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색, 회색, 회색…정구호가 그린 학폭 '그리멘토'[리뷰]

박주연 기자 2023. 9. 8.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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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색의 교실.

회색 옷을 입은 학생 8명이 한 명의 학생을 놀리고, 위협하고, 폭행하고, 희롱한다.

16명의 무용수들은 6장으로 구성된 이 공연에서 마치 교실을 그대로 옮겨온 듯한 정교한 군무를 보여준다.

회색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한 명씩 각자의 자리를 찾아 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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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문화회관 S씨어터 무대에 오른 현대무용 '그리멘토'. (사진=세종문화회관 제공)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박주연 기자 = 회색의 교실. 회색 옷을 입은 학생 8명이 한 명의 학생을 놀리고, 위협하고, 폭행하고, 희롱한다. 이 교실의 학생은 16명이지만 나머지 7명은 등을 돌리고, 책상 아래 숨었다. 방관자들이다.

국내 최고의 비주얼 디렉터 정구호의 현대무용 '그리멘토'가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 무대에 올랐다. 프랑스어로 회색을 뜻하는 'Gri'와 라틴어로 기억, 순간을 의미하는 'Memento'의 합성어로 '회색의 순간들'을 뜻한다.

정구호는 이 작품을 통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학교폭력을 말한다. 우리 모두가 지나온 시간들, 결코 모두가 웃을 수만은 없는 그늘진 기억들이다.

16명의 무용수들은 6장으로 구성된 이 공연에서 마치 교실을 그대로 옮겨온 듯한 정교한 군무를 보여준다. 강렬하고 독창적인 움직임으로 학교 폭력을 직관적으로 재현한다. 공연 내내 무대 뒤 화면에 나타나는 직관적 텍스트들이 관객들의 이해를 돕는다.

막이 오르면 무미건조한 회색 교실이 펼쳐진다. 책상과 의자 16개가 놓였다. 무대 전면 회색 배경에 '아무 일도 없는 듯'이라는 글자가 드러난다. 미니멀한 정구호의 감성이 물씬 드러나는 무대다. 정구호는 이번 공연에서 연출은 물론 무대, 조명, 소품 디자인을 도맡았다.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 무대에 오른 현대무용 '그리멘토'. (사진=세종문화회관 제공)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 무대에 오른 현대무용 '그리멘토'. (사진=세종문화회관 제공)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회색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한 명씩 각자의 자리를 찾아 앉는다. 무용수들은 책상과 의자 오브제를 이용해 학교의 일상적인 모습을 리드미컬하게 표현한다. 팔을 괴고, 의자를 뒤로 기울였다 다시 되돌린다. 정구호와 '일무'에서 호흡을 맞춘 김성훈이 학생들의 다양한 버릇과 움직임을 관찰해 안무로 표현했다.

서서히 교실의 권력과 계급이 드러난다. 모두가 같은 동작을 하지만 한 명만 미묘하게 다르다. 15명이 의자 위로 올라가 등받이 위에 아슬아슬하게 앉는다. 피해자는 뒤늦게 다른 학생들을 따라 한다. 피해자가 자신들과 같은 동작을 취하면 15명은 곧바로 자세를 바꾼다. 무대 뒤 화면에 'please let me in(들어가게 해주세요)'이라는 글자가 나타난다. 피해자의 소리 없는 외침이다.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 무대에 오른 현대무용 '그리멘토'. (사진=세종문화회관 제공)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 무대에 오른 현대무용 '그리멘토'. (사진=세종문화회관 제공)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학생들은 책상과 걸상을 무대 뒤로 옮긴다. 가해자 8명의 차별과 괴롭힘이 시작된다. 조롱으로 시작된 괴롭힘은 과격한 폭력으로 이어진다. 가해자도, 피해자도 아닌 방관자들은 책상과 의자 아래로 숨는다. 등을 돌리고 앉아 방관한다. 피해자는 책상 아래 들어가 덜덜 떤다. 슬프고 무거운 음악이 흐른다.

변화는 방관자들로부터 시작된다. 방관을 멈추고 적극적으로 가해자들을 말린다. 폭력을 막기 위해 대립한다. 하지만 피해자는 극한으로 내몰린다. 무대 뒤에서 책상과 의자로 탑을 쌓고, 그 위에 올라선다. 음악이 멈추고, 학생들은 모두 그를 바라본다.

잠깐의 정적이 흐른 후 한 여학생이 책상으로 만들어진 탑에 올라 피해자의 손을 잡아준다.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 무대에 오른 현대무용 '그리멘토'. (사진=세종문화회관 제공)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마지막 장. 학생들은 둘씩 마주앉아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손을 잡는다. 무대 마지막 피해자는 책상 위에 엎드려 있다. 좁은 핀조명이 피해자를 감싼다. 무대 아래 관객석에서 누군가가 올라와 피해자를 안아준다. 핀조명이 조금 커진다. 가해자였던 이들도, 방관자였던 이들도 모두 피해자를 끌어안는다.

공연 마지막, 학교폭력을 이대로 방치해서는 안 된다는 작품의 메시지가 화면에 떠오른다. "그들은 우리의 자식이고 형제이고 친구입니다." 오는 10일까지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에서 공연.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 무대에 오른 현대무용 '그리멘토'. (사진=세종문화회관 제공)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공감언론 뉴시스 pjy@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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