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예산 턱없이 부족"···신보, 소상공인 대위변제 '돌려막기' 할판

김우보 기자 2023. 9. 8. 17:56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4500억 필요한데 800억만 편성
부실 급증에 사업비 연말께 고갈
중소기업 보증사업비 일부 줄여
대위변제에 활용 방안까지 검토
[서울경제]

신용보증기금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소상공인 대위변제를 위해 정부에 지원을 요청했으나 예상보다 턱없이 부족한 예산을 받았다. 신보는 당장 사용할 사업비조차 바닥을 보이는 만큼 중소기업 보증 사업비 일부를 소상공인 대위변제에 이용하는 방안까지 들여다보고 있다.

8일 금융권에 따르면 예산 당국은 내년 신보의 소상공인 위탁 보증 사업 예산으로 800억 원가량을 배정했다. 앞선 예산 편성 과정에서 신보가 신청한 금액은 4500억 원이다. 이대로라면 사업을 이어가는 데 쓸 사업비가 약 3700억 원 부족하게 된다.

소상공인 위탁 보증은 코로나19로 위기를 겪은 소상공인을 지원하기 위해 2020년부터 3년간 한시 도입된 프로그램이다. 소상공인들이 신보 보증을 받아 은행에서 최대 4000만 원까지 대출할 수 있으며 연체 발생 등 채권이 부실 처리되면 신보가 은행에 돈을 대신 갚는다.

신보가 당국에 추가 지원을 요청할 정도로 사업비는 예상보다 빠르게 고갈되고 있다. 앞서 신보는 사업이 종료되는 2027년(상환 기준)까지 6100억 원의 사업비를 배정받았는데 올해 말이면 바닥을 드러낼 것으로 예상된다. 그간 내줬던 보증의 부실이 갈수록 불어난 영향이다. 신보는 올해 업무 계획을 세우면서 연말 부실률을 6.6%로 전망했는데 실제 부실률은 6월 기준 9.17%를 기록하는 등 반년 만에 관리 목표를 넘어섰다.

문제는 앞으로 부실 규모가 더 늘 수 있다는 점이다. 신보는 지금과 같은 추세라면 2027년 부실률이 최대 30%까지 오를 것으로 보고 있다. 이 경우 신보가 대신 갚아야 하는 빚은 2조여 원에 달하고 당장 내년에만 4500억 원이 필요하다. 한 금융 공기업 관계자는 “신보는 사업 도입 당시 2년 거치 3년 분할상환으로 보증을 지원했는데 경기가 워낙 좋지 않아 3년 거치 2년 분할상환으로 변경했다”며 “앞으로 2년간 ‘코로나19 고지서’가 쏟아지고 신보의 대위변제액도 크게 불어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내년도 예산으로 받은 추가 사업비만으로 대위변제 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운 터라 신보 내에서는 중소기업 보증(일반 보증) 사업비를 소상공인 위탁 보증 사업비로 전용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일반 보증은 신용이 부족한 중기나 벤처기업이 은행에서 자금을 빌릴 수 있도록 보증을 서주는 신보의 핵심 사업이다. 금융 공기업 관계자는 “국회 심의 과정에서 예산이 조정되지 않는다면 다른 사업비로 소상공인 대위변제 비용을 돌려 막을 수밖에 없다”면서 “한시 도입한 사업의 부실을 감당하느라 신보의 핵심 사업인 중기 보증을 줄일 판”이라고 말했다.

우려스러운 부분은 신보가 이전부터 일반 보증 총량 감축을 검토해왔다는 점이다. 코로나19 확산으로 미룬 원금 상환 시점이 당장 이달부터 돌아오면서 가려졌던 중기와 벤처의 보증 부실이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신보에 따르면 내년 일반 보증 대위변제액은 올해보다 1359억 원 늘어난 2조 4868억 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신보 이사회는 최근 수립한 중장기 재무관리 계획에 2025년부터 중소기업의 금융권 대출에 대한 일반 보증 규모를 줄이는 안을 포함한 바 있다.

설상가상으로 일반 보증 사업비를 떼어내 소상공인 부실을 메우는 데 쓴다면 일반 보증 규모는 보다 크게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보증 축소 논의에 관여한 한 인사는 “신보의 기본적 역할은 리스크 인수인데 리스크가 큰 부채에 대한 보증을 줄이겠다는 것은 아쉬운 부분”이라며 “경제 환경이 전반적으로 안 좋아져 기업들의 리스크가 커지는 만큼 오히려 현장에 있는 사람은 더 힘들어지고 경제도 더 악화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에 대해 당국은 신보가 제대로 된 검증 없이 보증을 내줬던 만큼 책임을 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심사 과정에서 다른 보증서 발급에 비해 완화된 기준을 적용하다 보니 차주의 상환 능력을 제대로 검증하지 못해 부실을 키웠다는 것이다.

사업비 전용에 따라 일반 보증 규모가 일부 감소할 수 있지만 현재 예년에 비해 많은 보증이 공급되고 있어 별다른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실제 일반 보증 잔액 추이를 보면 2018년 45조 5000억 원에서 매해 늘어 올 6월 기준 61조 5000억 원을 기록했다. 정부 관계자는 “보증 증감 추이나 신보의 재무 상황을 조금 더 지켜본 뒤 관련 예산을 늘려도 늦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우보 기자 ubo@sedaily.com

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