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삼관매혈기’ 위화 작가 “한국 독자들 소양 더 높아”
해마다 노벨문학상 유력 후보로 거론되는 중국 현대 문학의 거장 위화(余華, 1960~) 작가가 지난해 12월 방한 이후 8개월여 만에 다시 한국 독자들을 만나러 왔습니다. 8일부터 13일까지 열리는 서울국제작가축제 개막식에서 강연하고 <아버지의 해방일지>의 정지아 작가와의 대담에도 참석합니다.
1983년에 글을 쓰기 시작했으니 올해로 꼭 등단 40주년을 맞았습니다. 하지만 정작 위화 작가는 등단 40주년인 줄로 모르고 있다가 출판사에서 알려줘서 알았다고 하더군요. 몇십 주년 기념행사를 하고 나면 연로한 작가들이 세상을 떠나는 경우가 많아 '돌아가실 때가 됐나보다'라고 생각하게 한다는 이유로 중국에서는 이런 기념행사를 보통은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한국에서 등단 40주년 기자간담회 자리를 마련해준 출판사에 거듭 고마움을 전했습니다.
"40주년 행사를 하게 되리라곤 생각도 못 했습니다. 푸른숲 출판사로부터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이번에도 굉장한 우정을 느꼈습니다. 푸른숲과 인연을 맺은지 26년이 됐습니다. 저는 다 잊고 있었는데도, 푸른숲은 다 기억하고 있었더군요. 앞으로 등단 80주년 기념행사를 하게 되면 그때도 한국에 와서 하겠습니다. (웃음)"
위화 작가는 소설 <허삼관매혈기>와 <인생>으로 한국 독자들에게도 친숙합니다. 중국은 물론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소설은 장이머우 감독이 영화로 만들면서 더 유명해진 <인생>입니다. <인생>이 말 그대로 인생작이 된 덕분에, '위화 작가는 소설 <인생> 덕분에 인생을 사는 거다.'라는 소문까지 났죠.
그런데 정작 작가 자신은 <인생> 때문에 살아가는 것은 아니라며, 오히려 자기 작품 <인생> 덕분에 살아가는 두 나라가 있다며 몽골과 터키를 꼽았습니다.
"13일에 한국을 떠나 14일에 몽골 도서전에 갑니다. 출판사 분들이 말을 타고 공항에 데리러 나오겠다고 하더군요. (웃음) 몽골에서는 두 군데 출판사에서 책을 냈는데, 한 군데는 크고 다른 한 군데는 작은 곳입니다. 그 중에서 직원 7명이 일하는 작은 출판사에서 <허삼관매혈기>와 <인생>을 출간했는데요. 출판사 대표가 그러더군요. '위화 선생님 책 두 권이 아니었다면, 저희 출판사는 진작에 문을 닫지 않았을까요.'하고 말이죠.
터키의 출판사는 더 작습니다. 4명이 일하고 있죠. 책을 낼 때마다 1천 권이 넘게 판매된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인생>이 나와서 4만 부가 팔렸죠. 지금도 잘 팔리고 있습니다. 보통 책이 몇 년 팔리고 나면 사장되기 마련인데, 터키와 몽골에서는 해마다 재판을 찍고 있어서 굉장히 좋은 소식이라 생각합니다."
위화 작가의 출세작이자 대표작으로 꼽히는 <인생>은 지금까지 전 세계에서 42개 언어로 번역됐습니다. 중국에서만 공식적으로 2천만 부가 팔렸다고 하죠. 또 다른 대표작 <허삼관매혈기>는 33개 언어로 번역 출간됐습니다. 재미있는 건 중국을 비롯한 전 세계 여느 나라와도 달리 유독 한국에서만 <허삼관매혈기>가 더 많이 팔리고 더 널리 읽혔다는 점입니다.
지금까지 한국에서 <허삼관매혈기>는 25만 부, <인생>은 10만 부가 팔렸습니다. 작가는 한국만의 이런 현상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요?
"저도 의아합니다. 왜 한국에서 <허삼관매혈기>가 많이 팔리는지, 한국만 유독 <허삼관>에 환호하는 게 놀랍습니다. 아마도 한국 독자들의 소양이 더 높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허삼관> 같은 소설을 한국 독자들이 더 좋아하는 게 아닌가 싶어요.
제 첫 책 <인생>이 출간됐을 때는 독자들이 별 관심을 두지 않았던 시절이었습니다. <허삼관>은 두 번째 책이고요. 이미 첫 책이 나왔기 때문에 그로 인해 좋은 평가를 받았고, 그 덕분에 더 널리 알려지지 않았나 싶습니다."
작가에게 한국은 특별한 나라입니다. 중국이 아닌 외국에서 가장 먼저 작가의 책을 번역 출간한 나라가 한국이기 때문이죠. 당시에는 국내에 소개된 중국 작가에 손에 꼽을 정도로 드물었습니다. 그래서 가장 좋아하는 독자들도 한국 독자라고 하더군요. 작가에게 한국은 성공한 나라이기 때문에, 당연히 한국에 자주 온다고도 했습니다.
젊은이들이 책을 읽지 않는 시대, 작가로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기분일까. 해마다 책의 위기, 출판의 위기를 이야기하지만, 올해는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출판산업이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죠. 이런 상황에서 우리 정부가 출판산업 지원 예산을 줄이고 있다는 소식에 위화 작가는 깊은 우려를 전했습니다.
"과거 한국 정부가 출판 지원을 많이 한 거로 알고 있고, 중국에서 그런 소식을 들을 때마다 부러워하는 마음 갖고 있었습니다. 중국은 그동안 출판 지원을 전혀 안 해줬습니다. 그런데 최근 10년 동안 출판 관련 보조금들이 계속 늘고 있어요. 예전에 한국에 보조금이 있었을 때는 정작 중국에는 없었는데, 지금 한국은 지원 예산이 줄고 있고 중국은 많이 늘고 있습니다.
문화와 출판은 정부의 지원이 굉장히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14억 인구의 중국에서도 지원을 시작하고 있는데, 인구가 적은 한국에서는 독자가 그만큼 줄고 있기 때문에 더 많은 지원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40년 작가 인생을 돌이켜 보면 그다지 노력하는 작가는 아니었던 것 같다고 겸손함을 보여준 위화 작가는 이번 한국 방문을 마치고 돌아가면 더 노력해서 작품을 써야겠다고 했습니다. 현재 새 작품 두 편을 동시에 쓰고 있는데, 좀 긴 분량의 한 작품은 진지한 내용으로, 상대적으로 짧은 분량의 다른 작품은 코믹한 내용이 될 거랍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많은 분이 궁금해하는 노벨문학상에 관해서는 이렇게 짧게 한마디 하더군요. "한국에서 상 하나도 못 받았는데 무슨 노벨상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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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 기자 (stone21@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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