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 세상을 보는 아이들의 눈
의사·간호사는 예쁘게 그려
조금만 따뜻한 눈으로 본다면
보호자·의료진도 돈독해질 것
얼마 전 우리 병원에 입원한 아이들을 대상으로 그림대회를 열었다. 그림대회를 계획한 이유는 여러 가지겠지만 일단 낯설고 무서울 수도 있는 병원생활에서 뭔가 새로운 경험도 안겨 주고, 아이들을 위한 작은 선물들로 즐거움도 선사하고 싶어서이다. 그런데 응모한 그림들을 가만히 보다 보면 부모님이 도와주신 느낌이 드는 것들도 있다. 부모님의 손길이 닿은 그림은 왠지 모르게 티가 나고 웃음도 나온다. 지웠다가 다시 그리기를 반복한 흔적들, 해당 연령의 소근육 발달 정도에 비해 놀랍도록 섬세하고 매끄러운 솜씨, 그리고 아이를 특히 예쁘게 그린 정황으로 미루어 짐작할 뿐이지만 말이다. 보통 아이들의 그림은 본인보다는 의사나 간호사 선생님이 들어가고 자신보다는 선생님들을 예쁘게 신경 써 그리곤 한다.
왜 그럴까? 아마도 입원해 있는 아이들의 눈에는 의사 선생님이나 간호사 선생님이 겁나기도 하지만 멋있어 보이기도 하고 자기의 병을 치료해주는 고마운 분으로 보이나 보다. 물론 병원에는 의사, 간호사뿐 아니라 치료에 도움을 주는 다양한 직종의 많은 사람들이 일을 한다. 보호자들은 친절직원으로 주로 이분들의 이름을 적어주시는데, 아이가 병원에 입원해 있다 보면 보호자 입장에서는 의료인보다 이분들과의 접점이 많기 때문에 이분들의 친절이 피부에 보다 와닿기 때문이리라 생각한다.
최근 필수 의료에서 의료인의 처벌을 어떻게 할 것인지가 이슈가 되고 있다. 의사라면 환자를 위한 최선의 선택을 하는 것이 당연하다. 환자 스스로는 어떤 선택이 의학적으로 최선인지 판단하기가 어렵다 보니 의사의 권유를 따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의사도 신이 아니다 보니 의학적 판단의 실수를 할 수도 있고 최선의 결과가 나타나리라 장담할 수는 없다.
아이를 진료하는 소아청소년과 의사들은 아이의 상태를 당연히 최우선으로 생각해야 하지만, 종종 보호자의 태도를 더 신경 써야 하는 웃지 못할 현실을 마주하게 된다. 의사도 때로는 환자가 되고 보호자도 된다. 그래서 그 마음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솔직히 이해하기 어려울 때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올해로 개원한 지 10년이 되는 우리 병원은 나름 지역사회에서 인지도 있는 병원으로 자리 잡고 있다고 자부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들어 보호자들이 병원의 의료진과 직원들을 위협하는 사례가 보고되면서 각 병원 원내에 보안요원을 3명씩 배치하였다. 이분들은 보호자분들과 아이들을 안내하는 역할도 하면서 직원들의 안전도 담당하는 임무를 맡고 있다. 미국 드라마에서나 보던 경찰이 있는 응급실도 아니고 어린이병원에 보안요원을 배치해야 할 정도라니. 이러한 결정을 내리게 되면서 생긴 참으로 씁쓸한 기분을 지우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지금 어떤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 걸까? 아이들 눈에 비친 의사, 간호사처럼 보호자들이 의료진을 생각해준다면 젊은 의사들의 소아청소년과 기피 현상이 이렇게 심각한 문제로 비화되지는 않았을지 모른다. 소아과 의사는 환자뿐 아니라 보호자와도 '라포르'라는 신뢰관계를 구축해야 한다. 요즘 젊은 의사들이 소아청소년과를 선택하지 않는 이유 중에는 낮은 의료수가나 열악한 근무환경, 저출산 이외에도 그 어느 타 진료과보다도 상대하기 어려운 보호자들이 꼽힌다. 물론 아이가 아픈 보호자들 입장에서 답답하고 불안한 마음도 크다 보니 기대 역시 클 것이라는 사실을 의사들도 잘 알고 있고 본인 스스로도 드라마 속에 나오는 친절하고 실력 있는 의사가 아닐 수 있다는 것을 안다. 결국 서로를 조금 더 신뢰하고 협력함으로써 의사와 보호자 둘 다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함께 지켜나갈 수 있지 않을까?
[정성관 우리아이들병원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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