니언 국립동물원

판다 우리는 주인을 잃었지만 적막은 오래가지 않았다. 중국이 2000년 새로운 판다 한 쌍을 보냈기 때문이다. 그때 온 판다들이 이번에 돌아가는 톈톈과 메이샹이다. 28년 전 저우언라이가 선물한 판다들과 달리 임대차 계약에 따라 보내졌다. 계약은 세 차례 연장됐고, 오는 12월 초 만료된다. 이들은 워싱턴 입성 5년 뒤 자연분만으로 수컷 타이샨을 낳았다. 이어 2013년에는 암컷 바오바오를, 2년 뒤에는 수컷 베이베이를 낳았다. 미·중 정상들은 두 나라 관계 안정화에 판다를 적극 활용했다.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부인 낸시 레이건 여사는 1984년 스미스소니언 동물원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야생 판다를 보호하기 위한 기금을 미국 학생들이 손수 마련하자는 모금 캠페인을 알리는 내용이었다. 2015년 스미스소니언 동물원에서 태어난 ‘베이베이’의 이름은 당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부인 미셸 오바마 여사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부인 펑리위안 여사가 함께 붙였다. 워싱턴에서 태어난 세 마리 판다는 모두 중국으로 돌아갔다. 도널프 트럼프·조 바이든 행정부 들어 미·중 관계는 최악으로 치달았지만, 스미스소니언 동물원 판다들은 민간 외교관 역할을 톡톡히 했다. 특히 2020년 태어난 샤오치지는 희망의 상징으로 통했다. 부모 판다가 워낙 늙어 동물원 측은 임신과 분만을 예상하지 못했다고 한다. 2021년에는 친강 당시 주미 중국대사가 직접 첫돌을 축하하는 영상 메시지를 발표했다. 지난해 4월에는 판다의 워싱턴 입성 50주년을 축하하는 기념행사도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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