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분 1% 변화에 주가 출렁 …'소음' 속 기회 찾아라

문일호 기자(ttr15@mk.co.kr) 2023. 9. 8.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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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배구조 개편 움직임으로 주목 '범현대家 주식'

주식 매수 경쟁 속 지분 1%는 '타노스의 건틀렛'에 비유된다. 할리우드 영화 '어벤져스'에서 절대악 '타노스'는 막강한 힘의 원천 '건틀렛'을 끼고 손가락 하나를 튕겨 인류의 절반을 사라지게 만들었다. 지분 경쟁 속 주식 한 주의 가치는 회사 주인을 결정하는 주주총회 승패를 가르기 때문에 그만큼 소중하다는 것이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이런 상황을 이용해 짭짤한 수익을 올릴 수 있다. 지분 경쟁이 본격화되면 기업가치보다 주가가 더 많이 오르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다만 지배구조를 둘러싼 지분 경쟁은 워낙 개미들에게는 정보가 차단된 상태에서 진행되기 때문에 한순간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해 쪽박을 찰 수도 있다. 기업이 탄탄한 실적을 자랑하더라도 지분 경쟁에 휩싸이는 순간 '고위험 고수익' 주식이 된다는 얘기다.

올 들어 범현대가(家)가 지배구조 개편 과정을 겪으며 주식시장에서 주목받고 있다. 지배구조 개편 불확실성에 억눌려 있던 주가가 회복되면서 오랜만에 미소 짓는 주주들이 늘고 있다. 현정은 회장의 현대엘리베이터, 정지선 회장의 현대백화점, 정의선 회장의 현대글로비스가 최근 관심이 쏠리는 지배구조 개편 관련주다. 기업 오너들은 외부의 공격이나 지주사 전환 숙제 해결을 위해 이들 회사에 대한 지배력 강화나 유지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선 지분을 늘리거나 실적 상승을 통한 주주환원이 필요한 시점이다. 오너 입장에선 지배구조 '소음'이지만 반대로 주주들에겐 '호재'로 작용하고 있는 것.

그동안 오너들은 낮은 지분율로 그룹 전체를 지배하는 것이 가능했다. 그러나 오너들의 전횡을 막으려는 요구가 빗발치자 지분 규제가 생겨났다. 금융당국이 지주사 요건으로 최소 지분 30%(공정거래법상 상장 자회사 기준)를 내걸자 이것이 자회사 지배력 기준이 되고 있다.

'몸값 급등' 현대엘리베이터 고평가 영역 진입

지난 5일 금융감독원과 블룸버그에 따르면 현대엘리베이터 최대주주는 현대홀딩스컴퍼니(19.26%)다. 이 회사는 현정은 회장 일가가 100% 보유한 가족회사다. 여기에 현 회장(5.74%), 자녀들과 특수관계인(2.77%) 등 27.77%가 오너의 우호 지분이다. 최소 지배력으로 평가받는 30%도 안 된다. 오너 입장에서 가장 위협적인 곳은 2대 주주인 스위스 승강기 업체 쉰들러홀딩스로 13.22%를 갖고 있다.

이 회사는 과거 현 회장의 든든한 우군이었으나 2003년 이후 소송전을 벌이면서 사이가 나빠진 것으로 알려졌다. 쉰들러 측은 현 회장이 과거 현대상선(HMM)을 지키려고 무리하게 파생상품 계약을 맺었다가 회사에 막대한 손실을 끼쳤다고 주장하며 소송전을 벌였다. 올해 들어 대법원이 현 회장에게 현대엘리베이터에 1700억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는데, 이것이 행동주의 펀드의 공격 빌미가 되고 있다. 최근 KCGI자산운용은 지분 2%를 확보하고 '반(反)오너 진영'에 가세했다. 이 펀드는 과거 대한항공 경영권 분쟁에 개입해 큰 시세 차익을 거뒀던 KCGI가 메리츠자산운용을 인수해 새로 만든 행동주의 펀드다. KCGI는 현 회장을 향해 파생상품 등 투자 실패와 실적 하락 등을 이유로 '회사에서 물러나 달라'는 편지(주주서한)까지 보낸 것.

작년 실적 악화도 오너가 수세에 몰린 이유다. 건설경기 악화와 철강 등 원자재 비용 증가로 작년 2분기에 적자 116억원을 찍었다. 쉰들러 지분은 작년 말 기준 15.5%였는데, 올해 들어 2%포인트가량 줄였다. 외국계 지분율은 줄었는데, 국내 KCGI가 들어왔으니 오너 입장에선 더 긴장할 만한 일이다.

그동안 국내에서 적대적 인수·합병(M&A) 매수자가 외국계인 경우 '국내 산업 보호'라는 방어기제가 작용해 뜻을 이루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쉰들러 대신 KCGI가 나서면서 M&A가 아닌 주주행동주의라는 명분을 얻게 된 것. 오너 입장에서 위협적인 지분율은 1% 이상 기준으로 쉰들러(13.22%)와 KCGI(2%), 외국계 펀드인 오르비스(6.9%), 뱅가드(1.91%), 블랙록(1.11%) 등 25.14%다.

