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페어가 처음? 뭘 좋아할지 몰라 다 준비해봤어 [프리즈 서울 관람가이드]

김슬기 기자(sblake@mk.co.kr) 2023. 9. 8. 1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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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코엑스에서 세계 3대 아트페어인 ‘프리즈 서울’이 개막한 가운데 관람객들이 작품을 감상하고 있다. [김호영기자]
이번 주, 서울에서는 정말 미술계의 큰 행사가 열리고 있습니다. 들어는 보셨죠? ‘프리즈 서울 2023’이라는 행사입니다. 화려한 복장의 해외 손님들이 삼청동, 이태원 등 갤러리 일대에서 유난히 많이 보이는 것도 올해 두 번째 열리는 이 행사를 찾은 미술계 인사들이 수천 명에 이르기 때문입니다.

아트페어는 말 그대로 미술장터입니다. 미술품을 사려면 전 세계에 있는 갤러리를 직접 방문해야하지만, 120개나 되는 세계적인 갤러리가 자신들의 대표 작가, 대표 작품을 한자리에 모아놨으니 ‘그림 쇼핑’을 하기에 정말 좋은 기회입니다. 9월 6일 VIP 개막을 시작으로, 7일부터 일반관람이 시작됐습니다. 9일 막을 내리니 이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네요.

코엑스 3층 C,D홀을 모두 쓰는 거대한 행사이고 국내 26개 화랑을 포함해 세계 120개 화랑이 참여합니다. 다리가 아플 정도로 돌아다니는 게 힘들다면 소문난 부스라도 놓치지 않고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뭘 좋아할지 몰라 이번 프리즈 서울의 화제 부스를 이것저것 다 모아봤습니다.

아니, 이것도 예술 맞아?
페로탕 부스에 난입한 노숙자처럼 보이는 마우리치오 카텔란의 ‘준호’ [김호영기자]
메인 출입구인 C홀 입구부터 최고 인기 부스 중 하나인 페로탕의 농담 같은 작품을 만날 수 있습니다. 별이 화사하게 빛나는 타바레스 스트레찬의 그림 아래에 쪼그려 앉은 노숙자 ‘준호’입니다. 이 친구는 올 상반기 최고의 화제 전시였던 리움미술관에서 열린 마우리치오 카텔란 개인전의 입구에도 전시돼 화제를 모았던 바로 그 작품입니다. 나무·스티로폼·스티인리스스틸 등으로 실물 크기의 형체로 제작해 리움미술관에 로비에 앉아있던 이 젊은 친구가 이번에는 슈퍼리치들의 이벤트인 아트페어를 습격한 셈입니다. 아트바젤 마이애미에서 12만달러에 바나나를 팔았던 ‘악동’이 이번에도 ‘시선강탈’에 성공했습니다.

작년 키아프에서도 흥미로운 퍼포먼스를 했던 에스더쉬퍼는 올해 프리즈에서 또 하나의 퍼포먼스를 하고 있습니다. 부스에는 출입문이 만들어져있는데, 나비넥타이에 정장을 입은 남자가 이곳을 통과하는 이들의 이름을 묻고는 큰소리로 그 이름을 외칩니다. 프랑스 예술가 피에르 위그의 퍼포먼스 ‘롤 아나운서’(2016)를 아트페어에서 재연한 것으로 관람객의 이목을 끌고 소통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전시장을 통째로 ‘변신’시킨 모던 인스티튜트
아트뉴스 선정 10대 부스로도 꼽힌 글래스고의 모던 인스티튜트는 전시장을 통째로 ‘변신’시키는 파격적인 전시로 아트페어 최고의 화제 부스가 됐습니다. 첫날 부스를 미국 화가 월터 프라이스의 가로 6인치, 세로 8인치 작은 소품으로만 부스를 채웠습니다. 텅 빈 부스 가운데에는 긴 나무 벤치를 두고 ‘휴식 시간’을 선사한 것이죠. 놀랍게도 8일 이 부스는 카펫을 걷고 화려한 패턴의 바닥으로 180도 변신을 했습니다. 짐 램비의 오브제가 부스를 대신 채웠습니다. 타이어를 손전등과 함께 설치한 작품과 당근 모양 조각이 전시된 유쾌한 부스로 변신을 한 거죠. 차분한 공간은 어느새 파티장처럼 변신해있었습니다.

