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연속 KS 명장이 "1년만 더" 붙잡았던 유망주가 돌아왔다…"투수 포수 빼고 다 합니다"
[스포티비뉴스=잠실, 김민경 기자] "당시 김태형 감독님께서 1년만 더 해보자고 말씀하셨거든요."
내야수 박지훈(23)은 2020년 두산 베어스에 입단했을 때부터 잠재력이 빼어난 선수로 평가받았다. 키 83㎝, 몸무게 80㎏으로 체격 조건이 좋고, 타격과 수비 모두 대형 선수로 성장할 가능성을 지녔다는 말을 심심치 않게 들었다.
2015년부터 2021년까지 두산의 7년 연속 한국시리즈 진출을 이끌고, 3차례 우승 트로피(2015, 2016, 2019년)를 들어 올렸던 김태형 전 두산 감독의 눈에도 박지훈은 그런 선수였다. 김 전 감독은 2021년 와일드카드 결정전부터 한국시리즈까지 포스트시즌 내내 엔트리에 박지훈을 적어 넣었다. 그해 박지훈은 정규시즌 34경기밖에 뛰지 않은 선수였지만, 벤치에서 큰 경기를 보고 배우라는 의미가 더 컸다. 그럴 만큼 박지훈은 적은 기회 속에서도 잠재력을 보여준 선수였다.
하지만 당장 1군에서 한 자리를 차지하기에는 김재호, 허경민 등 기존 내야수들의 입지가 탄탄했다. 박계범, 강승호, 이유찬, 안재석 등과 경쟁도 고려해야 했다. 2021년 한국시리즈를 마치고 박지훈이 현역 입대를 선택한 배경이다.
김 전 감독은 2022년 한 시즌만 더 뛰고 입대를 고민해 보라고 설득했지만, 박지훈은 미래에 무게를 두고 잠시 그라운드를 떠나기로 결심했다. 박지훈은 "처음에는 김태형 전 감독님이 1년만 조금 더 해보자고 하셨다. 그래도 그때 김재호 선배님, 허경민 선배님 등 내야에 쟁쟁한 선배들이 많이 계셨다. 그래서 빨리 군대를 다녀오는 게 내게는 무기가 될 것 같다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군대에서는 장타력 향상에 무게를 두고 몸을 만들었다. 몸무게 12㎏을 찌워 박지훈의 인생 최고 몸무게인 90㎏을 찍었다.
박지훈은 "처음에는 군대 가는 것 자체가 너무 두려웠다. 가서 감이 다 떨어지면 다시 올라오는 게 힘들겠다고 생각했다. 군대에서도 스윙이나 캐치볼은 틈틈이 하고, 웨이트트레이닝을 열심히 해서 몸무게를 늘리는 데 치중해서 잘 만들어왔다"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상상과 현실은 달랐다. 지난 6월 13일 전역해 팀에 복귀해서 본격적으로 다시 야구를 시작하니 90㎏인 몸은 너무 무거웠다.
박지훈은 "막상 야구를 하려니까 몸이 너무 무거웠다. 방망이에 더 힘이 가해질 수 있다 생각해 증량했는데, 나한테 안 맞는 옷이더라. 몸이 무거우니까 수비할 때 다리가 무거워지고, 뛸 때도 무거웠다. 방망이 칠 때도 둔해진 게 느껴졌다. 5㎏ 정도만 빼자는 생각으로 살을 빼고 있었다. 그런데 시즌을 치르고 경기를 뛰면서 8~9㎏까지 빠져 거의 원래대로 돌아왔다. 예민해서 속에 뭐가 있어서 몸이 무거운 느낌이 들어서 경기 전에 밥을 안 먹다 보니까 살도 같이 빠졌다"고 밝혔다.
전역한 뒤로는 유틸리티 플레이어로 가치를 끌어올리는 데 집중하고 있다. 생존을 위해서다. 2군에서는 투수와 포수 빼고 모든 포지션을 뛰었다. 지난달 18일 처음 1군에 콜업됐다가 3일 만에 2군행을 통보받았을 때 코치진이 외야 수비를 주문했고, 지난 1일 1군에 다시 콜업될 때까지 내야 펑고도 받지 않고 외야 수비만 연습했다.
박지훈은 "지금 포지션을 투수랑 포수 빼고 다 하고 있다. 다방면으로 가능한 유틸리티 플레이어가 되려 한다. 원래는 3루수가 가장 편했다. 처음 1군에 왔을 때 타격감이 좋아서 부르셨는데, 내야에는 자리가 없고 외야는 뛸 수 있다고 하셨다. 외야는 야구하면서 처음이다 보니 많이 불안한 모습을 보여 드렸다. 감독님과 코치님께서 수비로는 나갈 곳이 없다고 하셔서 조금 붕 뜨게 됐다"고 털어놨다.
