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적 판단이 범죄인가"…수술 늦춘 외과의사 집유에 의료계 '부글'
필수 의료의 한 축을 담당하는 외과가 들끓고 있다. 장폐색 환자에게 수술 대신 보존적 치료를 선택한 외과 의사에게 사법부가 형사처벌을 결정하면서다. 필수 의료 붕괴가 가속할 것이란 우려감도 팽배하다.
8일 의료계와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은 최근 업무상과실치상 혐의로 기소된 외과 의사 A씨에게 금고 6개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금고형은 징역형처럼 교도소에 수감되지만 강제노역은 하지 않는 형벌이다.
사정은 이렇다. 지난 2017년 11월, 한 환자가 갑작스러운 복통으로 서울 소재 한 병원 응급실을 찾았다. 의사 A씨는 소장이 막히거나 꼬여 발생하는 장폐색을 의심했지만, 환자의 통증이 점점 사라지고 있고 6개월 전 난소암으로 개복수술을 받은 과거력이 있음을 감안해 바로 수술하지 않고 금식하며 수액·항생제 등을 처방하는 '보존적 치료'를 시도하기로 했다. 환자 역시 경제적인 사정 등을 이유로 이에 동의했다.
하지만, 7일째 되는 날 환자의 상태는 급격히 악화했다. 심한 복통과 전신 부종, 호흡곤란, 혈변 등 장이 괴사했을 때 나타나는 증상이 보였다. 의료진은 응급 수술을 통해 문제가 되는 소장을 잘라냈지만, 이미 괴사한 소장에 구멍(천공)이 뚫려 혈액이 세균 등에 감염되는 패혈증과 복막염으로 환자는 2차 수술까지 받아야 했다. 다행히 환자는 건강을 회복한 것으로 전해졌다.
외과의사회는 의사가 환자의 건강을 훼손하려는 고의가 없이 '치료'를 위해 내린 결정까지 형사처벌 대상이 되는 데 대해 강한 유감을 표명했다. 장폐색은 수술한 환자는 누구나 발생할 수 있어 오히려 이를 치료하는 수술이 더 심한 장폐색을 유발할 우려가 있다. 의학적으로 보존적 치료에도 90% 이상은 장폐색이 개선되는 것으로 보고되는 만큼 오히려 수술하지 않고 가능한 보존적 치료를 하는 게 외과 의사의 '선의'일 수 있다는 것.
외과의사회는 "의사의 의학적 판단에 대해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다면, 의사가 범죄자가 되지 않을 수 있는 증상과 치료 범위까지도 재판부에서 정할 수 있느냐"고 되묻기도 했다. 이어 의사회는 "이제 의사들은 1%의 가능성만을 가지고 환자를 살리기 위해 수술하는 대신 감옥에 가지 않고 의사면허를 지키는 것이 목적이 되어버렸다"며 "외과 의사를 범죄자로 만드는 사이 대한민국 의료계는 파행으로 치닫고 있다"고 개탄했다.
강남세브란스병원 외과 강정현 교수도 "의사도 사람이라 오진과 실수의 가능성은 늘 존재하지만 궁극적으로 누구나 환자를 살리려 최선을 다한다"며 "노력했지만 어쩔 수 없는 결과마저 형사처벌을 받게 되면 생명을 다루는 위험한 필수과 지원율은 앞으로 더 떨어지고, 설령 환자에게 손해라고 여겨져도 법원에서 판단한 '안전한' 치료를 따를 수밖에 없게 될 것"이라고 우려감을 나타냈다.
대한의사협회 역시 사법부의 결정에 반감을 드러냈다. 의협은 "의사의 의학적 판단을 경시하고 악결과에 대한 형벌의 대상으로 삼는 판결이 반복된다면, 의료진의 방어 진료와 필수 의료 기피 현상이 가속해 결국 피해는 국민들에게 돌아갈 것"이라며 사법부를 '저격'했다. 이어 의협은 "의료분쟁으로 입은 국민의 피해를 신속히 보상하고 필수 의료서비스를 안정적으로 제공할 수 있는 의료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국회와 정부가 '의료분쟁특례법' 제정을 시급히 추진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의료분쟁특례법에는 불가항력적인 의료사고 발생 시 의사의 형사처벌을 면제하는 내용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의사의 오진·실수에 대한 처벌이 이뤄지지 않으면 과잉·과소 진료에 대한 환자 보호가 어려울 수 있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익명을 요구한 한 변호사는 "운전자가 오판과 실수로 교통사고를 내는 것도 범죄다"라면서 "의사의 전문적인 판단 영역에 속해 결과를 장담할 수 없을 땐 어쩔 수 없지만, 어느 정도 이득이 명확할 땐 결과에 대한 처벌이 필요하며 이는 법원에서 과실 여부를 판단할 때 충분히 고려하는 사항"이라고 말했다.
박정렬 기자 parkjr@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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