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들, 이제 《오징어게임》으로 한국 떠올린다
(시사저널=정덕현 문화 평론가)
문화체육관광부는 올해 초 2023년을 관광 대국의 원년으로 삼고 관광 산업에 대한 투자와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런데 이 K관광의 핵심 키워드로 거론되는 것이 바로 K콘텐츠, 나아가 K컬처다. 무엇이 이런 흐름을 만들었을까.
문체부 "2027년까지 외래 관광객 3000만명 유치"
문화체육관광부는 최근 한국관광공사와 함께 '2023년 관광 분야 지원사업 설명회'를 가졌다. 이 자리에서 박보균 장관은 2027년까지 외래관광객 3000만 명, 관광수입 300억 달러를 달성하기 위한 K관광의 '3C전략'을 소개했다. 첫 번째로 꼽은 것이 관광과 K컬처의 융합(Convergence)이고, 두 번째가 매력적인 관광요소 발굴(Charming attractions), 세 번째가 편리하고 안락한 K관광(Convenience)이었다. 이를 통해 한국을 관광 대국으로 만들겠다는 포부를 밝히며 박 장관은 2023년을 그 원년으로 삼겠다고 했다.
그런데 왜 하필 K컬처일까. 그간 한국 하면 올림픽이나 분단국가 혹은 IT 제품 브랜드 같은 걸 먼저 떠올리던 외국인들이 이제는 《오징어게임》, BTS, 《기생충》을 떠올리게 된 변화와 관련이 있다. 최근 K콘텐츠의 글로벌 위상이 급격히 높아지면서 외국인들의 한국에 대한 이미지가 바뀌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2023년 문화체육관광부가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과 함께 해외 26개 국가 2만5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해외한류실태조사'에 따르면 한국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으로 K팝(14.3%), 한식(13.2%), 한류스타(7.4%), 드라마(6.6%) IT 제품 브랜드(5.6%)가 지목됐다. 즉 한때 한국의 이미지로 자리했던 IT 제품 브랜드의 자리에 K콘텐츠들이 대신 채워지고 있음을 잘 보여주는 지표다.
그렇다면 외국인들이 한국을 K콘텐츠로 떠올리고 있는 이 변화된 상황을 관광 업계에서는 기회요소로 제대로 활용하고 있을까. 이미 강력한 팬덤이 콘텐츠 소비를 넘어 직접 한국을 방문하는 이른바 '덕후 투어'가 벌어지는 K팝의 경우에는 그래도 K콘텐츠를 활용한 '콘텐츠 투어리즘'의 성공사례가 생겨나고 있다. 예를 들어 여의도의 더현대 서울 같은 백화점은 2022년부터 스트레이키즈, 뉴진스, 블랙핑크, 에이티즈, 더 보이즈 등 K팝 스타들의 팝업 스토어를 지속적으로 진행하면서 한국을 방문하는 K팝 팬들에게는 '성지'로 자리매김했다. BTS의 글로벌 팬덤인 아미의 경우 한국을 방문해 그들의 소속사인 하이브 엔터테인먼트를 본 후 연습생 시절부터 다녔던 유정식당을 찾는 일이 하나의 '성지순례'로 자리하고 있다. BTS는 2019 서머 패키지 인 코리아 뮤직비디오와 화보를 전라북도 완주에서 촬영했는데, 그들이 지나간 길 또한 'BTS로드'로 떠올랐다.
이렇듯 K팝의 글로벌 팬들이 이른바 '성지순례'나 콘서트 참여로 방한하지만, 그것을 효과적으로 활용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예를 들어 지방 공연의 경우 티켓만 파는 것이 제한돼 있고, 그곳의 일반관광까지 끼워 파는 방식으로 운용되는 현실이 그렇다. 오롯이 공연과 성지순례에만 집중하고픈 팬들의 취향을 떠올려보면 여기에 끼워팔기 식으로 들어간 지역의 일반관광은 부담만 주기 때문이다. 즉 K콘텐츠가 유발하는 K관광에 대한 니즈(욕구)는 분명히 존재하고 이를 활성화하겠다는 의지는 민관이 모두 공감하는 바지만, 아직은 제대로 정비돼 있다고 보기 어렵다는 이야기다.
그럼에도 'K관광'이라는 지칭에 담겨 있는 의지를 보여주듯 한국관광공사는 K팝, K드라마, K예능 등의 테마로 이와 연계된 관광코스를 소개하는 가이드북 '한류위키'를 제작했다. 이를테면 넷플릭스에서 글로벌 열풍을 일으킨 《오징어게임》이나 지난해 가장 큰 화제를 불러일으킨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주제로 드라마 명장면들이 들어있는 촬영지들을 엮어 관광코스로 제안한 것이다.
