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법개정안 ‘복합위기 대응’에 적합할까
지난 8월 31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윤석열 정부 세법개정안의 문제와 대안을 다룬 토론회가 열렸다. 첫 번째 주제발표자로 채은동 민주연구원 연구위원이 나섰다. 그는 축구 국가대표팀 주장 손흥민의 소속팀인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토트넘 구단의 운영과 윤석열 정부의 조세재정 정책 기조를 비교해 눈길을 끌었다.
토트넘 구단의 목표는 돈을 최대한 적게 쓰면서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UCL)에 진출할 수 있는 리그 4강에 오르는 것이다. 낮은 주급으로 선수단을 운영하면서 저가로 새로운 선수를 사들여 고가에 파는 방식으로 구단을 운영했다. 결과는 좋지 않았다. 2016~2017년 시즌 20개 팀 중 2위를 찍었던 토트넘은 지속적으로 하락해 지난 시즌엔 8위까지 순위가 내려갔다.
윤석열 정부 목표는 건전재정을 기반으로 한 경제성장이다. 목표 달성 수단은 출범 직후부터 유지하고 있는 긴축재정과 조세지출 확대를 포함한 감세다. 결과는 역대급 세수결손과 저성장이다. 기획재정부 등에 따르면 올해 1~7월 국세 수입은 217조6000억원으로 1년 전보다 43조4000억원 줄었다. 연말까지 지난해와 비슷한 세수 흐름을 보인다면 올해 세수는 세입 예산(400조5000억원) 대비 48조원 부족하다. 경기 둔화와 기업실적 악화 등으로 세수결손 규모가 60조원을 넘어설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국내외 기관이 전망하는 올해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전망치는 정부의 ‘상저하고’ 전망과 달리 비관적이다. 한국은행은 지난 8월 24일 발표한 수정 경제전망에서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로 1.4%를 제시했다. 지난해 한은은 올해 성장률 전망치로 1.7%를 제시한 데 이어 올해 2월엔 1.6%, 5월엔 1.4%로 잇따라 낮춘 바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지난 9월 6일 ‘2023년 연례협의 결과보고서’에서 한국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1.4%로 제시했다. IMF는 지난해 7월·10월과 올해 1월·4월·7월까지 5차례 연속으로 우리나라의 성장률 전망치를 내렸다.
채은동 연구위원은 “토트넘 구단 사례에서 보듯 투자 없이 건전재정만 내세우다 보면 선수영입과 경쟁력에서 뒤처질 수 있다. 이는 성적 하락과 영업이익 손실로 이어진다. 윤석열 정부의 조세재정 정책 기조도 마찬가지다. 건전재정과 감세를 동시에 강조하는 것은 재정건전성과 경제성장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잃어버리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토론회에서 강병구 인하대 교수(경제학과)는 ‘세법개정안 평가 및 바람직한 세제개편 방안’이란 주제로 발표했다. 그는 “윤석열 정부의 세법개정안이 경제활력 제고, 민생경제 회복 등에 초점을 뒀다고 하지만 분배와 성장의 선순환을 위한 내용은 없었다”고 했다. 한국사회가 직면한 인구, 기술, 기후, 세계 경제질서 등 대전환기의 구조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조세재정이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함에도 여전히 감세 기조를 유지하면서 복합위기에 소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또 서민·중산층과 중소·중견기업에 대한 지원을 소폭 확대했다지만, 지난해 ‘부자 감세’ 논란을 뒤집지는 못하고 있다면서 세제의 재분배기능을 높이기 위한 세제개편이 미흡하다고 평가했다. 특히 지난해 감세법안과 성장률 전망치의 하향조정으로 큰 폭의 세수입 감소가 예상됨에도 재정의 지속가능성을 위한 세수확충 방안이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강병구 교수는 “IMF 등 국내외 기관들의 한국 성장률 전망치가 낮아지는 가장 큰 이유는 재정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민간이 어려울 땐 정부가 적극적으로 재정을 활용해 마중물 역할을 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고 있다. 결국 정부 재정은 양호한 상태를 유지하지만 가계부채는 큰 폭으로 증가하는 상황이 이어지고, 그런 와중에 고물가와 고금리로 인한 서민과 중산층의 원리금 상환이나 고물가의 비용 부담은 증가하고 있다. 종합해보면 윤석열 정부의 조세재정 정책 기조와 민간주도의 성장을 지원하는 기조는 결국은 국가 성장률을 둔화시키면서 불평등을 확대하는 결과를 낳고 있다”고 했다.
