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애호가의 도시, 올가을 특별한 게 있다

이한나 기자(azure@mk.co.kr) 2023. 9. 8.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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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본창 '초기 유럽 흑백 14'. 대구사진비엔날레
대구 북구 호국로 mrnw(미래농원) 전경. mrnw

가을에는 KTX를 타고 대구로 예술여행을 가보는 건 어떨까. '천재 화가' 이인성 등 대표적 예술가들이 탄생했고 실험미술이 번성했으며 미술품 소장 기반이 탄탄한 곳이다. 이들을 후원하는 미술 애호가 전통과 기반이 아주 강한 지역이다. 리안갤러리와 인당뮤지엄 등 컬렉터가 만든 전시 공간도 많다.

사진의 영원한 힘…대구사진비엔날레

일단 동대구역을 나서면 광장에서 '대구의 그때와 지금: 사진 비교의 힘' 전이 열리고 있다. 1952년 학도병 시절을 보냈고 올해 노년이 된 한 남성의 70년을 보여주는 생생한 사진이 인상적이다. 오는 22일 개막하는 대구사진비엔날레 연계 전시다. 본격적인 행사는 달서구 대구문화예술회관 등에서 '다시, 사진으로! 사진의 영원한 힘'을 주제로 열린다.

박상우 대구사진비엔날레 예술총감독은 "회화와 언어 등 다른 매체가 결코 흉내 낼 수 없는, 오직 사진만이 표현할 수 있는 '사진적인 사진'을 다룬다"며 "1990년대 이후 현대 시각예술에서 잊혔다고 오해된 사진의 놀라운 능력과 진정한 힘을 사진의 본고장 대구에서 다시 소환할 것"이라고 밝혔다.

사진 매체의 고유한 특성과 힘에 초점을 맞춰 그 특성과 힘이 동시대 시각예술에서 어떤 양상으로 펼쳐지고 있는지 살펴보기 위해 19세기 말 서구 사진부터 동시대 세계 각국의 예술사진을 선보인다. 저명한 사진학자 겸 전시기획자 미셸 프리조가 맡은 주제전은 사진의 10가지 힘이라 할 수 있는 증명·빛·순간·지속·비교·시점·확대·연출·변형·관계의 힘을 소주제로 풀 예정이다. 11월 5일까지.

이미 크뇌벨 'Zwei Elemente-2'. 리안갤러리

리안갤러리, 獨 추상 거장 이미 크뇌벨전

유기적 형상 속에서 봄날의 아지랑이도 떠오르고, 가을 벌판의 바람도 느껴지는 듯 공감각이 살아난다. 알루미늄판 위에 붓질이 고스란히 드러난 덕분에 시시각각 변하는 빛에 따라 오묘하게 색이 바뀐다. 알루미늄 패널이 인상적인 건물 외관과도 어울린다.

독일 추상미술 거장 이미 크뇌벨(83)의 개인전이 대구에 상륙했다. 리안갤러리 대구(중구 대봉동) 신관 개관전 '피구라(Figura)'에 대표작 12점을 펼쳤다.

크뇌벨은 개념미술 작가 요제프 보이스(1921~1986)의 제자로 사각 캔버스 틀이라는 전통 회화 양식부터 탈피하려고 애썼다. 작가는 딸이 운영하는 제과점의 케이크나 손녀의 자유분방한 색칠 놀이 등 일상이 그의 작품 형상과 색채 선택에 영향을 줬다고 전했다. 색채 본연의 생동감이 관람객에게도 바로 전달된다. 컬렉터 출신인 안혜령 리안갤러리 대표는 "크뇌벨은 유럽의 순수함을 품은 세련된 조각과 같아 매력적"이라며 "세계적인 작가의 전시로 지역 화랑 이름을 해외에까지 알리는 것이 대구 지역을 위한 길이 될 것"이라고 했다. 전필준 대구가톨릭대 교수가 설계한 신관은 지하 1층~지상 4층 규모로 순수 전시장만 3개 140평 규모다. 주 전시장 층고가 무려 9m에 달해 미술관처럼 초대형 작품 전시도 가능해졌고 구석구석 정원이 보이는 새로운 공간을 체험하는 즐거움도 있다. 전시는 10월 14일까지.

