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연의 책과 지성] "인간의 뇌는 음모를 만들어야 직성이 풀리는 장치다"
토머스 길로비치 (1954~ )
인간은 참 속기 쉬운 동물이다. 인간이 잘못된 믿음이나 통념에 빠지는 중요한 원인은 뇌의 오류다. 인간의 부정확한 뇌는 '신념과 기대'라는 묘한 심리 상태를 만들어낸다. 사람의 뇌는 자신의 신념이나 기대와 합치되는 정보가 나타나면 그것을 확대 해석하는 못된 속성을 발휘한다.
요즘 인간의 부정확한 뇌를 이용해 돈을 버는 유명인이나 미디어가 생겨났다. 이 악마들은 특정 정파를 지지하거나 저주하는 자극적인 소식을 전하면서 돈을 번다. 그들이 전한 정보가 명백한 거짓으로 드러나도 이들의 인기와 수입은 떨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이들을 추종하는 세력이 더 늘어난다. 왜 그럴까. 인간의 뇌는 결코 합리적이거나 이성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인간의 뇌는 욕망과 이익만이 최대 목적인 생존 장치다. 그러니 당연히 이런 뇌에 진실 같은 건 중요하지 않다.
예를 들어 특정 종교를 믿는 광신자가 10년 동안 매일 병이 낫게 해달라고 기도했다고 치자. 그러던 어느 날 정말로 병이 치유됐다. 그 광신자에게 이것은 신이 존재한다는 명백한 증거가 된다.
병을 치유하기 위해 했던 수많은 진찰과 치료, 투약과 수술 같은 건 그에게 의미 없다. 기도에 응답하지 않았던 10년의 세월도 의미가 없다. 오로지 신이 내 병을 낫게 해준 것이다.
뇌의 기억술에도 치명적인 문제가 있다. 사람의 기억은 종합적이지 않다. 따라서 단면적 사건만 기억하는 오류를 범한다. 예를 들어 '내가 샤워만 하러 들어가면 전화가 온다'는 사람이 많다. 이것은 샤워할 때 온 전화가 유독 기억이 잘되는 것이지, 실제로 샤워할 때 전화가 많이 온 것은 아니다.
샤워 중 전화벨이 울리면 일단 받아야 할지 말아야 할지 갈등하게 되고, 비눗물을 제대로 닦지 못한 채 움직여야 해 불편하며, 몸이 오싹해지는 한기를 느껴야 한다. 이러니 강하게 기억되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평범한 상태에서 온 전화는 기억되지 않는다. 사건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세차만 하면 비가 온다든지, 어떤 물건을 창고 깊숙이 넣어두면 꼭 급하게 쓸 일이 생긴다든지 하는 일은 모두 기억술의 오류 때문에 생기는 착각이다.
토머스 길로비치 미국 코넬대 심리학 교수는 인간의 잘못된 믿음이 어떻게 생성되고 각인되는지를 인지심리학과 사회심리학을 동원해 분석한 학자다. 그에 따르면 인간의 뇌는 거짓을 지어내는 장치다. 인간의 의식은 진공 상태, 즉 무의미를 못 견딘다. 뇌는 지각되는 것에서 의미를 찾아야 직성이 풀린다. 그래서 달에서 방아 찧는 토끼를 만들고, 옆 마을에 마녀도 만들어낸다.
이 첨단 문명 시대에도 음모론은 언제나 큰 위력을 발휘한다. 사실 이 문제는 해결되기 힘들다. 뇌는 그대로이고 초연결사회가 도래했기 때문이다. 그냥 점점 지옥이 되는 세상을 견디는 수밖에 없다.
[허연 문화선임기자]
Copyright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 장거리 여행 간다면 ‘가장 안 좋은 좌석’ 고르라는 여행 작가…왜 - 매일경제
- 1000만원대 차 몰고 달동네간 회장님…‘애마’라며 3번이나 샀다는데 - 매일경제
- 7년 은둔 깨고 VIP파티 참석한 그녀…무슨 모임이었길래 - 매일경제
- “아들, 돈 모을 땐 그래도 이게 최고야”…알짜예금 쏟아진다는데 - 매일경제
- 임시휴일 생겨 여행 욕구 ‘쑥’…10명 중 7명 추석에 놀러간다 - 매일경제
- 젠슨 황 CEO, 엔비디아 주식 팔았다...122배 수익 - 매일경제
- “사람 친줄 몰랐다”…70대 뺑소니범, 차 고치러 정비소 갔다 덜미 - 매일경제
- 1200만원 할인, ‘쏘나타값’ 수입차 됐다…3000만원대 진입한 전기차 [왜몰랐을카] - 매일경제
- ‘포람페’ 탄다고 뽐내다 기죽겠네…‘극강 슈퍼카’ 로터스 에메야 나온다 - 매일경제
- 우리아스, 메시 경기 보러갔다 손찌검했다 - MK스포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