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의 지평선' 국제 연구팀…블랙홀 비밀, 하나둘씩 푼다

이해성 2023. 9. 8.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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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홀을 주제로 한 공상과학(SF) 영화 '인터스텔라'가 국내에서 1000만 관객을 모은 지 올해로 10년이다.

M87 블랙홀은 국제 공동연구팀인 사건의 지평선 망원경(EHT)이 인류 역사상 최초로 관측해 2019년 4월 공개한 블랙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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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 맞댄 글로벌 과학자들
직경 2000㎞ 韓·日 망원경으로
블랙홀 폭풍 원거리 측정 성공
EHT 국제연구진이 발견한 초대질량 블랙홀 M87. /천문연구원 제공

블랙홀을 주제로 한 공상과학(SF) 영화 ‘인터스텔라’가 국내에서 1000만 관객을 모은 지 올해로 10년이다. 이 영화에선 주인공이 블랙홀에 들어가고 난 후 다른 시·공간에 있는 또 다른 자신을 만나는 장면이 나온다. 물리학적으로 보면 블랙홀 내부는 시간이 역행한다. 시간이 거꾸로 흐르며 공간이 일그러지는 경계가 가수 윤하의 히트곡 제목으로도 유명한 ‘사건의 지평선’이다.

글로벌 과학자들의 협업으로 미지의 영역인 블랙홀의 비밀이 하나둘씩 밝혀지고 있다. 한국천문연구원은 최근 M87 블랙홀 제트의 자기장 강도를 먼 거리에서 추정하는 데 처음 성공했다고 밝혔다. M87 블랙홀은 국제 공동연구팀인 사건의 지평선 망원경(EHT)이 인류 역사상 최초로 관측해 2019년 4월 공개한 블랙홀이다. 지구로부터 5500만 광년 떨어져 있으며, 무게는 태양 질량의 65억 배에 달한다.

제트는 블랙홀 주변에서 강하게 분출되는 기체와 액체 폭풍을 말한다. 천문학자들은 블랙홀에서 방출되는 제트 형성에 자기장이 깊게 관여할 것이라고 추측해왔다. 그동안 제트의 자기장 강도는 제트의 밀도가 높은 블랙홀 근처에서만 추정할 수 있었다. 블랙홀로부터 멀리 떨어진 제트의 자기장 강도를 추정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한국천문연구원은 한국우주전파관측망(KVN)과 일본 국립천문대의 일본우주전파관측망이 공동으로 운영하는 7개 전파망원경으로 ‘한·일 공동 전파관측망’을 구성해 M87 블랙홀을 연구했다. 한·일 공동 전파관측망은 직경 약 2000㎞의 전파망원경 1개에 상응한 해상도로 우주를 관측할 수 있다. 서울 연세대와 울산대, 제주 탐라대, 일본 미즈사와·오가사와라 등에 있는 전파 망원경 7대를 연결한다.

연구팀은 제트가 방출되는 과정에서 제트 내 플라즈마가 냉각되는 ‘싱크로트론 복사냉각’ 현상을 분석해 자기장 강도를 추정했다. 복사냉각은 어떤 물체가 열을 흡수하는 양보다 방출하는 양이 많아 기온이 내려가는 현상을 말한다.

연구팀은 블랙홀로부터 약 2~10만 광년 떨어진 거리에서 M87 제트의 자기장 강도를 0.3~1가우스로 측정했다. 지구 자기장 크기는 0.2~0.65가우스다. 이번 연구 논문의 제1저자인 노현욱 한국천문연구원 박사후연구원은 “초대질량 블랙홀 M87의 중심부에서 멀리 떨어진 제트의 자기장 강도를 파악하면 자기장의 전반적 모습을 알아낼 수 있다”며 “제트 형성 과정도 밝혀낼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논문은 국제 학술지 ‘천문학 및 천체 물리학’에 실렸다.

M87 블랙홀에 대한 비밀은 매년 풀리고 있다. EHT 연구팀은 지난 4월 M87의 부착(강착) 원반을 처음 관측해 이 연구 결과를 3대 국제 학술지 네이처에 실었다. 물이 가득 찬 욕조에서 물이 빠져나갈 때 배수구 주변을 보면 소용돌이 모양을 볼 수 있는데 블랙홀 주변 이런 모양을 부착 원반이라고 한다. 부착 원반과 블랙홀이 상호작용할 때 방출되는 폭풍이 제트다. 2021년 3월엔 블랙홀 내부 편광이 최초로 포착됐다. 한국천문연구원은 하와이 소재 제임스클러크맥스웰 망원경, 칠레 아타카마 대형 서브밀리미터 간섭계를 통해 이 편광 영상을 만드는 데 기여했다. EHT엔 한국을 비롯해 세계 65개 기관이 참여하고 있다.

이해성 기자 ih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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