실제 한은이 지난 9월 5일 발표한 ‘2분기 국민소득’(잠정치)을 보면 올 2분기 실질 GDP는 전 분기 대비 0.6% 성장했다. 수입이 수출보다 더 많이 줄어 발생한 이른바 ‘불황형 흑자’ 덕에 1분기(0.3%)에 이어 성장세를 유지한 셈이다. 문제는 전체 정부 지출(소비+투자)의 성장 기여도가 1분기 마이너스(-)0.3%포인트에 이어 2분기 -0.5%포인트로 더 떨어졌다는 점이다. 이를 두고 기재부 2차관을 지낸 안도걸 경제연구소 이사장은 “정부의 재정지출이 경제성장을 제약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정부가 세수 부족에 맞춰 재정지출을 줄이고 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상대적 박탈감·부의 대물림 조장
이날 토론회는 포용재정포럼과 더불어민주당 싱크탱크인 민주연구원,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조세소위원회 등이 공동 주최했다. 토론회 내내 윤석열 정부 조세재정 정책 기조에 대한 비판이 이어졌다. 역대 최대 규모 ‘세수 펑크’와 경기침체 우려에도 불구하고 감세와 긴축재정 기조를 버리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참석자들은 세법개정안이 위화감과 상대적 박탈감을 유발하고, 부의 대물림을 조장하는 공정하지 못한 세제라고 날을 세웠다.
정부가 지난 7월 27일 내놓은 ‘2023년 세법개정안’을 보면, 지난해와 달리 올해는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폐지, 부동산 규제지역 개편, 법인세 최고세율 인하 등과 같은 굵직한 세제개편은 담기지 않았다. 대신 결혼자금 증여세 공제 한도 확대(5000만원→1억5000만원)와 자녀장려금(CTC) 연소득 기준 상향 등을 포함해 해외 진출기업의 국내 복귀(리쇼어링) 세제지원과 가업승계 증여세의 추가적인 세 부담 완화 등 재계에서 요구한 내용을 담았다. 올해 일몰을 맞는 비과세·감면 71개 중 58개의 적용 기한도 연장했다.
한 토론회 참석자는 “경제 전반이 위기 상황에 직면했음에도 이에 적합한 세제개편 내용이 정부안에 없다. 사실상 무대책이나 마찬가지다. 이번 세법개정안에서 결혼자금 증여세 공제한도가 주목받았는데, 이마저도 (기획재정부가) 제대로 세수 추계도 하지 않고 (국회에) 제출했다”고 말했다.
민주당을 향한 날카로운 비판도 이어졌다. 이날 토론회에 민주당 의원들은 참여하지 않았다. 토론회 패널로 참석한 국회 기재위 소속 장혜영 의원(정의당)은 “지난해 세법개정안의 경우 심사를 앞두고 원내 1야당인 민주당의 이재명 대표와 박홍근 원내대표가 ‘윤석열 정부의 부자 감세를 저지하겠다’고 강조했다”면서 “하지만 귀결은 법인세·소득세·종부세·조특법 등에 걸친 국회예산정책처 추산 5년간 64조원 감세 전격 합의였다. 원래 정부안의 71조원에서 6조원, 단 10%의 양보를 받은 참담한 실패였다”고 했다.
세수결손 책임 피하려는 꼼수
정부는 역대급 세수결손을 메우기 위해 기금을 활용할 방침이다. 외국환평형기금(외평기금)과 공공자금관리기금(공자기금)이다. 외평기금의 원화 여유재원을 여러 기금과 일반회계를 연결하면서 기금의 저수지 역할을 하는 공자기금으로 옮긴 후 일반회계로 전환해 세수 부족분을 메우겠다는 구상이다.
올해 예상되는 세수 부족분을 60조원 정도로 보면, 내국세의 40%가량을 차지하는 지방교부세와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을 제외했을 때 중앙정부가 메워야 하는 부족분은 전체의 60%에 해당하는 36조원가량으로 추정된다. 여기에 필요한 재원은 예산을 쓰지 않는 불용예산 10조원대, 세계 잉여금 3조~5조원대, 외평기금 최대 20조원 등을 활용하겠다는 것이다.
