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혜진의 막전막후] 용각산을 아시나요
얼마 전 50대, 60대 공무원과 20대, 30대 실무진이 모여 이야기하는 자리에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한 50대 간부가 '은색 통에 담긴 용각산'을 언급했다. 나이 지긋한 공무원들은 모두 자연스러운 반응을 보이며 대화를 이어갔다. 반면 2030 실무진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리고 그중 한 명이 물었다. "용각산이 뭔가요?"
용각산은 1970년대 집집마다 한 통씩 구비해 두고 있을 만큼 보편적으로 쓰이던 기침가래 해소제였다. 집안에서 누군가 목감기 증상을 보이면 은색 통에 담긴 용각산 분말을 한 숟가락씩 입에 털어넣는 게 당연한 일이었다고 한다. 중장년층이 은색 통 용각산을 떠올리며 과거를 추억하는 이유다.
하지만 지금은 대체재가 많이 나오면서 용각산을 구비하고 있는 집이 줄었고 2030세대에게는 낯선 존재가 됐다.
용각산을 알고 모르고가 중요한 일은 아니지만, 핵심은 이처럼 한 직장에서 일하는 기성세대와 MZ세대 간 인식 격차가 발생하는 지점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조직 중 가장 경직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공무원 사회에서 세대 간 파열음이 특히 크다. 대표적으로 기성세대 공무원들은 최근 몇 년 새 입직한 MZ 공무원들의 로열티 저하를 지적한다. 젊은 공무원들이 공직자의 역할을 이해하지 못하고 개인주의 성향을 앞세운 탓에 업무에 차질을 빚고 있다고 불만이다. 업무가 남았는데 칼퇴근하거나 회식에 불참하는 것 등이 대표적 일탈 사례로 거론된다.
그러나 MZ 공무원들은 과거 업무체계를 답습할 필요가 있냐는 입장이다. 정해진 업무시간이 끝났으면 퇴근하는 게 당연하고 회식도 강제할 게 아니라고 한다. 번갯불에 콩 구워 먹는 식의 인수인계, 상사 모시는 날, 연공서열에 따른 성과평가 등 관행에 반기를 든다. 민간에 비해 급여가 낮으니 "받는 만큼 일하겠다"는 말도 나온다.
기성세대 공무원들의 불만도 일리가 있다. 그러나 MZ세대 요구가 시대 변화를 반영하고 있다는 데 주목해야 한다. 변화하는 시대상과 동떨어진 조직문화를 향한 MZ세대 공무원들의 불만이 누적되면서 입직 후 5년이 채 안 된 저연차 공무원들의 이탈이 이어지고 있다. 공직을 떠난 사유로는 경직된 조직문화와 낮은 급여가 주로 지목된다. 지원자도 크게 줄었다.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결국 공직사회 경쟁력 약화를 낳게 된다. MZ세대들의 목소리를 그저 배부른 불만 정도로 여겨서는 안 되는 이유다.
MZ 공무원들의 요구사항을 들여다보면 업무와 승진 등에 있어서 합리적이고 공정한 '신상필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게 핵심이다. 이런 요구에 대해 "로열티가 예전 같지 않다"며 꾸짖기만 한다면 남은 로열티마저 증발한다.
용각산 얘기가 나왔던 그 자리는 50대 간부가 MZ 실무진에게 은색 통 용각산 사진과 "이 소리가 아닙니다"라는 캐치프레이즈로 유명한 용각산 광고 설명을 곁들이며 좋은 분위기에서 마무리됐다. "뭐 이런 것도 모르냐"며 핀잔을 줬더라면 어려웠을 일이다.
[홍혜진 경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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