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년 만에 빗장 풀고 관람객 맞은 서삼릉 효릉…"오픈런 했어요"
정자각 '호랑이' 기와·석상 등 눈길…"함께 기억하고 찾았으면"
(고양=연합뉴스) 김예나 기자 = "1968년 축협이 들어서면서 이곳에 발길이 끊겼어요. 53년 만에 일반 관람객으로는 처음으로 오셨으니 함께 인사드릴까요?"
8일 오전 경기 고양 서삼릉 내 효릉(孝陵) 정자각 앞.
고양시 문화관광해설사회장인 김옥석 해설사가 "남자는 왼손을, 여자는 오른손을 위에 두고 예를 갖추자"고 말하자 관람객 10명 모두 고개를 살짝 숙였다.
조선 제12대 왕인 인종(재위 1544∼1545)과 인성왕후에게 올리는 인사였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조선왕릉 40기 가운데 최근까지도 일반 관람이나 출입이 엄격히 제한돼 온 효릉이 오랜 기간 닫혀 있던 문을 활짝 열었다.
장경왕후의 희릉(禧陵), 철종(재위 1849∼1863)과 철인왕후를 모신 예릉(睿陵)과 함께 서삼릉 안에 있으면서도 '외딴섬'처럼 여겨졌던 미공개 왕릉의 개방이다.
효릉 관람은 이날 오전 10시 태실 권역 정문에서 시작됐다.
관람은 오전 10시, 오후 1시, 오후 3시 등 하루 3차례 해설사와 함께 진행된다. 일반 공개 첫날인 이날에는 1∼3회 차에 각각 12명, 15명, 8명이 예약했다.
참가자들이 도착하자 현장 관계자들은 역학조사를 위한 출입명부를 적어달라고 요청했다.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 소속 실무관은 "효릉 주변에는 젖소 종자를 공급하는 젖소개량사업소가 있어 가축 전염병 확산을 방지하기 위한 역학조사에 필요하다"고 양해를 구했다.
안내를 따라 발걸음을 옮기자 곧 방역 부스가 나타났다.
조선왕릉 서부지구관리소 관계자는 "한 사람당 15초씩 방역 과정을 거친다. 옆에서 나오는 자외선은 보지 말고 정면을 봐달라"고 말했다. 10명이 통과하는 데는 5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효릉으로 가는 관람로는 폭이 2∼3m 정도로, 양쪽으로는 울타리가 쳐져 있었다.
김옥석 해설사는 관람로 양쪽을 가리키며 "왼쪽에 보이는 평지에는 왕릉을 지키고 관리하던 능참봉이 상주하던 재실 자리였고, 오른쪽에는 연지 즉, 연못이 있던 자리"라고 설명했다.
금천교를 지나 홍살문 앞에 도착하자 효릉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김 해설사는 "인종은 5살에 세자로 책봉돼 24년간 세자로 살았다"며 "조선 역대 왕 가운데 재위 기간이 가장 짧아 이룬 업적은 많지 않지만, 효심이 지극해 '효릉'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말했다.
김 해설사는 효릉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점을 놓치지 말라고 강조했다.
그는 "정자각에서 무덤 봉분이 있는 언덕이 절벽처럼 급격한 형태를 보이는 건 드물다"며 "무덤을 둘러싼 석상 중에는 고사리의 꼬불꼬불한 문양이 있는 석상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정자각 꼭대기에 있는 독특한 모양의 장식 기와도 눈여겨 봐달라"고 했다. 호랑이와 닮은 듯한 동물 모양의 기와는 다른 왕릉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기와다.
해설사와 함께하는 관람은 효릉에서 끝나지 않는다.
효릉을 나와 조금만 걸어가면 조선 왕실의 태실(胎室·왕실에서 태어난 아이의 태반과 탯줄을 봉안한 뒤 조성한 시설) 54기를 모은 서삼릉 태실을 만날 수 있다.
이곳에 있는 태실은 일제강점기에 전국에서 옮겨온 것이다.
김 해설사는 "태는 엄마와 아기의 생명을 잇는 연결고리로 전 세계 어디에도 없는 우리 문화지만, 이곳에서는 일본에 의해 마치 공동묘지처럼 조성돼 있어 문화유산 훼손의 역사가 드러난다"고 아쉬워했다.
관람은 조선 왕실과 대한제국 황실의 왕자와 왕녀 무덤이 모인 왕자·왕녀 묘, 후궁 묘 등을 거쳐 연산군(재위 1494∼1506)의 생모 폐비 윤씨가 묻힌 회묘(懷墓)에서 마무리된다.
김 해설사는 늦게 문을 연 만큼 효릉이 본래 모습을 잘 지키며 사랑받기를 바랐다.
"서삼릉 능역이 원래 137만 평 규모인데 젖소개량사업소, 골프장 등이 들어서면서 이제는 7만평 정도입니다. 왕이 된 이후 고난을 많이 겪으셨는데 후손들이 기억하고 많이 찾았으면 합니다."
지난해 말부터 조선왕릉을 찾아다니며 효릉 공개만을 기다렸다는 초등학교 5학년 황현수 군은 "여름 내내 전화로 문의하다가 드디어 첫날 '오픈런'(문 열리자마자 왔다는 의미) 했다"며 웃었다.
황 군은 "능침까지 올라가지는 못해 아쉽지만, 조선왕릉 40기 중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효릉까지 다 볼 수 있어 뿌듯하다"며 더 많은 사람이 효릉을 보고 역사적 의미를 배우길 바랐다.
yes@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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