외평기금은 급격한 환율 변동을 막는 데 쓰인다. 이런 기금을 세수 부족분을 메우는 데 쓰겠다는 것은 여러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민주당 경제 대변인인 홍성국 의원이 9월 6일 한은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해 1분기와 2분기 미국 달러화 대비 원화의 전일 대비 변동률은 각각 0.54%, 0.43%였다. 1분기와 2분기 모두 주요 7개국(G7)과 아시아 9개 신흥국을 통틀어 일본 다음으로 한국의 환율 변동성이 높았다. 환율 리스크에 취약한 상황에서 외평기금을 활용했을 경우 외환시장의 대외신인도에 부담을 줄 것이란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채은동 연구위원은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저해하는 조치이며, 세수결손 책임을 피하려는 꼼수에 불과하다. 외평기금 활용은 당장은 재정수지에 영향을 주진 않지만, 어찌됐든 한은이 다시 (기금 활용 규모로 예상되는) 20조원을 마련해야 하는 돈이다. 결국엔 국가부채로 잡힌다. 이미 정부가 한은에서 끌어다 쓴 차입금이 100조원을 넘긴 상황에서 외평기금까지 끌어다 쓰겠다는 결정에 한은이 가만히 있는 것도 납득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관련해 기재부가 올해 들어 8월까지 한은에서 빌린 일시대출액(누적 기준)은 113조6000억원이다.
세수 부족으로 교부세와 교부금이 쪼그라들면 지방의 살림살이가 나빠지고 사업 추진에도 차질이 빚어지게 된다. 나라살림연구소가 9월 4일 공개한 ‘내년도 예산안 분석 보고서’를 보면 내년 교부세와 교육교부금은 총 135조7000억원으로, 올해 예산 대비 15조4000억원 감소한다. 교부세는 8조5000억원(-11.3%), 교육교부금은 6조9000억원(-9.1%) 각각 줄어든다. 재정이 열악한 비수도권 지자체를 중심으로 주요 사업이나 공공서비스 예산이 크게 줄어들 수밖에 없는 여건이다. 손종필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상대적으로 재정 규모가 열악한 군 단위 지자체의 교부세 감소율이 클 것으로 분석된다. 중앙정부의 세수 재추계 이후 교부 방식이 정해지겠지만, 가급적 지자체에 충격이 덜 가는 쪽으로 부족분을 반영한 교부가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세수 기반 확충하고 재정 확대해야”
전문가들은 감세를 통해 경기를 부양하려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말한다. 특히 역대급 세수결손 상황에서 재정지출을 줄이면서 조세지출을 늘리는 건 부작용만 낳으리라는 지적이 나온다. 김유찬 포용재정포럼 회장(전 한국조세재정연구원장)은 “세제개편을 통해 투자를 늘리거나 소비를 진작시키는 방법은 기대만큼 효과를 보기 어렵다. 지금은 조세지출을 확대할 수 있는 여건도 아니다. 경기 부양 측면에선 정부가 세금을 걷어서 재정지출을 늘리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고 했다.
복합위기에서 세제개편은 재원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것에 맞춰져야 하고, 이를 위해선 누진적 보편증세로 세수 기반을 확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강병구 교수는 “정부는 상대적으로 부채가 적은 반면 재정엔 여유가 있는 편이다. 한국의 조세부담률(2022년 21.2%)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25.0%)보다 낮다. 낙수효과가 작동하지 않는 현실에서 복합위기, 양극화,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선 재정이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 자산가나 대기업에 부유세와 횡재세 등을 도입해 조세 부담을 더 지우는 방식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9월 말쯤엔 ‘민주당표’ 세법개정안도 공개될 예정이다. 일각에선 이번 국회 심의 과정에서 민주당이 제 역할을 해야 한다는 주문이 나온다. 김은정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은 “지금까지 국회를 통과한 수많은 감세법안은 모두 민주당이 동조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기재부가 밀어붙이는 재정준칙 법제화와 관련해서도 민주당 내에 동조하는 시각이 있다. 경제주체들이 모두 힘든 위기 상황에서 재정의 소극적이고 경직된 대응은 더 큰 위기를 불러올 수 있는 만큼 이런 정부 기조는 바뀌어야 한다. (최근 출범한) 민주당 조세재정개혁특위가 부자 감세를 되돌리고 재정준칙 법제화를 막는 데 적극 나서야 한다”고 했다.
안광호 기자 ahn7874@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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