카르마 갤러리에서는 아마존 택배 상자가 3층으로 쌓인 걸 볼 수 있습니다. ‘아니 이게 뭐야’ 싶지만, 가격이 놀랍게도 9만불(1억원)인 뭉고 톰슨의 ‘눈사람’이란 이름이 붙은 엄연한 작품입니다. 청동에 물감을 칠한 조각으로 감쪽같이 눈속임하는 이 작품은 어마어마한 무게로 택배상자처럼 가볍게 들어 올릴 수 없습니다. 녹아서 사라져버리는 눈사람이란 이름과 달리, 쉽게 옮길 수도 사라지지도 않는 셈입니다.

카르마갤러리에 아마존 택배상자처럼 만들어진 뭉고 톰슨의 ‘스노우맨’
내가 제일 잘나가
필립 거스턴(왼쪽)과 루이스 부르주아 조각이 보이는 하우저앤워스 [김호영기자]
프리즈 서울에서 놓치면 안될 부스로는 이 기간이 아니면, 만날 수 없는 세계 최대의 ‘메가화랑’입니다.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소위 ‘빅4’인 하우저앤워스, 데이비드즈워너, 가고시안, 페이스가 프리즈 서울에 모두 참여합니다. 이들 부스의 대표작은 모두 30억~50억원을 호가하는 ‘억소리’가 나는 작품들입니다.

하우저앤워스는 필립 거스턴과 루이스 부르주아의 수십억원대 작품을 전면에 걸었습니다. 판매된 작품 중에는 니콜라스 파티의 ‘Double Portrait’가 125만달러(약 17억원)에 달하고, 조지 콘도의 ‘Internal Combustion’도 80만달러(약 11억원)에 달합니다. 폴 매카시의 작은 핑크색 조각 ‘미미’도 약 7억7000만원에 달합니다.

로렌스 와이너를 전면에 건 페이스 갤러리 [김호영 기자]
지난해 독일 추상화 거장 게르하르트 리히터의 200억원대 유화 ‘촛불’이 걸렸던 가고시안 전면에는 영국 출신 흑인 화가 자데 파도주티미의 50만파운드(약 8억4000만원)대 회화와 미국 작가 조너스 우드의 380만달러(약 51억원)대 회화 ‘밤에 피어난 풍경을 담은 화분’이 자리 잡았습니다.

페이스는 로버트 나바, 로렌스 와이너를 간판으로 내세웠습니다. ‘ON THE LINE OFF THE LINE’이라고 벽에 글자를 써넣은 로렌스 와이너의 작품으로 대작 회화들을 건 타 갤러리와는 차별화된 전시를 구성했습니다.

데이비드 즈워너는 첫날부터 장사를 아주 잘했는데요. 그 비결은 한국에서 유난히 인기많은 구사마 야요이의 대작을 대거 가져왔기 때문입니다. 첫날 팔린 구사마 야요이의 회화 ‘붉은 신의 호박’을 580만달러(약 77억원)을 비롯해 회화 ‘인피니티 네트’(380만달러)와 황금색 청동 조각 ‘호박’(650만달러)까지 가장 비싼 부스는 단연 데이비드 즈워너였습니다.

초고가 작품들은 작품 가격을 VIP 고객외에는 공개하지 않지만 이번 아트페어에도 ‘억소리’나는 비싼 작품들이 많이 걸렸습니다. 스카스테트(SKARSTEDT)에 걸린 윌렘 드 쿠닝의 추상화는 100억원 이상의 가격으로 알려졌습니다.

구사마 야요이의 ‘호박’ 등을 전시한 데이비드즈워너 [김호영기자]
뭐니뭐니해도 줄서는 맛집
피카소, 세잔 등의 작품으로 맛집처럼 줄을 서며 인기 폭발한 스테판 옹핀 파인아트 부스.
아트페어에도 ‘줄 서는 맛집’이 있습니다. 프리즈만의 특징은 고전 걸작들을 별도의 섹션으로 나눠 ‘마스터스’ 섹션을 구획했다는 것입니다. 고대부터 20세기까지의 기품 있는 예술을 모아놓은 이곳은 미술관을 방불케하는 명작들이 즐비합니다.

작년 에곤 쉴레 40여점을 건 리처드 내기 갤러리에 입장줄이 수십미터가 늘어섰는데, 올해는 그 인기를 스테판 옹핀 파인아트가 물려받았습니다. 폴 세잔, 루시안 프로이트, 앙리 마티스, 조안 미첼, 파블로 피카소 등 거장들이 종이에 그린 드로잉 작품을 엄선해 전시하는데, 가격을 매길 수 없을 만큼 비싼 비매품도 다수 포함됐습니다. 8일 오전부터 희귀작을 보려는 관람객이 몰려들면서, 부스 앞에는 수십미터 줄이 늘어서 ‘인산인해’를 이뤘습니다.

