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하면서 자꾸 보게 되는 ‘나는 솔로’…예능 넘어 ‘문화인류학 도감’[이진송의 아니 근데]
한 북토크 자리에서 어떤 참가자가 ‘수줍게’ 물었다. “혹시… <나는 솔로> 보시나요?” 나도 ‘부끄러워하며’ 대답했다. “저 사실… 매 기수 챙겨 봅니다.” 질문을 한 사람이나 대답하는 사람이나 어쩔 줄 몰라 했다. 취향이 곧 ‘나’를 의미하는 시대. 출연자에게 ‘영숙’이니 ‘영철’이니 하는 이름을 주고, 출연자가 방귀 뀌는 장면을 그대로 내보내는 주제에 결혼을 권장한다고 주장하는 프로그램을 보는 것은 어쩐지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아, 어디 내놔도 부끄러운 내 취향. 그러나 지금, <나는 솔로>는 가장 뜨거운 전 국민 뽀로로이다. 2021년 7월 첫 방송을 한 이후 내외부로 논란이 끊이지 않으며 그만큼 화제성도 놓치지 않았던 <나는 솔로>! 연프(연애 프로그램)계의 두리안이라고 불리는 기기묘묘한 맛과 향을 한번 파헤쳐보자.
첫 번째, ‘날것’의 매력. <나는 솔로>의 공식 설명은 “결혼을 간절히 원하는 솔로 남녀들이 모여 사랑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극사실주의 데이팅 프로그램”이다. 여기까지는 특별한 것이 없다. <사랑의 스튜디오>(MBC) 이래 하늘 아래 연애 프로그램은 많다. 비슷한 시기에 <하트시그널4>(채널A)가 방영됐고 이혼한 남녀가 다시 사랑을 찾는 <돌싱글즈4>(MBN)도 방송 중이다. <나는 솔로>가 노리는 차별화는 ‘극사실주의’라는 표현에 있다. 진정성을 추구한다는 뜻일까? 그런데 진정성은 다른 연애 프로그램에서도 매우 중요한 가치이다. 출연자가 프로그램 출연 전후로 연인이 있었다거나, 연애보다는 홍보가 목적으로 보이면 가차 없는 비난이 쏟아진다. <나는 솔로>가 ‘극사실주의’라고 어필하는 진정성은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가공되지 않은, 꾸미지 않은 ‘날것’이다. ‘있는 그대로’ 담아내겠다는 다큐멘터리적 집념은 보통의 연애 프로그램, 아니 방송에서 추구하기 마련인 최소한의 필터링조차 빼버린다. <환승 연애>나 <하트시그널> <돌싱글즈> <솔로지옥> 같은 프로그램에서는 아름다운 출연자들이 호화로운 숙소에서 근사한 데이트를 즐긴다. 로맨스는 일종의 판타지이자 문화적 쇼(show)로 재현된다. <나는 솔로>는 어떠한가? 립밤도 왁스도 바를 줄 모르는 출연자가 늘어진 옷을 입고, 야유회 온 것 같은 공간에서 술에 취해 벌게진 얼굴로 돌아다닌다. 물론 다른 프로그램에 비해서 외모나 행동 양식에 제한이 거의 없다는 특징은 남성 출연자에게만 적용된다. 아무리 자연스러운 날것을 추구한다고 한들 여성에게 훨씬 더 가혹한 외모 제약은 굳건하다.