14일부터 남춘모 초대전이 열리는 인당뮤지엄 로비 전경. 인당뮤지엄

'숨은 진주' 인당뮤지엄, 남춘모 설치 눈길

최근 유럽 전시로 주목받아온 후기 단색화 대표 작가 남춘모(62)의 초대전 '프롬 라인스(From Lines)'가 인당뮤지엄에서 14일부터 열린다. 이배, 곽훈, 윤희 등 중견 작가들 전시로 명성이 높은 이곳은 대구보건대 안에 널찍한 정원을 낀 대구 대표 사립미술관이다. 2005년 설립돼 최근 리모델링했고 14일 재개관을 앞두고 있다. 이 공간을 잘 아는 작가가 대형 로비와 5개 대형 전시실에 대표작들을 펼쳤는데 대규모 설치가 장관이다. 특히 광목천에 합성수지를 발라 작업해 입체 선들을 겹쳐 만든 격자무늬 '스프링 빔(Spring Beam)'은 우물 정(井) 자를 뻗은 것 같다. 무려 16개가 나란히 서 있으니 빛이 우리 전통 창호지와 문살을 통해 들어올 때의 따뜻함과 포근함이 느껴진다. 나무처럼 세워진 조각 사이를 천천히 명상하듯 걸어보는 기분도 좋다.

25m 넘는 긴 벽을 채운 '빔(Beam)'(2023)은 광활한 대지의 웅장함을 전달한다. 작가는 "나는 어디서 왔는지를 끊임없이 되묻게 된다"면서 "근원적 질문에 대한 답을 대지·땅에서 찾았다"고 밝혔다. 작가가 20년간 구상해 마침내 실현한 신작은 땅에 합성수지를 발라 굳힌 후 땅을 캐스팅하듯 떠내 황금빛을 더한 '프롬 라인 2502(From Line 2502)'다. 전시는 12월 14일까지.

윤석남 '차보석 초상'. 대구미술관

대구미술관, 이달 말부터 대형 전시

대구의 대표 국공립미술관인 대구미술관은 오는 26일 대규모 전시를 시작한다. 올해 23회를 맞은 이인성미술상 수상자전 '윤석남'은 여성의 삶과 투쟁이라는 페미니즘의 실천을 넘어 휴머니즘을 전하는 작가의 작품 세계를 보여준다. 한국 여성 독립운동가 채색 초상화 연작 중 20점 신작을 만날 수 있다. 유기견을 보호하는 할머니에서 영감을 얻은 '1,025: 사람과 사람없이' 전체도 볼 수 있다. 또 미국 출신 미니멀리즘 작가이자 시인인 칼 안드레(87)의 대규모 개인전이 펼쳐진다. 아시아 첫 순회전으로 '메리마운트(Merrymount)'(1980) 등 대표 조각과 드로잉 등을 선보인다. 전통적 예술 관행을 거부하고 예술 생산의 메커니즘을 새롭게 정의한 작가다. 두 전시 모두 26일부터 12월 31일까지.

mrnw 등 복합문화공간 체험도

복합문화공간 'mrnw(미래농원)'은 꼭 들러볼 곳으로 꼽힌다. 북구 호국로에 위치한 이곳은 아버지 손때가 묻은 오래된 농원에 아들이 지은 현대적이고 특별한 건축이 유명하다. 울창한 소나무 숲 옆에 농원 흙으로 지은 듯한 황토색 건물은 정원과 하늘을 향해 활짝 열려 있어 자연에 폭 안긴 느낌이다. 카페를 갖춘 건물 내부에서 텍스타일, 식물, 드로잉 등 다양한 전시는 물론 요가 클래스와 강연도 열린다. 주변 숲속 산책로도 훌륭하다. 중구 동인동 카페 '메이크'는 건물 외관에 강렬한 그라피티처럼 젊은 세대 호응이 높다. 카페와 세차 차고를 겸한 콘셉트도 특이하다. 수성구 고모역 옆 숲을 낀 '룰리커피'도 조용히 커피를 마시면서 지나가는 기차를 볼 수 있어 흥미롭다.

대구가 처음이라면 대구의 과거와 현재, 역사가 살아 있는 대구 근대문화골목 투어도 해볼 만하다. 대구시 중구 홈페이지에 들어가 다양한 코스별로 안내를 신청할 수 있다. 도심 인근 수성못은 연못을 둘러싼 녹지 산책길이 매력적이다. 수성호텔에 묵으며 온천욕으로 피로를 풀 수도 있다.

[대구 이한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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