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가 만들어지고 비로소 국토가 생겼다
영국 런던의 지하철 튜브를 타면 한국 여행객은 대부분 쉽게 지친다. 좁고 소음이 많은 튜브에 앉아 있다 보면 스마트폰이 잘 터지고 에어컨도 나오는 한국 지하철이 그리워진다. 하지만 이 튜브가 대동여지도가 만들어지고 2년 뒤인 1863년에 개통됐단 사실을 듣고 나면 그리 쉽게 불평만 할 수 없다.
이처럼 어떤 장소에서 이미지를 떠올리고 어떤 느낌이 드는 데는 개인적 체험은 물론이고 개인이 가진 정보와 그동안의 경험 등 다양한 요소가 영향을 준다.
영국사를 공부한 설혜심 연세대 사학과 교수가 쓴 '지도 만드는 사람'은 2007년 출간 당시 특정 공간에 대한 개념이나 이미지에 의문을 제기했다. 누가, 언제, 무엇을 근거로 국토와 역사의 정체성을 만들었는가 하는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데 성공했다.
이번에 15년 만에 새로 출간된 이 책은 지도가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고 설명한다. 지도가 나타내는 공간은 실제 공간과 그것을 담아내는 도면, 나아가 지도가 보는 사람과 제작하는 사람의 역학 관계가 만들어내는 산물임을 강조한다.
설 교수는 "예를 들어 함흥냉면이라는 간판을 수없이 보아왔고 실제로 냉면을 좋아하면 함흥이라는 장소가 냉면이라는 사물과 연결되는 셈"이라며 "지도는 세계 그 자체가 아니라 인간에게 포착된 세계의 개념이며 이미지일 뿐"이라고 말한다.
1533년 영국 왕실 도서 담당관이었던 존 릴런드는 헨리 8세의 명을 받아 전국을 돌며 상세한 기록을 남긴다. 자신이 발 딛고 사는 공간을 기록으로 남기며 국토에 대한 인식이 시작된다. 1579년 크리스토퍼 색스턴이 만든 영국 전도는 영국 국민 정체성에 기여한 가장 중요한 지도로 꼽힌다. 이처럼 근대 국가에선 '공통의 역사적 공간'에 대한 이해와 지도가 만들어지면서 '국토'라는 개념이 자리 잡기 시작한다.
저자는 지도에 그려진 국경선으로 영토가 정해지기도 하고 거꾸로 지도에 의해 현실이 지도를 따라가는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고 설명한다. 국가와 영토라는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지도 덕분에 지리학이 근대 국가의 중요한 학문으로 떠오르게 된 것이다.
특히 지도 제작 사업은 국가나 국민 정체성 형성에 기여하고 지리 교육은 이데올로기 학습 성격을 지니게 됨을 지적한다.
지도에 그려진 그림이나 다양한 이미지로 나타난 지도의 사례를 파헤치며 지도가 인종, 계층, 성별 등을 드러내고 자국 이미지를 포장해 경계가 분명한 국가라는 공간을 인식시켰다고 설명한다. 설 교수는 "지도는 상상력을 통해 그려지는 일종의 언어이자 보는 사람들 역시 나름의 상상력을 동원해 해석하게 되는 소통의 매개체"라고 말했다.
[이동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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