‘날것’의 파급력은 출연자들이 짧은 기간 동안 격리된 공간에서 짝을 찾느라 감정적으로 취약한 면을 드러낼 때 극대화된다. 사람은 제한된 상황에 놓이면 시야가 좁아지고, 많은 요소를 고려하여 판단하기 어려워진다. ‘카메라가 있는데도 저렇게까지?’ 싶을 정도로 출연자 간 뒷담화, 질투, 말 바꾸기, 말 전하기, 이간질, 회피, 공감성 수치 유발 언행이 난무한다. 하루 이틀 사이에 운명의 상대를 만났다고 사랑의 감정에 푹 빠지거나, 좌절하거나, 눈물짓는다. 사실 아주 이상한 일은 아니다. 누구나 적당히 좋고 어느 정도 추하다. 어떨 때는 내가 지금 되게 별로라는 것을 인지하면서도, 멈출 수 없을 때도 있다. 출연자들은 일반인이다. 카메라에 찍힌 자신이 어떻게 편집되고 송출될지 예측할 수 없고, 방송되는 모습과 현실의 자신을 구별하는 법을 모른다. ‘저런’ 난리 블루스가 연기나 대본이 아니라 ‘진짜’라고? 이 지점에서 <나는 솔로>는 연애 프로라기보다는 문화인류학 도감이라는 농담에 어울리는 다양한 캐릭터 차력 쇼를 선보이게 된다.
일상 속 썸·연애의 관행들 재현
시청자는 자신 투사로 빌런 만들어
민망·곤혹스러움 난무…악플 홍수
우려스러운 갈등을 부추기는 편집
출연자 보호 미흡으로 폐지된 ‘짝’
전철 밟는다면 그 ‘짝’이 될 수도
제작진·시청자 모두 ‘경각심’ 권유
두 번째, 출연자의 캐릭터화. <나는 솔로>는 출연자 보호라는 명목 아래 가명을 사용한다. 출연자들은 ‘영숙’ ‘영수’ 같은 가명을 쓴다. <나는 솔로>의 남규홍 PD는 과거 비슷한 포맷으로 인기를 끌었던 <짝>(SBS)을 제작했는데, <짝>도 ‘남자 1호’ ‘여자 1호’처럼 출연자에게 ‘번호’를 붙였다. 가명은 출연자에게서 개별성을 제거하고 출연자라는 정체성만 남긴다. 또한 번호와 달리 가명에는 프로그램을 거듭하면서 구축된 ‘캐릭터 해석’이 따른다. 가령 영수는 가장 연장자 남성이고, 영철은 한 명에게 직진하는 스타일이며, 광수는 좀 ‘독특한’ 타입이다. 영숙은 가장 커플 매칭 가능성이 큰 만큼 소위 ‘참한’ 스타일이 많고, 영자나 순자는 발랄하고, 옥순은 ‘가장 예쁜’ 출연자에게 하사되는 티아라다. 누가 옥순인가는 언제나 초미의 관심사이며, 16기 광수는 옥순이라는 이름에 “위엄성”이라는 표현까지 쓴다. 이렇게 제작진이 설계하고 배치한 대로 이름을 배정하면, 출연자와 시청자는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영향을 받는다.
비현실적이고 과장된 구애 방식과 게임도 출연자를 현실로부터 유리된 극적 인물로 인식하게 한다. 수영장에 뛰어들기, 공 던지기, 소리 질러서 데이트 신청하기, 이인삼각 달리기, 손을 보고 맞히기, 보물찾기, 난데없이 제작진과 댄스배틀 벌이기, 초상화 그리기, 얼굴에 출연자의 가면을 쓴 제작진과 포옹하기 등 도대체 어떻게 저런 이상한 발상을 하나 싶은 아이템이 매주 등장한다. ‘결혼을 위해서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하네?’ 출연자를 곤경에 빠뜨리고, 보는 사람도 민망한 미션이 허다하다. 당연히 제작진을 욕하는 댓글이 만선이다. 그러나 어찌하리, 욕하면서도 보고 있는데. 그것이 바로 <나는 솔로>가 출연자와 시청자를 길들이는 전략이다. 보통의 연애 프로그램은 소지품 고르기나 불러내서 데이트 신청하기처럼 현실의 썸과 연애에서 ‘있을 법한’ 관행을 그대로 재현한다. 그러나 이렇게 기행을 선택하면 그 안에서 벌어지는 출연자의 감정과 관계까지 모두 쇼의 영역으로 포섭할 수 있다. 어떤 면에서는 극사실주의를 추구한다는 프로그램 정체성과 정면으로 충돌하는 지점이기에 흥미롭다. 이런 과정을 거쳐서 출연자는 개인의 역사와 맥락이 모두 제거된 캐릭터로 재창조된다. 시청자는 윤리적 망설임이나 거리 감각 없이 그들을 소비할 수 있다. 욕하기 좋게 만들어준다는 뜻이다.
