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탈중국 외칠 때… 테슬라 역주행 택한 이유 [視리즈]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
탈중국 물결 속 다른 선택
확고한 친중 노선 보이며
중국과 파트너십 과시해
세계 최대 자동차 시장에
안착하려는 전략적 행보
이면엔 더 ‘큰 그림’ 있어
# 미국과 중국을 양축으로 신냉전 체제가 본격화하면서 세계 경제도 재편되고 있다. 미중 양국이 꺼내든 자국우선주의 카드에 다국적 기업들은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눈치만 살피고 있다.
# 한편에선 "지금까지 중국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았다"며 이제라도 탈脫중국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구글과 애플을 비롯한 세계 유수의 기업들이 중국의 대체지를 찾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이를 뒷받침하듯 미국의 조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8월 첨단 기술 분야의 중국 투자를 제한하는 행정명령을 발표하며 기업의 대중對中 비즈니스를 옥죄고 있다.
# 이 지점에서 눈여겨봐야 할 곳이 있다. 전기차 메이커 테슬라다. 중국과의 거리두기가 그 어느 때보다 가속화하는 시점에서 테슬라는 되레 중국을 향해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지난 5월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가 중국을 방문해 고위 관료들을 만난 건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 "지금은 균형을 지키는 게 최선"이란 여론에도 테슬라가 친중親中 드라이브를 강하게 걸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모든 이들이 예상하듯 오로지 '전기차' 때문일까. 더스쿠프가 視리즈 '돌연변이 테슬라'를 통해 머스크의 중국행에 담긴 함의를 살펴봤다.
세계 경제를 양분하는 미국과 중국의 대립이 지속하면서 두 나라를 교두보로 비즈니스를 펼치는 기업들은 '균형' 맞추기에 여념이 없다. 하지만 갈림길 앞에서 태연히 한쪽 길을 택한 기업도 있다. 미국의 전기차 메이커 테슬라다. 숱한 정치ㆍ경제적 리스크에도 테슬라가 중국의 손을 꽉 잡아 붙든 이유는 무엇일까. 시리즈 '돌연변이 테슬라' 첫번째 편이다.
세계 경제를 좌우하는 두 경제대국 G2(미국ㆍ중국)는 지금 '동전 뒤집기(Coin Flip)' 게임 중이다. 2018년 시작된 미중 무역갈등의 여파로 두 나라는 지금까지 반목과 대화를 반복하며 동전을 뒤집듯 시시각각 얼굴 표정을 바꾸고 있다.
좀처럼 좁혀지지 않는 양국의 입장 차이에 애가 타는 건 미중 관계에 직접적 영향을 받는 글로벌 기업들이다. 어느 한쪽이 무역장벽을 높이면 수출입에 문제가 생기고, 이는 곧 기업의 실적에 영향을 미친다.
기업 입장에선 무게추가 기울지 않도록 양국의 역학관계를 기민하게 살펴보면서 균형을 유지하는 게 최선이다. 글로벌 기업들에 '외교적 줄타기(Diplomatic Tightrope)'란 말은 이제 낯설지 않다.
하지만 어디에나 '돌연변이'는 있다. 국제사회에도 마찬가지다. 살얼음판 같은 미중 대립 구도 속에서 친중親中 행보를 서슴지 않는 테슬라가 대표적이다.
올 초 미중 디커플링(Decouplingㆍ탈동조화)을 둘러싼 논쟁이 불붙었을 때도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 O는 '중국 친화적' 발언을 거리낌 없이 내뱉었다. "중국은 세계에서 가장 경쟁이 치열한 시장이다. 나는 중국의 자동차 회사를 존경한다. 그들은 가장 열심히 일하고 가장 현명하게 일한다(2023년 1월 26일 실적발표 직후)."
여기서 한발 더 나가 머스크는 지난 5월 중국 순방에 나섰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3년 만에 이뤄진 방중訪中인 만큼 의미가 남달랐다. 테슬라 전문 매체 낫어테슬라앱(Not a Tesla App)은 "이 방문은 테슬라에 중요한 이정표(significant milestone)를 제시할 것"이라고 평가했는데, 머스크의 행선지를 살펴보면 그런 말이 나올 법하다.
머스크는 중국 상무부 관계자들과의 회동으로 순방을 시작해 자동차 산업을 규제ㆍ감독하는 주요 정부기관 관리들과 차례로 만났다. 여기엔 묘한 함의가 있다. 머스크의 방중은 테슬라가 글로벌 생산기지 상하이 기가팩토리를 확장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시기에 이뤄졌다.
중국 정부는 전기차 과잉 공급과 가격 경쟁 심화가 우려스럽다는 이유로 테슬라의 계획에 회의적인 태도를 보였다. 낫어테슬라앱은 이런 배경을 두고 "머스크의 방중은 중국 관리들과 협력을 통해 (기가팩토리) 확장 계획을 원활하게 밀어붙이기 위한 전략적 행보"라고 분석했다.
