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K-라면 60년
라면은 한국인에겐 단순한 음식이 아닌 ‘솔 푸드’다. 배고파서, 속쓰려서, 스트레스가 쌓여서 오늘도 라면을 먹는다. 세계라면협회가 조사했더니 지난해 한국인 한 명이 77개를 먹었다고 한다. 한동안 안 먹으면, 생각나는 것도 라면이다. 허기진 저녁, 코를 자극하는 라면 냄새에 당할 자가 있을까. 면을 후후 불어 한 젓가락 입에 넣는 순간, 저절로 미간이 찌푸려진다. 작가 김훈은 산문집 <라면을 끓이며>에서 “그 맛의 놀라움은 장님의 눈뜸과도 같았고 ‘불의 발견’과 맞먹을 만했다”고 했다.
지금이야 매운맛을 부각시킨 ‘신라면’이 최강이지만, 국내 라면 원조는 삼양라면이다. 1958년 일본에서 처음 만든 인스턴트 라면을 국내에 들여온 사람이 삼양식품 창업주 전중윤 회장이다. 그는 서울 남대문시장에서 ‘꿀꿀이죽’을 사먹는 사람들을 보고 일본 묘조식품으로부터 기계·기술을 도입해 1963년 9월15일 국내 첫 라면을 출시했다. 가격은 10원이었다. 초기엔 닭 육수로 맛을 낸 하얀 국물이었는데 큰 관심을 끌지 못했다. 국민 입맛을 사로잡은 건 소고기 육수로 바뀌면서다.
라면 조리법은 인터넷을 달구는 단골 소재다. 2021년 물리학자 김상욱 교수가 페이스북에 찬물에 면을 넣고 끓이면 ‘완벽한 면발’을 즐길 수 있다고 해 화제가 된 적 있다. 당시 라면 회사에선 실험까지 해 “맛을 내기 어렵다”는 설명을 냈다. 지금도 온갖 레시피가 쏟아지고 있으니 가히 솔 푸드라고 부를 만하다.
올해는 삼양라면 출시 60주년이 되는 해다. 삼양식품이 그 기념으로 라면 맛과 포장을 새롭게 바꾼다고 한다. 면에 감자전분을 추가하고, 모양은 원형에서 사각면으로 바꿨다. 올해 1~7월 라면 수출액도 5억2200만달러로 역대 최대를 기록 중이다. 그 뒤엔 K콘텐츠가 있다. 영화 <기생충>의 ‘짜파구리’,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에서 생라면을 부숴 먹는 장면 등 콘텐츠가 인기를 끌면서 덩달아 라면 인지도가 올라갔다.
이쯤 되면 라면의 정체성은 한식으로 봐도 되지 않을까. 고개를 젓는 이들에게 음식평론가 이용재는 <한식의 품격>에서 라면이 “가장 한국적인 맛”이라고 한다. “후루룩 짭짭 맛 좋은 라면” 한 그릇에 허기진 배만 아니라 마음까지 채울 수 있다면 행복하겠다.
이명희 논설위원 mins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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