두 진영의 차이가 2.63%포인트다. 국민연금(5.73%)은 중립 지분으로 분류돼 있다. 다만 5%가 넘는 지분을 보유한 국민연금이 주주행동주의에 찬성할 가능성도 높다. 주주총회에서 국민연금 지분이 '캐스팅보트'가 되는 것. 심하게 말하면 하루아침에 주인이 바뀔 수도 있는 셈이다. 이 같은 분위기 속에서 이 회사 주가는 이름 그대로 올해 들어 수직 상승세다. 지난 5일까지 65%나 올랐다. 지분 경쟁 이슈가 주가를 과도하게 끌어올렸다. 이 결과 주가순자산비율(PBR)이 1.5배에 달해 단기 고점 신호가 나와 투자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

PBR 0.34배 현대백화점 여전한 저평가

현대백화점 주가는 올 들어 이날까지 27% 올랐다. 같은 기간 코스피가 5% 오른 것과 비교하면 5배 이상 높은 수익률이다. 지배구조 개편 불확실성이 사라지며 회사 본연의 가치가 부각되고 있어서다. 현대백화점그룹은 형제 경영 체제다. 정주영 회장의 아들인 정몽근 현대백화점그룹 명예회장의 두 아들 정지선 회장과 정교선 부회장이 이끈다. 두 형제는 각각 현대백화점을 중심으로 하는 축(유통)과 현대그린푸드 축(식품 등 비유통)을 사실상 나눠서 지배 중이다. 핵심 지배구조는 '오너 형제→현대지에프홀딩스(지주사)→현대백화점, 현대그린푸드 등 자회사'다. 이 구조를 위해 지주사는 신주를 찍어 그 돈으로 사업 회사(현대백화점, 현대그린푸드) 주식을 공개 매수하는 방식을 택했다.

그 결과 현대지에프홀딩스는 현대백화점 지분 30%와 현대그린푸드 지분 38.1%를 각각 확보했다. 또 이번 개편 과정에서 정지선 회장과 정교선 부회장은 각각 38.1%와 28%의 지주사 지분을 가져갔다.

원래는 형제가 각각의 지주사를 세우려 했다. 당초 안은 현대백화점도 인적분할해 현대백화점홀딩스(지주사)와 현대백화점으로 나누려 했다. 분할 과정에서 지주사 밑에 한무쇼핑(비상장)을 두려 했는데 이것이 패착이었다. 한무쇼핑은 현대백화점 무역센터점, 목동점, 킨텍스점은 물론 김포 현대프리미엄아울렛 등 돈이 되는 점포는 다 갖고 있다. 알짜회사인 한무쇼핑을 지주사 아래 둬서 배당 확대 등을 통해 오너만을 위한 회사가 될 것이란 우려감이 커졌던 것. 소액주주들의 반대로 이 같은 분할안은 지난 2월 주총에서 부결됐고 현대백화점은 그대로 남았다. 일반 주주들에겐 호재였다.

계획대로라면 현대백화점은 쪼개지고 오너들이 사업부문 지분을 매도하게 된다. '오버행'(대량 매도) 악재가 사라진 것이다. 이제 시장은 현대백화점의 실적에 주목하게 됐다. 현대백화점 영업이익은 지난 2분기 556억원을 기록했는데 하반기로 갈수록 힘을 낼 전망이다.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올 3분기와 4분기 추정 이익은 각각 971억원, 1177억원이다. 작년 실적 기준 PBR은 0.34배에 불과해 저평가 기대감도 있다.

'영업이익 저력 과시' 현대글로비스

현대글로비스 PBR도 0.96배로 저평가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글로비스 지분 20%를 들고 있는데, 보유한 국내 상장사 지분율 중 가장 높다. 현대차그룹은 여전히 순환출자 구조다. '현대모비스→현대차→기아→현대모비스'로 이어져 금융당국은 지주사 체제로 전환하라고 요구한다. 2018년에 시도가 있었다. 현대모비스가 AS·모듈 사업을 분할해 현대글로비스로 넘기고 이후 모비스와 글로비스가 주식을 교환하는 것이 그 안이다. 그러나 분할·합병 비율이 모비스에 불리하다는 얘기가 쏟아졌다. 지주사 전환 비용을 따졌을 때 오너 그룹의 지배구조 개편은 자신의 지분이 높은 회사 중심으로 이뤄진다. 교환가치상 글로비스의 가치를 띄워 저렴한 모비스를 사서 지주사로 전환하는 것이 오너 입장에서 유리한 시나리오다.

외국계와 일반 주주의 반대로 이 시나리오는 무산됐지만 향후 개편안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란 예상이다. 실제 최근 5년 주가(9월 5일 기준)를 보면 글로비스는 31% 올랐는데 모비스는 0.4% 하락했다. 인플레이션 지속과 해운 경기 악화 속에서도 글로비스의 영업이익은 최근 3개 분기 연속 4000억원대를 유지했다.

오너의 지분율이 높은 글로비스는 다른 회사 눈치를 볼 필요가 없다. 글로비스는 현대차와 기아가 국내에서 만든 차량을 해외로 실어나른다. 이런 자동차운반선(PCTC)의 해상운임을 올려 수익성 개선에 나설 계획이다. 과감한 선박 투자도 지속하고 있어 차 판매만 호조를 보이면 실적 상승이 예고된다.

100%가 넘던 부채비율은 지난 6월 말 93.9%로 낮아졌다. 현대차그룹 일감을 꾸준히 챙기면서 재무구조도 개선되고 있는 셈이다. 2020년 3500원이었던 주당 배당금은 2022년 5700원으로 오른 데다 올해는 6041원까지 상승할 전망이다. 배당수익률은 3.23%이며 작년 기준 배당성향(순이익 대비 총배당금)은 18%로 개선될 여지가 크다.

[문일호 엠플러스센터 증권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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