머스크가 노린 '순방 효과'는 또 있다. 중국 고위 관료와 스킨십에는 머스크가 테슬라 전기차의 와우포인트(WoW pointㆍ인상적인 가치)라 할 수 있는 'FSD(Full Self Driving)'의 저변을 넓히겠다는 전략적 의지가 깔려 있다.
FSD는 자율주행을 위해 테슬라에서 자체 개발한 소프트웨어인데, 지금까지는 베타 버전만 론칭했다. 연내 FSD의 정식 버전 출시를 목표로 삼고 있는 테슬라 입장에서 중국 규제 당국의 허가는 중요하다. 규제 장벽만 넘어서면 기술에 정통한 중국 소비자들에게 테슬라는 지금보다 훨씬 더 매력적인 선택지로 자리매김할 수 있어서다.
'변종' 테슬라의 직진
구기보 숭실대(글로벌통상학) 교수의 설명을 들어보자. "앞으로 전기차를 포함한 전세계 자동차 시장은 중국 기업이 주도할 것으로 전망한다. 지금도 비야디(BYD)와 같은 중국 전기차 브랜드가 세계로 뻗어 나가고 있다. 중국 기업과의 승부에서 밀리면 단지 중국뿐만 아니라 글로벌 시장 전체를 놓치는 격이다. 테슬라가 유난히 중국에 집중하는 것도 이곳에서의 경쟁 우위를 바탕으로 중국 전기차 기업들의 글로벌화를 차단하기 위한 노력으로 볼 수 있다."
결론적으로 테슬라는 '중국 내 지배력 확대→세계 시장의 주도권 유지'란 연쇄 효과를 위해 모두가 탈脫중국을 외칠 때 '역주행'을 택한 셈이다. 낫어테슬라앱은 "중국의 독특한 시장 역학을 이해하고 여기에 참여하려는 테슬라의 노력은 대륙에서의 입지를 확고히 하겠다는 결의를 보여준다"고 논평했다.
하지만 아직 질문은 남아 있다. 중국 시장이 기업의 비즈니스 규모를 키우기 위한 전초기지란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는 상식에 가깝다. 더욱이 중국은 '돈이 되는' 시장이다. 미국 싱크탱크인 브루킹스 연구소는 2023년 4월 기준 8억9900만명인 중국의 소비자 계층이 2026~2027년 10억명까지 늘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기업이 세계 최대 시장에 안착하기 위해 전력투구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하다. 테슬라도 마찬가지다. 2023년 2분기 테슬라의 중국 판매 비중이 전체의 절반 이상(53.0%)이란 점을 떠올리면, 머스크의 친중 행보를 특이하게만 볼 일은 아니다.
그럼에도 테슬라가 유별나게 느껴지는 건 CEO 머스크가 때론 정치적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중국 정부에 편향적인 발언과 행동을 해왔기 때문이다. 가령, 머스크는 중국과 대만의 양안 갈등을 두곤 "중국의 공식 정책은 대만을 통합해야 한다는 것"이라며 "(이 사안은) 행간을 읽을 필요가 없으며, 상황에는 필연성이 있다"고 발언해 국제사회의 빈축을 샀다.
이뿐만이 아니다. 머스크는 각국 정부가 사태 해결을 위해 힘을 모으고 있는 신장 위구르 자치구의 강제노동 문제를 외면한다는 비판에서도 자유롭지 못하다. 미국의 시사매거진 디 애틀랜틱(The Atlantic)은 머스크의 이런 태도를 적나라하게 꼬집었다.
"민간 기업의 생사에 정부가 더 큰 권력을 쥐고 있는 데다 언론의 자유를 믿지 않는 중국에서 머스크는 권위주의 호스트들에게 환심을 사야 할 필요성을 인식한 것 같다… 중국 당국 앞에 엎드리기 위해 애쓰는 그의 모습은 되레 그가 중국의 압력에 취약할 수 있다는 인상을 남긴다(2022년 11월 4일자 보도)."
디 애틀랜틱의 지적대로 머스크의 중국 일변도에는 위험 요인이 적지 않다. 머스크와 반대 성향의 정치적 신념을 가진 곳에선 테슬라가 비즈니스 파트너를 찾기 녹록지 않을 수 있다. 기업이 지향하는 가치가 곧 소비의 기준점이 되기도 하는 현시대에 머스크식 소통 방식은 소비자의 반감을 부를 수도 있다.
물론 머스크가 이런 역효과를 모를 리 없다. 궁금한 건 여기서부터다. 자칫 독이 든 성배를 마실 수 있음에도 머스크가 세간에 대중對中 파트너십을 과시하는 건 왜일까. 쏟아지는 비판에도 테슬라가 중국 정부의 입맛에 철저히 맞추는 이유는 무엇일까. 중국을 향해 뻗은 머스크의 숨은 빅픽처는 2편에서 상세히 살펴보려고 한다.
윤정희 더스쿠프 기자
heartbring@thescoop.co.kr
Copyright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