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사, '윤활유' 주목하는 이유
전기차용 윤활유로 미래 수익성 확보
정유 업계가 올해 상반기 정제마진 감소, 국제유가 상승으로 정유 사업에 큰 타격을 입었다. 하지만 윤활유 사업이 '실적 버팀목'이 됐다. 정유 사업에 비해 윤활유 사업은 안정성이 높은 데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전체 윤활유 공급량이 줄면서 마진이 증가한 영향이다.
최근 내연기관차 수요가 감소하면서 윤활유 수요가 줄어들 것이란 예상이 나온다. 하지만 정유사들은 전기차에도 윤활유가 필요한 만큼 전기차용 윤활유를 통해 시장 점유율을 확보해 수익성을 높이겠다는 구상이다.
상반기 실적 버팀목 '윤활유'
업계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주요 정유 업체(SK이노베이션·에쓰오일·GS칼텍스·HD현대오일뱅크)의 윤활유 사업이 정유 사업 부진을 만회한 것으로 나타났다.
윤활유는 주로 기계의 마찰을 줄여주고 부식을 방지하는 등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윤활유 사업은 그동안 정유 사업에 비해 매출 비중이 낮은 탓에 주목받지 못했지만, 최근 정유 부문 부진이 계속되자 관심이 커지는 추세다.
윤활유 사업은 정유 사업에 비해 사업 안정성이 높다는 장점이 있다. 정유 사업은 국제유가, 정제마진 등 대외적 요인에 따른 변동성이 큰 데 비해 윤활유는 자동차부터 선박, 엔진, 산업기계 등 다양한 산업에 활용되기 때문이다.
실제 SK이노베이션의 정유 사업 부문은 상반기 1364억원의 영업손실을 내며 전년 대비 적자전환했지만, 윤활유 사업은 5191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에쓰오일 역시 정유 사업은 상반기 14억원의 적자를 거둔 데 반해 윤활유 사업은 영업이익 4422억원을 거뒀다.
GS칼텍스는 윤활유 부문에서 2762억원의 영업이익을 거뒀다. HD현대오일뱅크는 정유와 윤활기유 사업이 비슷한 영업이익을 기록했지만, 상반기 정유 사업 영업이익이 94.6% 감소한 데 비해 윤활기유 사업은 102.2% 증가하며 크게 성장했다.
업체별로 수익성에 차이가 나는 이유는 취급하는 윤활유 품질이 달라서다. 윤활유는 미국석유협회(API)가 품질에 따라 나눈 기준에 따라 그룹1~5의 등급을 두고 있다. 그룹1, 2는 상대적으로 점성과 포화물 함량이 낮아 중·저급으로 평가받고, 그룹3 이상은 고품질 윤활유로 고급 자동차용과 특수 목적 용도로 사용된다.
업계 관계자는 "SK이노베이션과 에쓰오일은 미국 석유협회 기준 그룹2와 그룹3에 해당하는 고부가 윤활유 생산량이 상대적으로 많아 수익성이 높다"며 "반면 GS칼텍스와 HD현대오일뱅크는 상대적으로 그룹1, 2 중심의 포트폴리오인 탓에 상대적으로 윤활유 수익이 적다"고 분석했다.
여기에 더해 상반기 전체적인 윤활유 공급량이 줄면서 윤활유 마진이 증가한 점도 수익성 증가의 이유다. 윤활유는 기유(Base Oil)에 첨가제를 섞어 만드는데, 이때 기유는 경유와 같은 공정에서 생산된다. 경유 생산량이 증가할수록 윤활유 생산량이 감소하는 반비례 구조인 셈이다.
지난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천연가스(LNG) 공급이 불안정해지자 이를 대체하기 위해 경유 수요가 늘었다. 그러자 정유 업체들이 윤활유 대신 경유 생산량을 확대했고 상대적으로 윤활유 공급이 줄어들자 마진이 증가한 것이다.
정유 업계 관계자는 "윤활유는 경유와 같은 공정에서 생산되기 때문에 경유 생산이 늘어날 경우 윤활유 공급량이 줄어들게 된다"며 "지난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경유 수요가 늘자 정유 업체들이 경유 생산량을 늘렸고, 이에 따라 전체 윤활유 공급량이 줄어들면서 국내 업체들의 윤활유 사업이 반사이익을 누린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기차용 윤활유로 미래 본다
윤활유는 주로 내연기관차의 엔진오일과 변속기에 사용된다. 최근 전 세계적으로 내연기관차 대신 전기차 수요가 늘어나면서 윤활유 시장도 축소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하지만 정유 업계는 윤활유 수요는 앞으로도 꾸준할 것으로 내다봤다. 동남아시아나 인도, 중동 등 주요 산유국에선 아직 내연기관차 수요가 꾸준히 늘고 있어 윤활유 시장 역시 확대될 것이란 게 업계 예상이다.
전기차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는 점도 윤활유 시장의 미래를 긍정적으로 보는 이유다. 내연기관차와 마찬가지로 전기차도 윤활유가 필요하다. 다만 전기차용 윤활유는 내연기관 자동차에 들어가는 윤활유와는 다르게 냉각과 2차전지 효율 향상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전기모터와 기어의 열을 빠르게 식히고, 차량 내부에서 불필요하게 흐르는 전기를 차단하는 절연 기능이 있는 것이 특징이다.
블룸버그뉴에너지파이낸스(BNEF)에 따르면 오는 2040년 전기차 비중은 전체 자동차 수의 48%를 차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따라 전기차용 윤활유 시장 역시 2040년 12조원 규모로 성장할 전망이다.
이에 정유 업체들은 전기차용 윤활유 제품을 출시하고 시장 점유율 확보에 나선 상태다. 에쓰오일과 GS칼텍스는 지난해 각각 전기차용 윤활유 브랜드 '에쓰오일7 EV'와 '킥스 EV'를 선보였다. SK이노베이션의 윤활유 사업 자회사인 SK엔무브는 지난 5일 열린 'ZIC 브랜드 데이' 행사에서 전기차용 윤활유 사업을 확장하고 2040년 글로벌 선두로 올라서겠다는 목표를 밝혔다.
여기에 더해 SK엔무브는 윤활유를 전기차 냉각에 활용 활용하는 액침냉각 기술도 개발하고 있다. 액침냉각이란 배터리를 유체에 직접 넣어 식히는 방식으로 차세대 배터리 열관리 기술로 각광받고 있다. 기존 수랭식이나 공랭식보다 열관리 효율이 높으며 배터리 화재를 방지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SK이노베이션 관계자는 "현재 액침냉각 기술은 주로 서버나 ESS의 열관리 용도로 사용되고 있지만 향후 전기차에도 윤활유를 활용한 열관리가 가능할 것"이라며 "이를 위해 전기차 열관리를 위한 액체 플루이드를 개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민성 (mnsung@bizwat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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