이어 "한 달가량 계속 외야 수비만 하면서 내야 펑고도 안 받았다. 그러면서 내야 자신감이 없어졌다. 두루두루 연습량을 쪼개면서 하고 있는데, 이쪽저쪽 다니다 보니 자신감은 떨어지고 있는 것 같다. 그래도 팀의 필요에 내가 맞추는 게 맞고, 이렇게 해야 엔트리에서 내가 한 자리라도 얻을 수 있다. 힘들더라도 해내려 한다"고 덧붙였다.
박지훈의 노력을 이승엽 두산 감독과 코치진도 모를 리 없다. 이 감독은 박지훈이 6일 잠실 KIA 타이거즈전에 교체 출전해 0-7로 뒤진 9회말 1타점 적시 2루타를 치는 장면을 긍정적으로 지켜봤다. 수비는 1루수를 맡겼는데, KIA 좌타자들의 강한 타구를 빠뜨리지 않고 잘 낚아채는 안정감을 보였다.
이 감독은 7일 잠실 KIA전에 박지훈을 3번타자 1루수로 내보냈다. 박지훈은 2021년 10월 24일 잠실 LG 트윈스전(9번타자 우익수) 이후 프로 데뷔 2번째 선발 출전 기회를 잡았다.
이 감독은 "박지훈이 스윙이 좋다. 지금 선발로 자주 나가는 선수들이 결과가 안 나오고 있다. 안 좋을 때는 신예, 어린 선수들이 한 명씩 나와주면 분위기가 급반전될 수 있다. 잘 치고 못 치고는 장담할 수 없지만, 어린 선수가 나가서 이럴 때 힘든 시기지만, 좋은 모습을 보일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들더라"며 박지훈에게 기회를 준 배경을 설명했다.
박지훈은 2번째 선발 출전 기회는 망치고 싶지 않았다. 첫 선발 출전 때 아픈 기억 때문이다. 그는 "그때도 내 포지션이 아닌 우익수로 나갔다. 첫 타석에서 투수 땅볼을 쳤는데 그러고 바로 빠졌다. 선발 출전했는데 3회에 교체되니까. 그때 정말 프로의 세계가 호락호락하지 않다고 느꼈다. 처음에 빠진 직후 벤치에서는 좌절감이 들었다. '오늘 3타수 1안타만 치자' 이 마음으로 나갔는데 한 타석 치고 빠져버리니까"라고 되돌아봤다.
당시 충격 요법을 썼던 김 전 감독은 박지훈을 따로 불러 왜 교체됐는지 명확히 설명해줬다. 박지훈은 "감독님과 대화를 했는데 너무 공격적이라고 하셨다. 물불 안 가린다고. 볼도 고르고 해야 하는데, 볼인 공까지 내가 다 따라다니면서 쳤다. 첫 선발 출전이고 뭔가 보여줘야겠다는 생각에 욕심이 과했다. 나가서 내 것을 하는 게 아니라 결과를 만들려고 어떻게든 치려고 계속 따라다녔다. 감독님께서 두 번째 세 번째 타석에 나가도 성급한 마음으로 할 것 같아서 뺐다고 하시더라. 듣고 납득했다"고 답하며 웃었다.
박지훈은 "오늘(7일)은 그렇게는 절대 안 되고 싶다. 안타를 치는 것도 중요하지만, 최대한 폐를 끼치지 않고 한 경기를 끝까지 해보고 싶다. 1군에서 한 경기를 끝까지 책임져 본 적이 없다. 그리고 이기는 게 중요하다. 선발 출전했을 때 내가 못하더라도 팀이 이기면 낫지 않나"라며 "오늘은 성급하게 막 따라다니지 않고 조금만 더 차분하게 하려 한다. 코치님도 그러더라. 군대 다녀와서 이렇게 빨리 1군에 올라오는 사람이 어디 있냐고. 네가 지금 잘하려 하면 도둑놈이라 하셨다. 보너스 게임이라 생각하고 편하게 하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고 했다.
다행히 박지훈은 첫 선발 출전의 악몽을 반복하진 않았다. 타석에서 KIA 선발투수 양현종에게 첫 타석부터 우전 안타를 뺏으며 3타수 1안타 1삼진을 기록했고, 팀도 3-0으로 이겨 2연패에서 탈출했다. 경기 후반 대타 김인태와 교체되면서 한 경기를 온전히 뛰는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게 유일한 아쉬움이었다.
박지훈은 차근차근 팀 내에서 경쟁력을 키워 언젠가는 한 자리에 정착할 수 있는 선수를 꿈꾼다.
박지훈은 "올해 1군에 못 올라오더라도 좌절하지 말자고 생각했다. 1군에 와서 경기까지 나가리라고는 예상 못했다. 올해는 준비하고 내년에 제대로 해보자는 생각이었는데, 그 기회가 조금 빨리 찾아온 것 같다. 지금은 1, 2군을 많이 왔다 갔다 하는데, 백업이라도 팀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다. 어느 포지션에 나가도 상관없다. 1군에 정착해서 도움이 되는 그런 선수가 되고 싶다"고 힘줘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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