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도 출판 지원 시작하는데, 한국에선 줄어든다니…”
기자간담회서 한국 출판예산정책 비판
“한국서 상 못 받았는데 노벨상이라뇨”
“한국의 기존 정부에선 출판에 많은 지원을 한 걸로 안다. 부러웠다. 중국에서 출판사에 대한 정부 지원은 어떤 것도 없었다. 최근 10년 출판사·잡지사에 대한 정부 보조금들이 조금씩 늘고 있다. 중국에서 굉장히 유명한 상하이의 잡지사 경우 매년 500만위안(9억원 이상)을 지원한다. 14억 인구를 가진 중국도 정부 지원을 시작하는데, 인구 적은 한국에서 독자도 더 줄고 있으니 더 많은 정부 지원이 필요하지 않겠는가.”
8일 오전 서울 서촌에서 진행된 기자간담회에서 출판·독서 지원 예산이 감소하는 한국 상황에 대해 중국 작가 위화(63)는 이렇게 말했다. 시종 입담과 재담으로 등단 40년을 반추하던 그가 드물게 심각해진 한 대목이다.
위화의 이번 방한은 서울국제작가축제 초청(8일 저녁 7시 개막강연)으로 이뤄졌다. “나도 모르고 있던 등단 40주년”을 출판사가 알려주며 기자간담회가 앞서 진행됐다. 노벨문학상 후보 작가 위화를 한국의 독자와 떼놓고 설명하긴 어렵다.
그는 1983년 단편 ‘첫번째 기숙사’를 선보인 이래 실험성 강한 중단편에 집중하다 중국 근현대를 관통하는 사실주의 장편들을 내놓으며 중국 3세대 대표 작가로 자리매김했다. 자신의 말마따나 40년 동안 쓴 불과 6편의 장편 가운데 “가장 먼저 번역 소개된 외국”이 한국이다. 1997년 ‘인생’(푸른숲)이었다. “1994년 유럽에서 소설이 출간되긴 했지만 그건 장이머우 감독의 영화 때문”이란 게 위화의 생각이다. 앞서 “한국어로 번역된 소설을 가진 생존 중국 작가는 모옌(‘붉은 수수밭’)과 다이호우잉(‘사람아 아, 사람아!’)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1999년 국내에 두번째 소개된 위화의 ‘허삼관 매혈기’(역대 25만부 판매)가 ‘인생’(10만부)보다 많이 읽히고 팔린 국가도 한국이 유일하다. “의아하고 놀라운 결과”라며 위화는 “친한 동료작가와 ‘한국 독자의 소양이 높아 그런 거’라고 얘기한다”고 말했다.
2000년 첫 방한 때 교보문고에서 마련된 작가사인회를 준비하다 “아무도 안 온다고 사인회가 취소되어 바로 맥줏집에 갔다”거나, “위화 인생은 ‘인생’ 덕분에 산다는 말도 있었지만 ‘인생’이 살아가게 하는 외국의 출판사들도 있다. 1천권 이상 팔아본 적 없는 터키의 한 출판사는 ‘인생’으로 4만부를 판매했다”거나, “한국영화 ‘허삼관 매혈기’를 중국에서 해적판으로 봤다” 등의 이야기는 솔직하여 유쾌한 작가의 태도를 여실히 드러냈다. 고난에 내몰린 민중의 삶이 이러한 시선에 포착될 때 역으로 위화의 서사는 진솔한 슬픔에 증폭되는 듯하다. 현재 중국에서 위화의 작품 가운데 ‘인생’에 이어 인기 있는 작품이 죽음과 사랑이라는 열쇳말로만 풀리는 ‘제7일’(2013)로, 특히 20~30대 젊은 독자들이 매료된 이유를 가늠케 한다. 작가 스스로 “생각지도 못한 일”로, 한해 100만부 이상 팔린다.
지난해 말 방한 중 코로나바이러스에 감염됐던 위화는 후유증으로 집중력과 기억력이 감퇴하고 “유달리 불면으로 고통스럽다”면서도 “중국에선 등단 기념을 연로한 작가들의 (마지막) 행사로 생각해 잘 하지 않는데, 등단 80주년 행사도 하게 되면 한국서 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두 편의 작품을 준비 중이다.
위화의 ‘인생’은 42개 언어권에, ‘허삼관 매혈기’는 33개, 그밖의 3편은 최소 20개, 2021년작 ‘원청’은 18개 언어권에 소개된 상태다. 세계 독자들과 한 시각, 한 공기를 마시는 셈이다. 어떤 지역적 변수도 지역적일 수 없겠다.
“점점 사람들이 책을 보지 않으니 유럽, 미국의 출판사도 출판 규모를 줄입니다. ‘원청’이 지난해 프랑스에서 출간 예정이었는데 계속 늦춰지다 며칠 전 나왔어요. 프랑스가 소설을 읽지 않으면 다른 나라는 더 심할 겁니다. 선인세 계약 맺은 책들도 출간계획을 취소한다는 (주변 작가의) 소식을 많이 듣고 있어요.”
국제관계는 어떤가. 그는 한겨레에 “원래 한중 관계가 좋고 중일 관계는 나빴는데 지금은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며 “하지만 그런 한중 관계는 잠깐일 것”이라 말했다. 전망이라기보다 “세계 독자 가운데 한국 독자를 가장 사랑한다”는 작가의 바람인 셈이다.
이달 말부터 위화 또한 연례행사처럼 노벨문학상 후보로 지목될 것이다. 웃으면서 그가 말했다.
“한국서 상 하나도 못 받았는데, 무슨 노벨상이겠어요.”
인생
위화 지음. 백원담 옮김 l 푸른숲 l 1만6800원
글·사진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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