K콘서트와 성지순례에 일반관광 끼워팔기 아쉬움
《오징어게임》의 경우 극 중 기훈(이정재)이 들른 '상우네 생선'의 실제 장소인 쌍문동 백운시장 안에 있는 팔도건어물부터 시작해 일남(오영수)과 기훈이 함께 소주를 기울이던 CU 쌍문우이천점, 기훈이 경마 도박으로 돈을 딴 후 사채업자에게 쫓기던 상봉터미널, 달고나 세트를 구입할 수 있는 인사동 토인, 어린 시절 주인공들이 친구들과 오징어게임을 하는 장면이 촬영됐던 강화군 교동초등학교 등이 코스로 묶였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경우 우영우 김밥의 실제 장소인 수원 카자구루마와 회전문 에피소드가 있었던 한바다로펌 빌딩의 센터필드, 영우와 준호가 아름다운 일몰을 보던 장화리 일몰 조망지 등을 코스로 엮었다. 드라마 팬들이라면 책자와 앱으로도 볼 수 있는 한류위키의 코스들을 따라가며 이를 사진에 남기는 체험을 할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우리의 시각으로 보면 편의점이나 상봉터미널 같은 장소가 뭐가 그리 대단할까 싶지만, 콘텐츠의 열성 팬들에게는 그 의미가 남다를 수 있다. 그곳을 찾아 사진을 남기고 그걸 SNS를 통해 공유하는 방식은 그래서 열성 팬들의 경험으로부터 일반관광객들로 그 여행 방식이 확장될 수 있는 가능성을 갖는다. 하지만 그럼에도 단지 촬영지라는 이유로 사진만 찍고 떠나는 외국인들에게는 어딘가 헛헛함이 남을 수 있는 게 사실이다. 영상으로 보던 촬영지 분위기는 작품이 가진 스토리에 의해 달리 보일 수 있고, 그래서 실제로 그 장소의 이미지도 다르게 만들어낼 수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그 공간이 작품이 끝난 후에도 계속 콘텐츠와 연계돼 관리됐을 때 가능한 일이다.
또한 콘텐츠 내용과는 상관없이 배경이 좋아 촬영지로 찍힌 경우에는 이러한 정보와 콘텐츠의 연결고리가 약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즉 K콘텐츠와 연계된 K관광을 염두에 둔다면 작품 기획 단계부터 촬영지가 있는 지역과의 긴밀한 협업이 요구된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동백꽃 필 무렵》과 《갯마을 차차차》의 촬영지로서 콘텐츠 제작 단계부터 협업을 진행해 시너지를 극대화한 포항의 사례는 주목할 만하다. 특히 《갯마을 차차차》의 경우 사전 제작 논의 단계부터 협업을 통해 전체 제작 분량의 80%가량을 포항시에서 촬영했고, 특산물을 활용함으로써 이 지역의 관광 인프라까지 알리는 시너지를 만들었다. 콘텐츠가 성공한 후 이를 관광상품화해 활용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이제는 제작 단계부터 지역과 연계해 시너지를 내는 방식을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해외의 경우는 어떨까. 콘텐츠와 연계된 관광산업으로서 '콘텐츠 투어리즘'은 이미 전 세계적인 관광의 흐름으로 자리 잡았다. 이른바 '프로도 효과(Frodo Economy effect)'라 불리는, 영화 《반지의 제왕》이 불러일으킨 뉴질랜드의 경제 특수가 대표적이다. 이 영화 개봉 후 인구 450만 명의 뉴질랜드에 무려 400만 명의 관광객이 다녀갔다. 영화 《라라랜드》로 2017년 LA의 여행객이 전년 대비 5% 늘어나 역대 최고치를 기록한 사례도 있고, 영국의 경우는 《해피포터》와 《노팅힐》이 프로도 효과를 낸 대표적 사례로 꼽히고 있다.
일본도 마찬가지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너의 이름은.》은 국내에 '콘텐츠 투어리즘'을 알린 작품이다. 이 작품을 본 국내 팬들이 작품 속 배경이 된 일본 도쿄의 현장을 찾아 인증샷을 찍기 시작했던 것. 신카이 마코토 작품인 《언어의 정원》에 등장하는 도쿄 신주쿠 교엔이나 《더 퍼스트 슬램덩크》의 배경이 된 가마쿠라현은 콘텐츠 투어리즘의 성공사례로 꼽힌다. 특히 가마쿠라현은 《슬램덩크》 특수로 인구 17만 명에 불과한 지역에 매년 내지인을 포함해 2000만 명이 방문하는 관광지가 됐다.