로빌란트보에나(R+V)는 초대형 조각인 제프 쿤스의 ‘게이징 볼’을 입구에 배치해 눈길을 끌었습니다. 360만달러(48억원)에 달라는 고가의 작품이고, 이 부스에는 피카소의 95만달러(13억원) 드로잉, 안드레아 바카로의 17세기 작품 ‘홀로페르네스의 머리를 든 유디트’ 등 고전 작품이 많아 인기가 많았습니다.

관람객을 거울처럼 비추는 아니쉬 카푸어의 원형 조각 ‘Green and Brandy’ [김호영기자]
‘셀카 명소’도 여러곳 탄생했습니다. 프리즈 서울 최다 출품 작가로는 단연 우고 론디노네와 아니쉬 카푸어를 꼽을 수 있습니다. 서너개 부스에서 다양한 작품을 만날 수 있습니다. 포토제닉한 작품을 만들기로 유명한 두 작가를 모두 출품한 국제갤러리는 부스에 들어가기가 힘들정도로 많은 인파가 몰리고 있습니다. 한가운데 걸린 아니쉬 카푸어의 ‘Green and Brandy’ 앞에 서면 뒤집어진 내 모습이 거울처럼 떠오릅니다.

우주에서 가장 검은색이라는 별명이 붙은 ‘반타 블랙’ 작품도 곳곳에서 만날 수 있었습니다. 카푸어의 거대한 원형 작품이 걸린 부스마다 사진 찍는 관람객이 많았습니다. 재미있는 건 검은색 원의 인기는 다른 부스에서도 대단했다는 겁니다. 아라리오갤러리에 걸린 이진주의 얼굴을 가린 여인의 손을 그린 작품에는 이정배 블랙이라는 물감이 쓰였습니다. 작가의 남편이 특수제작해 한국에서 만들어진 가장 검은색이라고 말하는 색채입니다. 이 ‘한국형 반타블랙’ 작품 앞에도 사진을 찍는 행렬은 길게 늘어섰습니다.

이정배 블랙을 사용한 이진주의 원형 회화
솔로 부스 인기도 뜨겁네
갤러리현대 이성자 솔로 부스 [갤러리현대]
아트뉴스가 선정한 이번 페어 10대 부스로 뽑힌 부스는 솔로 전시를 연 곳이 유난히 많습니다. 많은 작품을 팔기 위해 참가하는 갤러리들이 한 작가의 작품으로만 부스를 채우는 건 쉽게 말해 ‘가성비’가 좋은건 아닙니다. 대신 미술관처럼 전시를 꾸민 부스가 화제를 모으면, 작가가 세계적으로 알려질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됩니다.

갤러리현대는 ‘한국 추상화의 대모’ 이성자의 솔로부스로 꾸몄습니다. 화사한 붓질과 색감으로 점점이 별이 빛나는 우주를 펼쳐보이는 추상화의 진면목을 만날 수 있습니다. 지난 시대의 추상화가가 이토록 모던하고 세련된 미감을 보여줄 수 있다는 사실에 많은 관람객들이 찬사를 보냈습니다.

신진 작가들을 신생 화랑이 소개하는 ‘포커스 아시아’ 섹션에 나온 실런더는 한국계 작가 유신애의 ‘Post Truth’라는 제목의 전시를 열었습니다. 작품을 직접 변신 로봇처럼 변화시켜 큰 화제를 모았습니다. 얀 반 에이크의 겐트 제단화를 연상시키는 삼면화는 좌우를 접으면 감쪽같이 사라집니다. 커튼 속에 숨겨진 작품과 함께, 이 갤러리는 주기적으로 작품을 숨기고 다시 공개하는 퍼포먼스를 회화를 통해 연출했습니다.

올해 처음 참가하는 샌프란시스코의 제시카 실버맨은 우디 드 오셀로의 조각과 회화로만 부스를 채운 솔로 전시를 열었습니다. LA의 인기 화랑인 데이비드 코단스키는 추상회화에 네온 조명을 조화시킨 메리 웨더포드의 독특한 작품으로 빛에 이끌리듯 관람객들이 모여들게 했습니다.

실린더 갤러리에서 유신애 작가의 회화 작품을 접어서 숨긴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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