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크리트·아스팔트에도…그들은, 있었다
원숭이 패싸움·쇼핑몰에 수달
원폭의 폐허에도 싹 솟아나듯
동식물은 땅에 공백 허락 안해
선택은 하나 '자연과 공존'뿐
칠레 산티아고의 도로에 몇 해 전 느닷없이 퓨마가 등장했다. 퓨마 대여섯 마리가 4차로 도로를 점령하고 사람들을 쳐다보는 모습은 이질적이었다. 이곳은 본래 퓨마 출몰 지역이 아니었다. 인도 북부 휴양도시 데라둔에선 난데없이 코끼리가 출몰해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스페인 바르셀로나 거리에서는 야생 돼지가 질주했고,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선 야생 칠면조가 한 학교를 점령해 해외 토픽감이 됐다.
동물들의 깜짝 등장은 이뿐만이 아니다. 태국 롭부리 지역에선 원숭이들이 도로까지 나와 먹이를 두고 '패싸움'을 벌였다. 태국 도로는 원숭이 때문에 극심한 교통체증에 시달렸다. 싱가포르 쇼핑몰엔 수달이 돌아다녔다. 귀여운 수달 가족이 양식 중인 물고기를 먹어 치워 사회문제가 되기도 했다.
동물들이 갑자기 사람들의 무대로 나온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바로 코로나19 때문이었다. 사람들이 자택에 격리돼 나오지 못하니 교통량과 소음이 줄어들었고 이 때문에 근근이 숨어 살던 동물들이 인도와 차도로 천천히 존재를 드러낸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도시는 이미 동식물로 가득한 정글"이라고 선언하는 책이 출간됐다. 2021년 베스트셀러 '메트로폴리스'를 냈던 영국 역사학자 벤 윌슨의 신작 '어반 정글'이 출간됐다. 직역하면 '도시의 정글'이란 뜻이다. '메트로폴리스'가 기원전 4000년 최초의 도시가 탄생한 이후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융성했던 세계 도시 26곳의 탐사기라면, '어반 정글'은 현대 도시의 콘크리트와 아스팔트 뒤에 숨겨진 생명의 이야기, 그리고 인간이 나아갈 방향을 담아낸 책이다.
인간은 대개 자신과 자연이 분리돼 살아간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책은 이를 뒤집는다. '역사적으로 자연의 힘이 대항하지 못할 인간 문명이란 없었다.'
히로시마 상공에서 원자폭탄이 떨어졌을 때 사람들은 향후 최소 75년간은 폐허의 땅에서 식물이 발견될 일이 없으리라고 예측했다. 하지만 몇 해 지나지 않아 식물학자들은 죽음의 땅을 덮어버린 '녹색 담요'를 바라봤다. 나팔꽃, 쇠비름, 우엉, 삼백초, 참깨, 결명자, 협죽도, 녹나무로 구성된 자연발 초록의 담요였다. 식물은 이처럼 인간의 땅에 '공백'을 허락하지 않는다. 식물은 인간의 빈틈을 활용해 꽃과 싹을 틔워 자기를 지켜나가는 막강한 세력이다.
이탈리아 고대 경기장 콜로세움도 로마의 패망 뒤 수백 년간 다양한 생물의 안식처로 기능했다. 인간이 가장 융성했던 시대의 증거인 콜로세움은 관광 명소로 복원되기 전까지 자연으로 뒤덮인 상태였다. 19세기 연구에 따르면 콜로세움은 식물 420종의 거주지였다. 캄보디아 앙코르와트 유적도 잎과 줄기를 걷어내기 전까지는 정글의 외피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사람이 다시 그 장소를 발견했을 때 수백~수천 년을 거주하던 생물의 안식처는 빠르게 사라져 갔다.
훗날 뉴욕이라고 불리게 될 땅에 네덜란드인이 도착한 건 1609년이었다. 새로운 정착지 곳곳은 습지대였다. 인간은 도시의 주인을 자처하며 300년간 습지를 제거하려 노력했다. 그러나 21세기 들어 상황이 바뀌었는데, 습지가 인간에게 그저 쓸모없는 도시의 얼룩이 아니란 걸 인간이 인지했기 때문이었다. 습지는 평소 공원이 되기도 하지만 폭풍과 해일에 대비하는 완충지 역할도 해낸다.
조용한 저항 끝에 자연이 생태계를 이루는 사이, 공업화와 도시화는 최고 가속도로 진행됐다. 그러나 자연은 조용히 주장한다. 자연은 인간에게 절대로 굴복하지 않는다는 것을. 초고층 빌딩이 지어져도 새들은 사라지지 않는다. 뉴욕의 송골매는 고층 건물 사이의 바람 통로를 이용해 비둘기 떼를 바다 쪽으로 밀어내고, 허공에서 최고 속도로 질주해 비둘기의 뒷덜미를 낚아챈다.
저자는 말한다. 인간은 여전히 자연을 인간의 생활공간과 격리된 무엇으로 생각하지만 이미 인간은 자연과 모자이크 같은 무대에서 함께 살아가는 존재라고 말이다. 혼란스러운 도시 풍경 속에서도 동물은 교잡하고 적응하며 유기체로서의 자신의 생명을 지켜나간다. 도시와 자연은 분리되지 않으며 오직 '도회적인 자연'만이 남을 뿐이다. 이제 인간의 선택은 자연과 융합해 살아가는 방법을 찾는 일이다.
도시에는 이미 생태학적 보물 창고가 있다. 그러나 조각조각 흩어진 섬 같은 형태로 존재한다. 저자는 공공 줄다리, 터널 난간 통로, 교외 정원 울타리 구멍 등의 값싼 '생태계 보존 장치'에 머무르지 말고 광범위한 지역을 연결하는 재설계가 향후 지속될 도시화 과제의 핵심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공생을 향한 책의 여정은 버려진 용지와 텅 빈 옥상, 굵은 철사로 엮인 울타리 뒤쪽, 불모지의 콘크리트 틈새, 철로 옆의 가느다란 땅, 거대한 두엄과 쓰레기 더미 등 '외면 당한 땅'을 향한다. 그곳에는 동물들이 빼꼼히 고개를 들고 살아가고 있다. 도시에서 자연을 몰아내는 대신 뒤엉킨 자연과의 공존 방안을 더 첨예하게 고민해야 한다고 저자는 촉구한다.
[김유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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