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평등 도서 열람제한은 인권침해”…시민단체들, 인권위 진정
최근 충남 지역에서 성교육·성평등 관련 일부 도서를 공공도서관에서 빼라는 보수 성향 학부모 단체들의 ‘금서 지정’ 운동에 도내 공공도서관이 해당 도서 열람을 제한하자, 이에 반발한 시민단체들과 해당 도서 작가가 “도서 열람 제한은 인권 침해”라며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에 진정을 제기했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차제연)와 충남차별금지법제정연대(충남차제연)는 8일 서울 중구 인권위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충남지사, 충남교육감,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피진정인으로 한 공동진정을 제기했다고 밝혔다. 이번 인권위 공동진정에는 충남도민 300여명이 참여했을 뿐만 아니라, 열람 제한이 된 ‘걸스토크’의 저자 이다 작가도 함께 참여했다.
지난 5월부터 충남 지역의 극우 기독교 성향 학부모들은 이 지역 공공도서관에 성교육·성평등 등을 주제로 한 일부 어린이·청소년책을 “폐기처분해 달라”는 민원을 집중적으로 제기했다. 시민단체 ‘꿈키움성장연구소’는 “다양성, 사회문화적 성, 성인지(감수성) 등을 근거로 동성애, 조기성애화, 낙태 등을 정당화하거나 이를 반대하지 못하는 내용이 담겨 있는 도서는 마땅히 페기처분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도서관에 비치돼 있다”며 해당 도서를 폐기해달라고 요구했다.
학부모들의 반복적인 민원에 공공도서관들은 지난 7월께부터 해당 도서에 대한 열람을 제한하기 시작했다. 또 김태흠 충남도지사은 지난 7월25일 충남도의회 본회의에서 “해당 도서의 열람을 제한하도록 조치했다”라는 발언을 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일련의 과정 속에서 충남차제연을 포함한 133개 인권시민사회단체는 해당 도서 열람 제한에 강력하게 반발했고, 이들은 지난달 23일 충남도, 충남교육청 산하 공공도서관들에 성교육·성평등 도서에 대한 검색 제한·열람 제한 등과 같은 일체의 제한을 없애달라고 공문을 보내기도 했다. 그러나 공공도서관은 이들의 요구에 어떠한 조처를 취하지 않았다.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 만드는 법’의 김두나 변호사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진정을 하게 된 이유에 대해 “충남도지사의 열람제한 제한조치는 구체적인 법령상 근거없이 차별적인 의도하에서 이뤄진 것”이라며 “이는 진정인들의 문화향유권, 표현의 자유, 예술의 자유 등 헌법상 기본권을 침해한다”고 밝혔다. 김 변호사는 또 악성 민원에 시달린 공공도서관들이 어쩔 수 없이 해당 도서를 서가에서 제외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데도 충남 교육감이 도의회에서 “검토하겠다”는 말만 하고 구체적 조처를 하지 않은 것을 문제 삼았다.
충남도지사와 충남교육감의 이러한 태도는 여성, 아동, 청소년, 성소수자에 대한 불합리한 혐오와 차별을 선동하는 민원에 제대로 대응을 하지 않는 행위 또는 오히려 이에 동조한 행위로서 차별행위에 해당한다는 것이 김 변호사의 설명이다.
진정에 참여한 이다 작가는 “보수 학부모단체는 자극적인 몇 부분을 추출해 이 책이 마치 아이들의 조기성애화를 부추기는 것처럼 말하는데, 이 책을 읽는 청소년 중에 그 누구도 이 책을 보고 빨리 성관계가 하고 싶어졌다고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오히려 많은 청소년들이 연애와 성관계에 신중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했다”며 “어린 여성들이 자신의 몸에 대해 잘 알게 도와주고 연애가 무엇인지 섹스와 임신이 무엇인지 잘 아는 상태에서 현명한 선택을 하라고 말하는 책이니 책에 대한 오해가 풀리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이들은 진정서에서 “충남도지사는 공공도서관에서 열람을 제한한 10종의 도서에 대해 열람 제한을 즉시 해제하고, 충남도지사와 충남교육감은 민원을 이유로 공공도서관에서 정당한 이유 없이 성평등·성교육 도서가 폐기되거나 열람 제한되지 않도록 지침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도서관 직원 보호 등 필요한 모든 조처를 다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들은 또 문화체육부장관이 도서관의 장서가 부당한 이유로 폐기되거나 열람 제한되지 않고 각 도서관의 독립적인 운영이 보장되도록 도서관 정책을 기획·시행할 것을 촉구하기도 했다.
양선아 기자 anmad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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