그렇다면 우리에겐 없을까. 우리도 있었다. 2002년 방영된 《겨울연가》가 불러온 남이섬 관광특수가 그것이다. 하지만 남이섬의 현재는 어떨까. 《겨울연가》라는 콘텐츠와의 연계성보다는 '나마니라공화국'이라는 새로운 스토리텔링으로 읽히고 있다. 이렇게 된 건 시간이 지나고 점점 더 세련된 드라마들이 쏟아져 나오는 와중에, 《겨울연가》가 낡은 콘텐츠로 인식되기 시작하면서 남이섬 스스로 《겨울연가》 이미지를 털어내려 노력해 왔기 때문이다. 이로써 남이섬은 새로운 스토리를 가진 관광지로 거듭났지만, 콘텐츠 투어리즘 관점에서 보면 아쉬운 지점이 있다. 옛것을 낡은 것으로 치부하기보다는 현재에 새롭게 재해석하는 방식으로 콘텐츠도 부활할 수 있다는 건, 최근 국내에서 열풍을 일으킨 《더 퍼스트 슬램덩크》만 봐도 알 수 있는 일이다. 1990년대에 연재된 만화 《슬램덩크》를 실사 애니메이션으로 리메이크한 이 작품은 당대를 살았던 이들에게는 추억을 불러일으켰고, 현세대에게는 새로운 콘텐츠의 신선함으로 다가왔다. 만일 《겨울연가》 또한 새로운 감성을 더해 리메이크됐다면 어땠을까. 남이섬은 또다시 콘텐츠 투어리즘의 수혜지가 되지 않았을까.
'콘텐츠 투어리즘' 성공적으로 정착시키려면…
최근 한국관광공사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이매진 유어 코리아(Imagine your Korea)'에서는 《오징어게임》의 주인공 이정재가 출연해 한국을 알리는 시리즈 영상 '챌린지 코리아'가 공개됐다. '댄스 댄스 댄스(Dance Dance Dance)' '헬로 퓨처(Hello Future)' '배틀 오브 K푸드(Battle of K-Food)' '슈팅 스타(Shooting Star)'로 나뉜 2분 남짓의 영상들은 각각의 조회 수가 무려 1억3000회를 넘어섰다(9월4일 기준). 시리즈 공개 이후 이 채널의 주간 조회 수가 1000배에 달하는 증가량을 기록한 것이다. 시즌2를 준비하고 있는 《오징어게임》의 이정재가 출연한 것도 주효했지만, 각각의 영상이 간결하게 한국의 매력을 알리고 있다는 점이 이런 주목도를 높였다고 여겨진다. 춤, 퓨처, K푸드, 포토스폿이라는 키워드에 맞춰 전국 각지의 관광지를 담아낸 후 이정재가 "감당할 수 있겠니?"라는 반복되는 질문을 던지는 이 시리즈는 보는 이들에게 한국을 경험하고픈 도전정신(?)을 부추긴다. '엄청난 에너지를 춤으로 뿜어내는 나라' '24시간 불이 꺼지지 않는 나라' '먹어도 먹어도 끝이 없는 나라' '끝없이 쏟아지는 포트스폿'으로 설명되는 한국이 바로 그것이다.
콘텐츠 투어리즘 관점에서 K콘텐츠를 활용한 K관광의 활성화에서 가장 중요한 관건은 '보는 단계'에서 '가는 단계'로 바꿔놓는 모멘텀이다. 즉 "재밌다"의 차원에서 "가봐야겠다"의 차원으로 바꿔줘야 진짜 결과가 나타난다는 것이다. '챌린지 코리아' 시리즈는 외국인들의 귀에 대고 속삭인다. 영상으로만 보던 것들에서 벗어나 이제 그 속으로 뛰어 들어오라고. 보는 것에서 가보는 곳으로 한국을 탈바꿈하기 위해서는 그래서 K콘텐츠에 머무르는 게 아니라 K컬처의 차원으로 확장하는 것이 필요하다. 드라마에 등장한 특정 K푸드를 먹기 위해 거기 나왔던 장소를 찾아가 체험하고 사진을 찍는 K콘텐츠 체험이 코어 팬덤의 여행이라면, 이제 그곳까지 가지 않더라도 그 음식을 먹는 경험 자체를 하는 K컬처 체험은 일반관광객들로까지 확대되는 여행이 될 수 있다.
저 《반지의 제왕》이 뉴질랜드 관광의 절대반지 역할을 했던 것처럼, 이제 K관광은 K콘텐츠라는 절대반지와 협업해 상호 시너지를 내야 하는 시대에 들어왔다. 코로나19를 지나며 리셋된 관광 산업의 헤게모니는 이제 저마다 발굴해 내는 콘텐츠와의 결합에서 결판나지 않을까. 절대반지를 찾는 K관광과 K콘텐츠의 공동 원정대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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