세 번째, ‘스낵컬처’로서의 드라마와 시청 공동체. 이것은 앞선 두 가지와 연동된다. 캐릭터를 활용하는 <나는 솔로>는 전통적으로 드라마가 담당하던 재미를 대체한다. 스낵컬처란 주로 가벼운 볼거리를 이용해 짧은 시간에 간편하게 즐기는 문화를 말한다. 6~8회 정도 진행되는 <나는 솔로>는 극적이면서도 드라마보다 짧고, 클립이나 영상, ‘짤’로 봐도 이해하기 쉽다. 진입장벽이 낮으니 금방 따라잡고 끼어들기 좋다. 밈이나 신조어 같은 것을 알 필요도 없으니 세대 간 장벽도 낮은 편이다. ‘저게 왜’ 재미있는지 궁금해할 필요도 없다. 제한된 공간에서 벌어지는 인간의 희로애락, 삼라만상, 요지경, 산전수전 폭로전은 즉각적으로 다양한 연령대가 참여할 수 있는 경험을 선사한다. 시청 공동체가 드라마를 볼 때 그들을 가장 단단하게 묶어주는 것이 바로 악역을 같이 욕하는 맛이다. 캐릭터화된 출연자가 노출하는 부정적인 면모는 극적인 재미를 주고, 동시에 일반인이기에 ‘내 주변의 ○○’를 떠올리게 한다. 온라인 커뮤니티나 <나는 솔로> 공식 영상의 댓글에는 ‘딱 보니 누구는 이러이러하다’ ‘이런 타입은 어떻다’ ‘저런 사람은 ~한 문제가 있다’ 같은 내용이 많다. 당연하게도 진짜 그 사람에 대한 통찰이라기보다는 본인의 경험을 투사한 것이다. 이런 감정을 혼자만의 감상으로 해소하지 못하고 출연자를 향한 공격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아 매우 우려스럽다.
16기 상철의 “그래도 윗사람인데…”라는 대사가 아니더라도, <나는 솔로>는 콘텐츠와 그를 둘러싼 반응까지 포함하여 지금 이 시대를 가장 선명하게 비추는 스크린이자 한국적 망탈리테(집단적 심성)다. 이 세상 어느 프로에서 웨딩드레스를 입은 마네킹과 데이트하는 남자를, 자기소개하다 장기자랑하는 성인 남녀를 볼 수 있단 말인가. 그런데 이렇게 출연자 개인의 캐릭터와 스타성(?)에 기대다 보니, 어느샌가 <나는 솔로>는 ‘빌런 만들기’에 급급하게 됐다. 갈등을 초래할 것이 뻔한 출연자 선정, 출연자 보호가 없는 편집, 출연자들을 웃음거리로 만들거나 의미 없는 고생을 하게 하는 게임 등은 꾸준히 지적받아온 문제점이다. 16기의 경우 매콤한 예고로 모두의 기대를 모았던 112회는 오히려 고통스러웠다. 출연자 간 갈등에 지나치게 초점을 맞추느라 다른 커플들의 데이트는 통편집되고, 트라우마가 자극된 출연자의 예민한 상태가 집요하게 송출되었기 때문이다.
욕하면서 보는 프로그램이라고 자조하더라도 결국 출연자는 악역이 아니라 현실을 살아가는 독립적 인격체이고, <나는 솔로>는 출연자의 매력을 어필해줘야 하는 연애 프로그램이다. 출연자 보호에 미흡했다는 평가를 받는 <짝>이 어떻게 종영했는지 기억하는 시청자는 의외로 많다. 예능을 예능으로 즐기기 위해서, <나는 솔로> 제작진과 시청자 모두에게 ‘경각심’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진송 계간 ‘홀로’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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